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의 속삭임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몹시 아픕니다. ‘너무 힘들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서 창밖을 보면서 중얼거립니다. 쓰레기통에 묵은 감정들을 버릴 수 있다면, 아픈 상처를 버리고 싶습니다.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점점 통증이 찾아오고 다시 마음의 치료 약을 찾아보지만 구하기가 싶지 않습니다. 살면서 힘든 시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 못할 말들이 많았습니다.눈물이 나는 시간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마음 그릇에 담아두었던 힘든 시간이, 조금씩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누군가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을 ‘확인’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도, 그저 "충분히 그럴 수 있어"라는 한마디가 상처받은 마음을 가장 먼저 어루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위로를 해결책에서 찾으려 하지만, 사실 마음이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조용한 확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내 편이 생겼습니다. 나의 마음에 거울이 되어줍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제 모습처럼 닮아있습니다. 그냥 속상했던 마음을 이야기해 봅니다. ‘나 너무 속상
매년 대부분의 일반고등학교든 속앓이를 하듯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내의 성실한 우등생들이 주요 대학이 요구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의 최저 기준(2개 영역 2등급 이상) 미달자가 되어 학교별 교육 성과에 대한 기대와 함께 나아가 공교육의 실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우절의 농담이었으면 좋았을 법한 이야기가 매년 입시철마다 비극적인 실화로 반복되고 있다. 고교 3년 내내 전교 상위권을 유지하며 내신 1등급을 놓치지 않았던 학생이, 수능 당일 ‘2개 영역 2등급’이라는 최저학력기준조차 맞추지 못해 고배를 마시는 장면은 이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학원 도움 없이 오로지 학교 수업과 자습에 충실했던 ‘성실한 모범생’이 겪는 이 좌절은 개인의 실패를 넘어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등급의 역설’로 몰아넣었는가? 내신 1등급임에도 수능 최저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이른바 ‘수능 미달’ 현상은 지방 일반고와 교육 소외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2024학년도 대입 결과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내신 우수자 중 상당수가 수능 최저 기준 통
한때 모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하루는 영양교사가 한숨을 쉬면서 하소연 하듯이 “걱정이에요, 아이들이 고기반찬을 더 많이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네요~”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언뜻 듣기와는 달리 아이들의 올바른 신체적 성장에 깊은 고민이 묻어 있다. 남학교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육류에의 편식 성향이 강하다는 우려 섞인 이 말은 오늘날 우리 초중고등학교의 일반적인 ‘식판 위의 교육’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아이들의 몸을 만드는 '먹거리 교육'은 입시 우선주의에 밀려 한참이나 비정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서 편의점 간식과 당분이 가득한 음료로 끼니를 때우고, 급식 시간에 채소를 골라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뇌세포를 깨우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에너지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문제집이 아니라 '식판' 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채소와 과일을 멀리하는 편식 습관을 방치하는 것은, 아이의 학업 역량을 스스로 깎아 먹는 것과 다름
강원국 작가가 이런 질문을 던진 걸 어디선가 본 적 있다. "못하는 걸 잘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할까? 잘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에 손을 들었다. 내 삶이 이미 그렇게 흘러왔으니까. 동물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내과와 외과, 두 영역을 마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과적 감각이 좋지 않다. 손의 민첩함이나 섬세함이 부족하다. 그 부분을 잘하게 만들려고 애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에 내과 공부를 더 했다. 임상증례를 더 들여다보고, 감별진단의 논리를 단단히 쌓았다. 지금 내과 케이스 앞에서는 자신 있다. 외과가 약한 건 여전하지만, 내과 실력은 확실히 뾰족해졌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 잠재력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알고 나서는 더 강화했다. 더 읽고 더 썼다. 그 결과 수의사이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외과를 갈고닦는 데 썼다면 없었을 삶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 있다. "부족한 과목을 보충해라." 성적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과목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 당연한 공부법으로 통한다. 그 뒤에는 교육 철학이 있다. 민주 시민을 양성하
비워야 채워지는 삶의이치 떠나보내는 계절도, 헤어지는 인연도 이젠 익숙해야 할 시간이련만 늘 떠나보내는 마음에 서글퍼집니다. 여름을 위한 봄과의 이별가을을 위한 여름과의 이별 겨울을 위한 여름과의 이별 봄을 위한 겨울과의 이별 좋았던 추억과의 이별 행복했던 시간과의 이별 사랑했던 기억과의 이별 좋아했던 인연과의 이별 슬픔에 목맸던 시간과 이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그 해는 활짝 핀 개나리가 유난히 예뻤던 봄이었습니다. 딸아이는 할머니가 선물로 주신 책가방을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마도 아이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마냥 들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도 아이가 학생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눈에 자식의 모습은 늘 아가로만 생각되나 봅니다. 학교 정문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아이들보다 더 설레고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은 서로를 알아갑니다. 축구, 야구 운동 모임으로 친밀한 시간을 만들며, 발레학원, 피아노 학원의 이야기기로 꽃을 피웁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학부모들은 교내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또 다른 인연의 고리를 연결해 갑니다.
후회는 과거를 향하지만, 질문은 미래를 향한다 노트북을 펼쳐 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막막한 마음에 교수님께 물었다. "요즘 느끼는 감정에 대해 써 보세요." 그 말 한마디에 예상치 못한 눈물이 쏟아졌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정리됐다고 착각한다. 쿨 하게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다짐하지만, 잠들기 전 불현듯,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또 그 장면이 떠오른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틈을 찾아 결국 흘러나오고 만다. 얼마 전 나는 오래 준비해온 어떤 기회 앞에 섰다가,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마주했다. 충분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는데, 결정적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당황한 나머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았고, 아는 것조차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한동안 자문했다. 예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자 마음속 어딘가에서 '난 안 돼'라는 신호가 먼저 켜진 것은 아니었을지. 그 신호가 켜지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 포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먼
내가 어렸을 때 매우 재미있었던 놀이 중의 하나는 꼬리잡기였다. 별도의 기구도 필요 없고 다만 몇 명의 인원만 있으면 되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앞 사람의 허리를 잡아 줄을 만든 다음 맨 앞 사람이 상대편의 꼬리를 잡기만 하면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꼬리를 붙잡혀서 지는 것이 아니라 줄이 끊어져서 지곤 했다. 그러니까 게임의 승패는 팀의 민첩성에도 달려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결속력이었다. 줄은 언제나 약한 부분이 끊어졌다. 사람에 따라 감기의 증상도 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목부터 어떤 이는 코부터 그리고 어떤 이는 허리부터 아프기 시작한다. 이것은 그 부위가 가장 약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몸이 공격을 받을 때 항상 약한 부분에서 탈이 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감기 증상은 언제나 목에서 시작된다. 생후 백일이 갓 지났을 무렵 천식이 있다고 부모님은 돌팔이의 말을 듣고 빙초산에 갑오징어 뼈의 분말을 개 먹이려 하셨고 다행히 토하기는 했으나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목이 유독 약하다. 19세기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의 유명한 ‘최소율의 법칙’ 이라는 이론이 있다. 식물의 생장은 가장 풍부한 영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