“네가 이렇게 힘든 아이였어?” “너 참,어려운 아이구나." 편하게 보고 싶을 때만, 꼭 봐야 할 때만 보면 되는 너였는데, 너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마음을 먹고 공부하면서 든 생각은 너 참... 쉽지 않은 아이구나. 커피가 그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하면 바리스타는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고, 포터 필터 안에 담고, 꾹 눌러 에스프레소 머신 버튼 하나 누르면 나오는 에스프레소. 그 에스프레소를 얼음 컵에 담아 건네주면 받아서 마시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아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손님인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메리카노는 카페에서 별생각 없이 주문하는, 만드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음료였다. 주문과 동시에 빠르게 만들어져 나오는 아메리카노를 받아 카페 한 곳에 자리 잡고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즐기면 되는 편한 아이. 그런 쉽고 편한 아이를 배워 나중에 내 카페를 만들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커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메리카노, 라떼가 전부인.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부터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바리스타 스킬부터 배우기 시작했
서점이란 어디서나 똑같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거주자인 내가 지난 5월, 서울을 방문해 서점에 갔을 때, 일본 서점과 한국 서점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처음이 아니고 한국에서 서점에 가는 것도 처음이 아닌데 왜 그동안은 깨닫지 못했을까? 이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국의 책들은 가나다라 순서로 제목 정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보는 한국인 여러분에게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르다. 가나다라처럼 글자 순서로 정렬되는 것은 같지만, 제목이 아닌 작가의 이름으로 일본에서는 정렬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평소 주목하던 작가님의 책을 한국에서 직접 구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 습관 때문인지 작가님의 이름만 기억하였기에 책들을 찾기는 무척 힘들었다. 결국 서점 안에 있는 검색 컴퓨터를 사용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쓴 책 제목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서점만의 방식일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우연히 방문한 다른 서점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책들은 배치되고 있었다. 책을 찾기 위한 어려움은 비록 느꼈지만, 한국에서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환경이 우리의 습관에 지배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호등 앞에 한 어르신이 리어카에 몸을 기댄 채 앉아있다. 너무나 얇은 몸에 작은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몸집에 비해, 리어카에는 폐지와 철근들로 가득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는 시간인데, 어디서 저렇게 많은 물건들을 모으셨는지.’ 새벽 내 리어카를 가득 채웠을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오늘은 좀 괜찮은 벌이가 되셨을까.’ 하는 짧은 궁금증이 스쳤지만, 리어카와 어리신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코끼리를 등에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느껴져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빨간불이었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변하자 어르신은 거대한 리어카를 끌고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 큰 무게여서인지 리어카의 바퀴는 아주 천천히 굴러간다. 그러다 툭. 하고 종이 상자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어르신은 상자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파란불이 빨간 불로 바뀔세라 걸음을 재촉한다. ‘저 종이상자 주워드려야겠다.’ 하는 순간, 등굣길인 한 고등학생이 재빠르게 주워 올리고는 묵직한 리어카를 천천히 뒤에서 민다. 스쳐 지나가기 바쁜 어른들 사이에서 먼저 나서는 학생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우리 사회가 누군가를 도울 잠시의 시간도 할애하기 힘들만큼 빠르게 흘러감에 대한 아쉬
오후 5시, 단골 A 카페는 한산하다. 언제나처럼 라떼를 주문하고 가방에서 책이며 노트북을 꺼내는데 아뿔싸 안경이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눈을 두고 왔으니 어쩔 수 없이 집에 다녀와야 한다. 카페 주인에게 금방 다녀오겠다 얘기하고 걸음을 재촉해서 다녀온다. 테이블 위에는 라떼 한 잔이 이미 올려져 있다. 커피잔을 들려고 하는 순간, 카페 주인이 다가오며 말한다. “새로 만들어 드릴게요.” “괜찮아요. 제가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온 건데 신경 쓰지 마세요.” “만들고 5분만 지나도 맛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항상 옆에 두고 글 쓰시는데 제 마음이 새로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요.” “정말 감사해요. 좋은 글 쓸게요.” 생각지도 못한 카페 주인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엔 따뜻한 파문이 인다. 나는 다른 일이 없는 날엔, 오후 5시경이면 A 카페를 찾는다. 항상 라떼를 시키고 늘 앉는 그 자리에서 글을 쓴다. 저녁 시간이면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카페.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방해가 안 되려는 사람들처럼 서로 조심스럽다. 그리고 8시경이면 카페 주인은 뜨거운 물 한 컵을 조용히 올려놓고 사라진다. 처음 며칠 내가 뜨거운 물을 찾았더니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해는 나의 시선과 관점이 타인을 향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지만 실은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선으로 바라본 후, 그 시선을 돌려 타인을 긴 시간 바라볼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바라보기 쉽지 않으니 타인을 편견이 없이,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오해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그 사람의 생각을, 삶을 이해할 만큼의 경험치가 부족하거나, 나의 생각의 틀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하거나 평가하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본다. 커피가 나에겐 그러한 타인이다.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이름, 나이, 고향, 성격 등을 알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생각,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 등도 알아가듯이 한 잔의 컵에 담긴 커피의 향미도 제대로 이해되려면 커피가 되기 전 생두, 원두부터 알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에서 온 생두인지, 생산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로스팅은 어느 정도인지, 언제 로스팅이
6월. 아름다운 계절이다. 산책을 할 때에도 나무의 푸르름, 형형색색의 꽃들이 눈에 띈다. 자연이 빚어내는 다양한 색의 하모니에 인간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그런 속에서 나는 나만의 사색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매일 소설의 일부를 읽고 그곳에서 생각한 내용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읽고 그 구절을 바탕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현재 글쓰기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높다. 누구나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 진주는 조개 몸속에 이물질과 조개 성분을 분비하는 외투막이 혼입되어 형성된다. 외투막이 이물질을 덮고 그것이 진주 주머니가 되어 칼슘 결정과 단백질이 번갈아 쌓여 진주층을 형성한 것이 진주가 된다고 한다. 양식의 경우 먼저 조개 안에 핵을 넣는 작업을 한다. 이는 조개에게는 대규모 수술이기 때문에 이 작업을 받은 조개는 심하게 약해진다. 따라서 한동안 양생을 시킨 후 본격적인 양식 과정이 진행된다. 그 후 진주가 자랄 때까지 3, 4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 동안 조개를 그냥 방치하는 것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왜 오수재인가? 라는 드라마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인간을 변질시키는지, 성공하는 삶과 잘 사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연소득이 75,000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그 흐름은 멈춘다.” 2010년 미국의 경제학자 카네만(Kahneman)과 디턴(Deaton)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를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2023년, 카네만과 킬링스워스(Killingsworth)가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킬링스워스가 혼자서 2021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와 비슷해, 행복감은 소득 증가와 함께 계속 상승하고 정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에 발표한 연구를 근거로 하는 조사에는 킬링스워스가 개발한 앱이 활용되었다. 2010년 연구에서는 전화 조사로 조사 전날 상황에 대해 행복감을 느꼈는지 등을 조사 대상자에게 질문을 했다. 반면에 2023년 연구에서는 하루에 세 번 현재의 기분을 앱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전화 인터뷰처럼 과거의 감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지금 여기의
“나도 언니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얼마 전 신문에 연재된 내 글을 읽은 지인이 보낸 문자이다. 언젠가 통화를 할 때도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길래, “뭐라도 좋으니까 일단 써. 가장 접근하기 좋은 게 블로그인 것 같아. 닉네임으로 통하니까 네가 누군지도 몰라. 일기도 좋고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면 점점 글쓰기가 익숙해질 거야. 편하게 접근해 보자.”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지인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나의 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쓰기는 무조건 쓰는 수밖에 없어. 매일 딱 한 줄이라도. 일단 시작해 봐. 그럼 고민의 내용도 달라질 거야.” 정말 이번엔 지인이 시작할 수 있을까? 일단 시작을 해야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있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세상 대부분의 일에 해당이 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저질러봐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향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나는 호기롭게 시작하고 중도 포기한 것들이 많다. 주변에선 내가 시작은 잘하는데 끝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남편과 어쩌다 자격증을 따겠다며 들인 시간과 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히 입 다물
며칠 전, 한 장의 명함을 받았다. 우연히 받은 명함에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향기였다. 코끝을 살포시 스치는 라일락 꽃향기가 명함 끝자락에서 느껴졌다. 그 덕분에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이 찾아왔다. “명함에서 좋은 향이 나는데요.” “아. 제가 아침에 실수로 가방에 향수를 쏟았는데 그 향이 명함에도 스며든 것 같아요.” 실수로 쏟은 향수 때문에 명함에서 향기가 나는 상황이 되었지만, 명함의 향으로 이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도 수십 장의 명함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은 기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함을 보고도 상대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전해 받은 명함에서 좋은 향이 난다면, 그 대상을 좀 더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심리학 용어 중에 각인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동물학자 로렌츠에 의해 유명해진 개념인데, 새끼 오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온 것이다. 새끼 오리들이 한 남성을 종종거리며 따라가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실험의 대표적인 결과이다. 로렌츠는 인공부화기에서 부화시킨 새끼 오리들이 태어난 순간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마치 어미 오리처럼 따라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얼마 전 비 내리는 토요일. 지역에서 나름 알아주는 쌍화탕 조제 전문점에 들린 적이 있다. 맛을 보라며 따뜻하게 데워진 쌍화탕을 건네는 사장님의 얼굴이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다. 컵을 두 손으로 꼭 잡는 순간 따스함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한 모금 마시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사르르 녹고 마음도 편안하다. 문득 건물 입구에서 촉촉한 5월의 비를 맞으며 탐스럽게 피어있던 작약꽃이 떠오른다. “작약이 활짝 폈어요. 이맘때가 꽃이 한창 필 때인가 봐요?” “그렇죠. 지금 꽃이 이쁘게 필 때죠. 쌍화탕에 작약 뿌리가 들어가요. 그래서 작약밭을 크게 하는데 꽃이 볼 만하죠.” 라고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얼굴엔 좋은 재료를 쓴다는 자부심과 작약꽃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긴 것에서 오는 반가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보인 작은 관심은 의외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가게 여기저기에는 다양한 화초가 자라고 있었고 윤이 날 정도로 반짝이는 화초의 모습에 신기해하자, 사장님은 “좋은 약재 찌꺼기” 덕분이라며 웃으신다. 사장님은 기분이 좋으셨던지 “작약꽃 몇 송이 드릴까요?”라고 하시며 바깥으로 나가신다. 잠시 후 나는 보라색과 흰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작약꽃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