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편의성은 제공해 줄 수 있지만 따뜻함까지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선생님들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2026년 3월 고진초등학교 제2대 교장으로 부임한 전은정 교장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온기가 있는 따뜻한 학교’였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교실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일수록 학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교육철학이다. 2024년 개교한 고진초는 현재 초등 54학급과 유치원 4학급 등 총 58학급으로 운영되고 있다. 초등학생만 1,253명에 이르는 용인 지역 세 번째 규모의 대규모 학교다. 다양한 직종의 교직원과 많은 학생·학부모가 함께 생활하는 만큼 학교장의 역할도 단순한 행정 관리를 넘어 교육공동체 전체를 연결하고 조정하는 일에 가깝다. 전은정 교장은 교사로 22년 6개월간 학생들을 가르친 뒤 2016년 9월 전문직에 합격해 용인교육지원청 초등교육과에서 약 5년 반 동안 장학사로 근무했다. 이후 정평초와 토월초에서 5년간 교감을 지내고 올해 처음 교장으로 부임했다. 교사·장학사·교감·교장이라는 네 직위를 모두 경험한 이력은 학교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줬다. 교실에서 학
“교장이나 교감의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이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학교의 진정한 저력은 구성원들이 스스로 가치를 납득하고 애교심을 가질 때 발휘됩니다. 학업 성취에만 치우친 기계적 인간이 아닌, 세상을 읽어내는 분별심(分別心)과 살아가는 힘을 지닌 도전적 인재를 기르고자 합니다.” – 양현고등학교 이원형 교장 전북 전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양현고등학교는 단순한 입시 위주의 명문고 패러다임을 넘어선 지 오래다. 개교 초기부터 이어온 혁신학교와 미래학교의 성공적인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최근 전북내 교육 변화의 중심인 ‘AI 디지털 선도학교’와 ‘자율형 공립고 2.0’ 지정을 동시에 이뤄내며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의 새로운 이정표를 쓰고 있다. 11년 차 시스템의 힘, 사람 중심의 수평적 리더십양현고등학교가 수많은 공모 사업과 교육 혁신을 성공적으로 수용하는 근본적인 힘은 탄탄히 정착된 ‘시스템’에 있다. 개교 이후 초대 김갑식 교장, 2대 김영태 교장, 3대 이종혁 교장을 거치며 탄탄한 토대를 닦아왔으며,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이원형 교장과 교육 장학사 출신의 행정 전문가인 교감의 디테일하고 따뜻한 가교 역할이 더해져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축적해온 혁
학교의 첫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다시 그 학교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 평내고등학교 개교 당시 부임 교사로 학생들을 만났던 이준호 교장은 여러 교육 현장을 거쳐 교장으로 학교에 돌아왔다. 그에게 이번 복귀는 단순히 익숙한 학교로 되돌아온 일이 아니다. 개교 당시 동료 교사들과 함께 품었던 학교의 가능성을 오늘의 교육환경에 맞게 다시 설계하고,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학교로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의 귀환’에 가깝다. 이 교장이 학교 경영의 중심에 놓은 말은 분명하다. “학생은 학생답게, 학교는 학교답게, 교육은 교육답게 하자는 것입니다.”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기보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스스로 배우고 탐색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교장은 그것이 자율형 공립고 2.0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며, 평내고가 현장에서 구현해야 할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도전·창조’의 교훈을 일곱 가지 역량으로 구체화하다 평내고의 교훈은 ‘도전·창조’다. 이준호 교장은 이 말이 교문이나 교지에만 머무는 문구가 아니라 학생들의 배움과 생활 속에서 실천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학교는 ‘
이동준 남양주월산초등학교 교장이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1990년대 초반은 우리 사회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문민정부로 이행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열망은 학교 현장에도 스며들었다. 지시와 통제,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교사의 자율성과 학생의 주체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경인교육대학교 88학번인 이 교장은 그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교사로 약 24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장학사와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됐다. 교실에서 수업하고, 교육청에서 정책과 학교 현장을 연결하며, 학교 운영을 책임지기까지 그의 교직 경력은 약 34년에 이른다. 시대와 역할은 달라졌지만 이 교장이 놓지 않은 질문은 한결같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며,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가 내린 답은 ‘가슴이 따뜻한 민주 시민’이다.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고, 힘이 약한 사람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다. 이 교장은 “아이들이 어른이 돼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며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보듬고, 생명의 소중함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에서 이영란 봉담고 교장의 말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학생자치회실의 3D 설계와 도서관의 동선, 모듈러 교실의 디지털 환경, 한 학생의 마음을 지키는 또래상담과 화해중재, 교사의 수업 공개와 AI 서·논술형 평가, 학부모와 함께한 학교 앞 교통 캠페인까지. 하나의 사례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실천이 이어졌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해 보이는 열정이었다. 그러나 그 열정의 방향은 한결같았다. 학생을 더 존중하고, 교사가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며, 학교와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것. 이 교장이 거듭 강조한 말도 그래서 “AI 대전환의 시대일수록 기술보다 인간의 존엄, 속도보다 방향성”이었다. 봉담고는 이 교장에게 각별한 학교다. 2008년 개교 당시 교사로 부임해 4년 동안 학생들과 울고 웃었던 이 교장은 긴 시간을 돌아 다시 이 학교로 왔다. 그러나 되돌아온 학교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개교 이후 15년 넘게 큰 변화 없이 낡아버린 시설, 과밀학급, 디지털 교육환경에 대한 무관심, 수업·평가 전문성의 편차가 동시에 놓여 있었다. 반면 비교적 젊은 교직원과 성장 의지가 강한 중간 리더들은 봉담고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었다. 이 교장은
급변하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 교육 현장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혁신과 세심한 변화 관리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섬세한 감성 리더십과 확고한 추진력으로 대한민국 지역 교육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리더가 있다. 바로 ‘광양의 배움, K-교육을 이끈다’라는 담대한 슬로건 아래 지역 교육 생태계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광양교육지원청 김여선 교육장이다. 김여선 교육장은 교사로 시작해 교감, 교장, 장학관, 지역청과 도교육청의 요직을 거쳐 정책국장까지 지낸, 교육계가 인정하는 최고 수준의 베테랑이다. 직책이 바뀔 때마다 교육을 바라보는 시야의 넓이와 깊이가 달라졌다는 그녀는, 현재 광양 교육의 수장으로서 현장 중심의 소통과 ‘교육의 품격’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현장의 작은 목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 따뜻한 포용력으로 정서적 위기에 처한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한편, 전남 최초의 EBS 자기주도학습 센터 구축, K-푸드 페스티벌 등 대도시를 능가하는 완성도 높은 명품 브랜드 교육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교육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내 직원이 먼저 행복해야 교육 현장이 살아난다"며 보수적인 공직
[대한민국교육신문 나윤재기자] "늘 주민 곁에 먼저 가겠습니다"… 강서구의 역동적 변화를 이끄는 박병률 의원지난 6월 29일 오전 11시, 부산 강서구의회 박병률 의원실에서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과 전통적인 도농 복합 지역의 특성이 공존하며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강서구. 그곳에서 3선 의원이자 제9대 전반기 의장을 역임하며 지역 발전의 든든한 구심점 역할을 해온 박병률 의원을 대한민국교육신문 대표이사가 직접 만나 심층 대담을 나누었다. 본지 나윤재 기자가 동석하여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기자수첩에 담았다. 본지 대표이사 : 3선 의원이자 제9대 전반기 의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셨는데, 그 소회와 의원님을 움직이게 하는 '초심'은 무엇입니까? 박병률 의원 : "무엇보다 저를 믿고 3선까지 이끌어주신 구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처음 구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가졌던 단 하나의 초심은 '늘 주민 옆에 먼저 다가가서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7월 공식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 거센 태풍이 불어와 낙엽이 배수구를 꽉 막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누가 시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