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2 (일)

‘학교 사법화’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와 해결책

최근 한 교육언론에 의하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인권친화적 학교 조성 정책 권고」를 통해 “갈등을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학교 문화”의 개선을 촉구했음을 보도했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 권고를 넘어, 우리의 학교가 어느새 ‘사법화’의 와중에 빠져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교실에서 벌어진 갈등이 대화와 중재 대신 고소·고발과 행정심판, 소송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교육의 본질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은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는 법이 시작점이 되고 있다.

 

실제로 교육 현장의 사법화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각 시·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 관련 행정심판 및 소송은 최근 수년간 증가 추세를 보였다. 법무법인을 통한 대응, 생활기록부 기재를 둘러싼 분쟁, 교권 침해에 대한 형사 고소 등은 일상이 되었다. 갈등 해결의 언어가 ‘사과’와 ‘회복’이 아니라 ‘증거’와 ‘처벌’로 대체되는 최근 학교의 모습은 자의든 타의든 배움의 공간이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법적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17개 각시도 교육청과 교육부는 교사 법적 소송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예산을 별도로 증액해서 책정해 놓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해외의 모습은 어떤가?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길을 모색해 왔다. 미국의 일부 주와 학군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학교 정책에 도입해 ‘탈징계중심’문화로 전환했다. 예컨대 오클랜드의 통합 학교 구역(Oakland Unified School District)는 2010년대 초반 전면적 회복적 생활교육을 도입한 뒤 정학률 감소와 재학 유지율 상승을 보고했다. 갈등 당사자와 공동체가 참여하는 서클 대화, 피해 회복과 관계 복원을 목표로 한 프로그램은 처벌로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법적 절차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법 이전의 교육적 해결 역량을 우선적으로 키우는 것의 사례라 할 것이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핀란드 교육문화부와 교육 현장이 협력해 운영해 온 ‘KiVa 프로그램’은 또래 중재와 예방 교육을 체계화했다. 핀란드 투르쿠대 연구팀 발표 자료는 학교폭력 감소와 학생의 공감 능력 향상이라는 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도 제도는 단단하되, 해결은 관계 속에서 이뤄지도록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씨앗이 보인다. 일부 시·도 교육청이 도입한 ‘회복적 생활교육’과 학생자치 기반의 갈등조정위원회는 분쟁의 사전 예방과 학교 내 자율적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법적 분쟁이 우선되는 구조적 요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사실상 준사법기구처럼 운영되고, 학교는 책임의 돌파구를 찾고자 매뉴얼과 증빙을 앞세우는 실정이다. 이렇듯 교사가 교육자이기보다 ‘사건 관리자’가 되고 있음은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학교 사법화를 막기 위한 획기적 대책은 무엇인가? 여기에 몇 가지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회복적 정의를 국가 차원의 표준 정책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단위 학교의 자율적 시도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교원 연수·평가·생활기록부 지침까지 연계한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갈등 발생 시에는 ‘회복 절차’를 1차 원칙으로 하고, 처벌은 보충 수단으로 규정해야 한다.

 

둘째, 학교 내 독립적 갈등 조정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법률가가 아니라 교육·상담 전문가가 상시 배치되어 초기 중재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안의 조기 진화를 도모하고,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셋째, 학부모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 갈등이 곧바로 법적 대응으로 비화하는 배경에는 불신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학부모·지역사회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정례화하고, 분쟁 해결의 원칙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이때 신뢰는 매뉴얼의 기능과 함께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넷째, 교권 보호를 ‘처벌 강화’가 아닌 ‘전문성 보장’으로 접근해야 한다. 교사가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합리적 재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안전망을 마련하되, 동시에 학생의 권리와 상호 존중의 문화를 병행하여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권리와 권리가 충돌할 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법이 아니라 더 깊은 대화 즉, 전문성에 기반한 공감 유도를 널리 확대해야 한다는 원리라 할 것이다.

 

학교는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먼저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갈등을 법으로만 해결하는 문화는 아이들에게 ‘힘의 언어’를 학습시킬 뿐이다. 반면에 대화와 책임, 회복의 과정을 경험한 학생은 역경을 극복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교육의 결과다. 인권위의 권고는 그래서 단순한 행정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시대의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법치는 국가 유지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신성한 교육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학교가 다시 ‘관계의 공간’으로 돌아와 무신불립(無信不立)의 기반으로 할 때, 사법화의 그늘은 퇴색될 것이다. 다소 불편하고 인내가 요구된다 해도 처벌에 의존하기보다는 회복의 느림을 선택하는 용기, 그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이 내려야 할 결단이라 할 것이다.

 

인간은 상호 예절을 갖추면서 자주 보고 만나 대화와 소통을 이어가면 우리 민족의 고유하고 끈끈한 ‘미운 정(情), 고운 정’도 들고 상대를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마음도 함께 소생할 수 있음에 기대를 걸자. 학교 현장에서는 사법화에의 의존보다 바람직한 교육적 해결책을 이끄는 지혜와 집단지성이 작동하길 기대하고 소망한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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