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장 위에서 배운 가장 큰 교육”
“살리는 말, 세우는 말”
점심시간마다 아이들이 혹시 다칠까 봐 스스로 운동장에 나가 생활지도를 하는 우리 학교 행정실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우리 학교에는 처음에 피구장이 하나뿐이었다.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했지만, 학급이 많다 보니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피구장 옆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긴 잘 쓰지도 않아요. 모기만 많아요. 여기를 피구장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 말은 받아들여졌고, 연못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피구장이 생겼다. 아이들이 제안하고, 아이들이 만든 공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새 피구장은 운동장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했고, 안전을 위해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펜스가 공을 완전히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공은 자주 운동장 아래로 넘어갔고, 한 번 넘어가면 돌아오는 길이 멀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운동장에 있는 형들에게 공을 부탁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상황, 반복되는 부탁. 그 속에서 그날의 일이 생겨났다.
점심시간, 공 하나가 또 운동장으로 넘어갔다. 아이들이 공이 넘어간 나무 울타리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잘생긴 형! 공 좀 주세요!"
한 아이가 아니었다. 여럿이 함께였다.
이미 몸에 밴 언어였다.
그 순간, 공을 들고 있던 형이 잠시 멈칫하더니 정확하게 정말 정확하게 공을 아이들에게 던져 주었다.
정말 잘생겨서였을까.
아니면 그 말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걸까.
알 수 없다. 다만 공은 정확히 돌아왔다.
아이들은 다시 외쳤다.
"진짜 잘생겼다아~~!"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 많이 해본 솜씨다.^^‘
‘공을 던진 건 손이 아니라 말이었다.’
잠시 뒤, 공 하나가 또 넘어갔다. 이번엔 운동장에 형들이 보이지 않았다. 여자 어린이 한 명만 홀로 서 있었다. 아이들은 잠깐 멈췄다가, 다시 한목소리로 외쳤다.
"예쁜 누나! 공 좀 던져주세요!"
그 어린이는 공을 집어 들고, 그대로 서 있는 대신 한참을 걸어 올라왔다. 여자어린이가 던져주기엔 역부족이었나보다. 운동장에서 피구장까지, 조금 높이가 있는 그 길을. 아이들 앞까지 와서, 공을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니네 진짜 귀엽다."
“예쁜 누나”에 대한 답례였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2학년 아이들이었다.
그 작은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을.
자기가 던진 말이 사람을 살리고,
그 말이 다시 사람을 세운다는 것을.
그리고 그 움직임이 온기가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그런데 이것은 단지 느낌이 아니다. 한국의 교육철학자 이규호는 저서 『말의 힘』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각과 말은 하나로 이루어진다. 말을 통해서만 생각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관계는 비로소 시작된다."
아이들의 말은 생각에서 나왔고, 그 말은 관계가 되었다.
이규호가 평생 붙들었던 그 진실이, 운동장 한쪽 피구장에서 2학년 아이들의 입을 통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뇌과학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칭찬을 받으면 뇌의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기분이 고조되고, 긍정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싶은 동기가 강화된다.
"잘생긴 형"이라는 말 한마디가 그 형의 마음에 작은 불꽃 하나를 지폈고, 그 불꽃이 팔을 움직여 공을 정확하게 되돌려 보내게 한 것이다.
더 나아가, 다정하고 보살펴주는 표현은 듣는 사람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하고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든다.
누나가 그냥 공을 던지지 않고, 높이 차이가 있는 길을 한참 걸어 올라와 직접 손에 쥐여 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예쁜 누나”라는 그 말이 여자어린이를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사람은 단순한 칭찬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더 큰 친밀감을 느낀다.
아이들의 말은 평가가 아니었다.
관계를 여는 열쇠였다.
아이들에게 피구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 즐거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기 위해, 가장 예쁜 말을 꺼내 함께 외쳤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다시 놀이로 돌아가기 위한,
아이들의 간절한 합창이었다.
친구들과의 행복한 추억쌓기를 위해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해낸 우아한 유머였다.
그리고 그 유머스런 합창은 철학이 말하고,
과학이 증명한 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관계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그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세우기도 한다.
"친절한 말은 짧고 말하기 쉽지만, 그 울림은 끝이 없다." — 마더 테레사
아이들이 만든 피구장에서,
아이들이 던진 말이 사람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말은, 따뜻하게,
다시 아이들에게로 돌아왔다.
말은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는 결국 사람을 바꾼다.
다시한번 외친다.
“말은 관계를 여는 열쇠다.”
[참고 자료] 이규호, 『말의 힘』, 제일출판사, 1974. 한국AI부동산신문, 「말 한마디의 기적, 칭찬이 바꾸는 인간관계의 과학」, 2025.11.13. Wonderful Mind, 「긍정적인 대화의 뇌를 변화시키는 힘」, CreatingWe 연구소 연구 인용. W Korea, 「친해지고 싶은 상대에게 건네었을 때, 칭찬보다 효과 좋은 말은?」, 2025.11.

칼럼니스트 박대훈
• 현) 태강삼육초등학교 교장
•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 광운대학교 대학원 석사(초등영어교육)
• 전국삼육초연합회 회장
• 한국사립초연합회·서울사립초연합회 부회장
• 서울시·충청북도 수업연구 발표대회 1등급
• 충북 단재연수원 1급 정교사 연수 특강 강사
• 학교법인 삼육학원 전국 예비교사·중고등부·어린이교사 수양회 초청 강의 다수 출강
• ‘어린이 수업 집중법’ ‘부부행복세미나’‘섬기는 교육행정’강의 다수 출강
• 2026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