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앞으로의 세상은 예측할 수 없다”는 우려와 두려움을 표명하면서 이 말이 하나의 명제로 확고한 위상을 굳혀 왔다. 이제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경고성 현실이 되었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기후위기, 팬데믹, 전쟁과 관세 협상 등 경제 불안정 등,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며, 오늘의 ‘상식’이 내일의 ‘과거’가 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안목과 비전을 품은 인재를 길러야 할까? ■ ‘정답’보다 ‘질문’을 가르치는 교육 과거의 교육-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문제집에는 늘 하나의 답이 있었고, 그 답을 빠르고 정확히 찾는 학생이 우수한 인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ChatGPT와 같은 AI가 글을 쓰고,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새로운 질문 던지기’다. 북유럽의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경우 고등학교에서는 일찍부터 과목 중심 수업이 아니라 ‘주제 중심 프로젝트 학습’을 도입했다. 예컨대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도시
다시, 감사를 연습하다 5년 전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찬비가 내리는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엄마 웃을 때 이상해. 거울 좀 봐요." 아들이 말했다. "그래?" 거울 앞에서 웃음을 지어본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표정, 한쪽 입 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불편함이 있었지만, 대충 식사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했다. 회사에 일찍 도착한 나는 카페에 잠시 들러 커피 한잔을 들고 서점으로 향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들고 자리에 앉은 나는 여유로운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빨대로 커피 한 모금 마시는데 이상하게 자꾸 옆으로 흘러내렸다. 사무실에 들어가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하러 갔다. 얼굴 반쪽이 마비되어 음식은 흘러내렸고, 거울을 보니 나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어떻게 병원을 찾아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귓가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다만 내 손에 쥐어진 많은 약 봉투만이 책상 위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6개월의 시간. 하루하루가 작은 전쟁이었다. 물을 마시려 하면 흘러내렸고,
해보기는 했어?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너 해봤어?” 그 짧고 간결한 질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말투로 다가왔다. ‘해봤어’라는 말 속에는 단순한 경험 이상으로 무언가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너 해봤어?’ 그 질문은 단순히 ‘어떤 일을 해본 적 있느냐’는 물음이 아니다. 이 말의 시작은 고,정주영 회장의 어록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또한 어려운 순간, 갈등을 앞에 두고 있을 때면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과 같이 항상 제 몫을 하는 질문이다. 그것은 고단했던 시간을 견뎌내고,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는지 묻는 말이다. ‘해봤다’는 3글자에 내포된 의미는 마치 인생의 굴곡과 성장의 흔적,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해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도전과 시도가 내 삶을 빚어왔다. 놀이동산에서 처음 높고 빠른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심장은 터질 듯 뛰었지만, 용기 내어 다시 앉았던 그 순간. 처음 ‘혼자’라는 이름 아래 여행을 떠났을 때, 길을 잃고 낯선 곳에서 헤매면서도 나 자신을 믿었던 그 시간
지난달 말경에 정작 뉴스에는 언급이 전혀 없는데 인터넷 블로그들에는 ‘손흥민 선수와 트럼프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손흥민 선수의 짧은 한 마디가 트럼프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는 이야기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왜 미국의 젊은이들이 손흥민에 열광하는지 알고 싶었다는 것이고 그 이유를 묻는 트럼프에게 손흥민은 자신이 축구를 잘 해서가 아니라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기 중에 저는 많은 것들을 경험합니다. 거친 태클, 야유, 때로는 인종 차별적인 발언도 듣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봅니다. 화를 낼까? 대응할까? 포기할까? 저는 침묵합니다. 그리고 다음 골을 넣습니다. 왜냐하면 싸움은 나를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나를 증명합니다." 법정 싸움, 언론 싸움, 정치 싸움 등 평생 '싸움'으로 자신을 증명해 온 트럼프는 그 밀을 수긍하기 어려웠고 "그럼, 너는 약한 거 아니냐? 대응하지 않으면 세상은 널 약하다고 볼 거야." 하고 반문했다. 그는 평생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해 온 사람이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모든 정치 철학이 그 위에 세워져 있었다. "미국 우선주
비우는 시간의 힘 옷장 문을 열 때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언젠가 입겠지, 하며 버리지 못한 옷들. 비싸게 샀다고 억지로 걸어둔 원피스. 그런데 막상 입는 건 늘 비슷한 옷 몇 벌뿐이다. 토요일 오후. 잠시 정리하려고 했는데, 하나씩 꺼내다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방바닥에 옷 산더미가 쌓였다. 이걸 내가 다 갖고 있었나 싶다. 결국 절반 넘게 버리고 나서야 마음이 후련했다. 옷장 안 옷들이 숨 쉬는 것 같았고, 나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왠지 모르게 너무 좋다. 단순히 정리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뭔가 내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 내가 일하는 헌혈의 집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혈액을 본다. 투명한 백으로 흘러들어오는 빨간 혈액. 처음엔 그냥 다 똑같아 보이지만, 혈액 속 성분의 무게에 따라 층이 분리되면 보인다. 혈액마다 다르다는 것이. 어제도 그랬다. 30대 남자분, 혈소판 성분 헌혈 전 검체를 원심분리기로 돌렸더니 혈액이 뿌옇게 보였다. "어제 뭐 드셨어요?" 물었더니 역시나 회식이었다고 하셨다. 삼겹살에 소주. 무척 미안해하시는 표정, 괜찮다고,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했지만, 사실 묻고 싶었다. ‘이분은 오늘 처음일까, 아니면 매일 이런
젊은 두 스님이 길을 가고 있었다. 얼마를 갔을까 그들의 앞에 냇물이 나타났다. 그다지 깊은 물을 아니지만 어른 무릎 이상은 되어 보이는 깊이였다. 두 스님은 물을 건너기 위해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런데 그들보다 먼저 냇가에 도착한 젊은 색시가 있었고 그녀는 물을 건널 용기가 나질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때 도착한 두 사람을 보고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하였다. “스님들, 저를 좀 도와주시어요.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한 스님은 합장을 하며 정중히 거절을 하였다. “사정은 딱하오나 저희는 출가한 몸이라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러나 곁에 있던 한 스님이 흔쾌히 색시를 업어 물을 건너 주었다. 색시는 자기 길을 갔고 둘은 다시 길을 갔다. 그러나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얼마를 갔을까 한 사람이 더 이상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응?, 말해 보게나.” “아까 그 냇가에서 자네가 여인을 업고 물을 건넜잖은가-” “아- 난 또 뭐라고, 나는 물을 건너자마자 여인을 내려 주고는 잊어버렸는데 자네는 아직도 등에 업고 있나? 참 힘들었겠네.” 사실 여인을 업지 않은 그 스님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아이들의 성장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한때 우리 교육 현장에는 ‘모든 학생은 가능성이 있다’는 숭고한 교육 철학이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성장의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특정 과목에 유독 강하든 약하든,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이 가능성의 불씨를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임을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바로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라는 정겨운 평가 방식이 있었다. 단순히 우열을 가리고 줄을 세우는 오늘날의 상대평가와는 사뭇 달랐다. '수(秀)'는 빼어나고, '우(優)'는 뛰어나며, '미(美)'는 아름답고, '양(良)'은 좋고 어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가(可)'는 단순히 '수(秀)' 아래의 등급이 아니라, '옳을 가(可)', '할 수 있다'는 뜻처럼, 아직 부족하더라도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가(可)'를 받은 학생에게조차 “너는 아직 해낼 수 있는 아이”라는 따뜻한 격려와 믿음을 주었던 평가, 이것이야말로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 어떤 제자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스승의 사랑이 담겨있었다. 당시의 교사들은 마치 한의사의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