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오늘날,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역사적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는 이미 인간이 평생에 걸쳐 쌓아야 할 지식의 양을 단 몇 초 만에 정리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 앞에서 교육은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가? 과거의 교육은 지식을 많이 축적한 자를 “지혜롭다” 평가했다. 그러나 AI 시대의 교육 현장에서 과거의 패러다임을 여전히 고수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AI 시대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가르는 기준은 이제는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지식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 고유의 본질을 활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AI 시대의 어리석은 자는 ‘지식의 소비자에 머무르는 자’이다. 이들은 AI가 내놓는 정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편의성에 자신의 사고를 맡겨버린다. 미국의 기술 철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그의 명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과도한 의존은 인간 뇌의 깊은 사고와 집중 능력을 퇴화시킨다”고 경고
일요일 저녁, TV 리모컨을 돌리다 MBC <스트레이트> 방송을 보며 목이 턱 막힌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속도 붙은 지방 소멸”이라는 자막 뒤로 비쳐진 강원도 정선의 한 초등학교 풍경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전교생 10명, 운동회 날 청군 백군을 나누려면 교장 선생님과 동네 이장님까지 계급장 떼고 선수로 뛰어야 겨우 머릿수가 맞는 서글픈 현실이다. 보도에 의하면 전국의 읍·면·동 중 무려 36%가 ‘소멸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세 곳 중 한 곳은 조만간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인구가 줄어드니 학교가 문을 닫고, 학교가 없어지니 젊은 부모들이 보따리를 싸서 대도시로 떠나는 이 잔인한 ‘소멸의 쳇바퀴’를 어떻게 멈춰 세워야 할까? 혹자는 대기업 공장을 유치하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공장 직원들도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은 서울에 두고 주말부부를 택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정답은 하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떠났던 맹모(孟母)들이 아이 손을 잡고 제 발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획기적인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신(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세우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기
AI 시대, 요즘 학교마다 사정은 작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개는 거의 ‘로딩 중’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AI가 시를 쓰고, 로봇이 피자를 굽는 2026년 현재, 우리 초·중·고등학교의 교무실의 시계는 안타깝게도 가끔은 조선 시대 어딘가에 멈춰 있는 듯하다. 학기 초에 방대하게 짜인 ‘연간 교육계획서’는 마치 절대 깨뜨려서는 안 될 모세의 십계명처럼 군림한다. 학기 중에 급격한 교육 트렌드 변화나 기후 위기, 혹은 예상치 못한 학생들의 요구가 터져 나와도 “이미 결재가 끝나서 변경하기 어렵다”는 교무실의 단골 멘트는 가끔은 교사들을 깊은 탄식에 빠뜨리곤 한다. 물론 이를 과감하게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교무부를 비롯한 행정 부서의 번거로운 개정(예, 학교운영위원회 상정)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어 있다. 이처럼 무겁고 경직된 전통적 학교 운영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흥미로운 신이론이 최근 교육학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날아온 ‘에자일(Agile) 학교 경영 이론’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에자일’은 무엇인가? 이는 쉽게 말해 “계획대로 안 되면 빠르게 바꾸자!”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 말들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한민국에게 더없는 안성맞춤의 진리였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누리는 눈부신 경제적 번영과 산업화의 성과는 결국 인과응보라는 원리의 산물이었다. 핵심은 1970~198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고도성장기의 동인이 단연 교육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국가 주도 산업화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 적합한 표준화된 인력을 대규모로 필요로 했다. 성실하게 지식을 암기하고, 정해진 규칙을 정확하게 수행하며, ‘평균 이상의 균일한 역량’을 갖춘 노동력을 빠르게 공급하는 데 우리 교육은 가히 세계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하며 국가 발전의 1등 공신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했다. 정해진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 일률적인 기준으로 학생들을 나란히 줄 세우는 평가 방식은 이미 유효기간이 다했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가 지나고, 개인의 독창적인 적성과 다원적 가치가 존중받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AI)이 단순 암기와 지식 처리를 순식간에 대체하는 대변혁의 시대를 이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2026년 8월, 2학기 개학을 맞이한 대한민국 곳곳의 학교 현장은 다시금 최첨단 기술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다. 책상마다 놓인 태블릿PC에서는 AI 튜터가 맞춤형 수학 문제를 뿜어내고,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에 적재되고 있다. 지난 세월 정부와 교육청이 역점을 두어 추진해 온 ‘High-Tech High-Touch’ 구상이 교실 곳곳에서 이제는 제법 구현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진도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현장에서 들려오는 역설적인 탄식도 깊어지고 있다. “AI가 아이의 문제 풀이 속도는 초 단위로 파악하지만, 오늘 아침 친구와 다투고 엎드려 있는 아이의 서러운 어깨 들썩임은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기술(High-Tech)이 아무리 화려하게 진화해도, 교육의 본질인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일(High-Touch)은 오직 인간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글에서는 차가운 모니터 앞에서 서성이던 아이의 마음을 다시 뛰게 만든, 최근 우리 초·중·고 현장에서 피어난 감동적인 ‘하이터치’의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에게 교육이 향해야 할 진짜 좌표를 제시할 것이라 믿는다. [사례 1] “정답보
최근 BTS의 내년 그래미에 작품을 내지 않겠다는 ‘보이콧 선언’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 왔다. 이는 미국 대중음악계의 자칭 ‘최고 권위’ 시상식이라는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가 그동안 헛발질을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라는 화려해 보이는 포장지의 카테고리를 신설하자, 세계 최고의 팝스타 방탄소년단(BTS)이 거침없는 일침과 함께 ‘아시안 팝’이란 이름의 격리에 출품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리더 RM을 비롯해 BTS 멤버 전원이 자신들의 SNS에 던진 짧지만 매서운 일갈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이를 두고 “BTS의 점잖지만 강렬한 질책(a striking rebuke)”이라며 “아시아 팝 아티스트들은 그동안 그래미의 중심부에서 소외당해 왔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인종과 언어가 K-팝을 바라보는 서구권의 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낸 BTS의 중요한 화두”라며 손을 들어주었다. 그동안 BTS가 빌보드 핫 100 1
칠흑 같은 한여름 밤, 하늘에서 내려다 보여주는 TV 속의 휘황찬란한 야구 경기장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선을 한곳에 모은다. 특히나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초박빙의 박진감 넘치는 프로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묘미는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런데 9회 말 2아웃, 전광판에 찍힌 전광석화 같은 숫자는 아슬아슬한 패배를 가리키고 있다. 볼카운트는 2스트라이크, 관중석의 모두가 숨을 죽이고, 포수의 미트 소리만이 정적을 깰 때 타석에 선 타자가 방망이를 쥐어 잡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날카로운 타구 소리와 함께 외야 담장을 맞고 떨어지는 동점타, 곧이어 연장전에서 터져 나오는 짜릿한 끝내기 안타! 이는 소설 같은 창작의 서사가 아니다. 실제로 프로 10개 구단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실제 상황이다. 우리는 야구를 가리켜 ‘인생의 축소판’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9회말 투아웃이라는 극단적인 절망의 순간에도 단 한 번의 스윙으로 경기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희망의 반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승패를 가르는 것은 타석에 선 선수의 꺾이지 않는 마음과, 그를 믿고 다음 타석을 준비시키는 감독의 눈빛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육의 전광판은 몇 회를 가리키고
이 시대 우리에게 진정한 영웅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은 과거와 달리 영웅(Hero)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과거 우리 세대가 추앙(推仰)했던 영웅은 고난 속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악을 처단하는 초인(Superhuman)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불확실성과 무한 경쟁의 늪에서 숨 차 하는 Z세대와 청년들에게, ‘허점 없는 완벽함’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다가가기 힘든 위선이자 또 다른 박탈감일 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정신적·행위적 울림을 주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는 고결한 사상가도, 천문학적인 부를 과시하는 기업가도 아니다. 자신의 가장 약하고 솔직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며, 그 취약성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인물, 바로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김남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지식의 보고(寶庫)처럼 작동하는 AI에게 물어 본 필자에게 돌아온 대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30대 청년에게 주목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우리 교육은 그를 미래 세대의 선구자적 모델로 삼아야 하는가? 첫째, 그는 “Speak Yourself”로 상징적인 인물로서 ‘취약점(Vul
매미 없는 여름을 상상해 보았는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이 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입추가 지나고 올 여름이 절정을 지남에 따라, 어느덧 사방에서 매미 소리가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최고도로 귓전을 울리고 있다. 창문을 열면 여전히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오는 “맴-맴-맴-” 소리에 누군가는 본능대로 세스코를 부르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계곡 물소리를 떠올리며 이마의 땀을 연신 씻어내는 이 여름이 이제는 서서히 저물어 갈 것이다. 여름의 전령사이자 한여름의 뜨거운 대명사인 매미, 우리는 매년 여름, 매미의 시원하고도 맹렬한 울음소리를 아주 당연한 자연의 무료 BGM(배경음악)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내면의 비밀’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매미가 눈 부신 태양 아래서 지르는 그 격렬한 비명 혹은 찬가는, 사실 차갑고 아득한 땅속에서 수년 동안 참아낸 지독한 ‘인고(忍耐)의 대가’라는 사실을 말이다. ‘빨리, 빨리, 빨리’의 선행학습과 속도전에 빠져 버린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한여름 매미의 삶은 그 자체로 거대한 교육적 반전 드라마이자 서늘한 경종을 울린다. 특히 땅속 7년의 인고의 세월은 조급함에 중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Mortui vivos docent).” 이 말은 수많은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실 입구에 정초(定礎)처럼 새겨진 라틴어 명언이다. 이는 의학이라는 학문이 삶을 위대한 마지막 수업으로 장식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탑임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우리는 이 오래된 명언이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해 온전히 실현되는 숭고한 광경을 목격했다. 향년 76세로 별세한 김종중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43년간 해부학자로서 단상에 서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지역사회에서 시신 기증 운동을 이끌어온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마저 온전히 제자들에게 맡겼다. “평생 해부학을 가르쳐 왔으니, 죽어서도 제자의 실습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유언과 함께 자신이 한평생 몸담았던 의대 실습실의 해부용 시신(카다바·Cadaver)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기증은 단순한 신체 기증을 넘어선다. 그것은 삶과 죽음, 이론과 실천, 그리고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마지막 수사학’이자, 오늘날 교육이 상실해 버린 진정한 교육자적 엄숙함과 영혼을 일깨우는 강력한 메시지다. 세상의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