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의 한 주요 경제 신문의 헤드라인은 우리 시대 대학 교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졸자 다시 전문대로… 취업난에 '유턴 입학' 늘었다"는 소식(서울경제, 2026.3.27.)은 더 이상 생소한 뉴스가 아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만 2,500명의 4년제 대학 졸업생이 다시 전문대의 문을 두드렸고,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폴리텍대학의 경우 신입생 4명 중 1명이 이미 대학 졸업장을 손에 든 '고학력 미취업자'였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수천만 원의 등록금과 4년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사회가 요구하는 실무 역량을 갖추지 못해 다시 '기술'을 배우러 재입학하는 이 기막힌 현실은, 대한민국 대학 교육 체계가 심각한 '기능 부전'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 대학은 오랫동안 '상아탑'이라는 권위 아래 이론 중심의 교육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첨단 디지털 전환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산업 지형을 매달, 매주 단위로 바꾸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은 당장 현장에 투입이 가능한 '실무형 인재'를 원하지만, 대학 교육과정은 10년 전 교재와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
최근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교사를 향한 학생들의 신체적 폭행과 흉기 사용이라는 극단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며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이자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 된다는 전통적인 윤리 국가에서 붕괴된 사제 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었을까,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다. 이제는 정말 온 국민과 국가가 나서 이를 차단하지 않으면 이런 토양 위에서 교육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극심한 회의가 든다. 이 글에서는 2024년부터 2026년 현재까지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된 주요 사건들을 살펴 보고 교육적 해법을 찾고자 하는 진심을 담아 몇 가지를 제언해 보고자 한다. 가장 최근인 2026년 4월 13일, 충남 계룡시의 한 고등학교 교장실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30대 남성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경위를 보면 가해 학생은 과거 중학생 시절 학생부장이었던 피해 교사와의 마찰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면담을 요청해 교장실에서 교사와 단둘이 있게 되자 미리 준비해 온 흉기로 등과 목 부위를 찔렀다. 그 결과로 피해 교사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은 범행 직후 자수하여
이정암은 (1541중종 36)~(1600선조 33) 조선 중기에 살았던 문신이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황해도로 들어가 의병을 일으켰다. 5백의 병졸을 거느리고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이끄는 3천 명의 군사를 황해도 연안(延安)에서 대파하여 왜군의 북진을 저지하고 해서(海西)지방을 안전하게 확보했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의주에 있던 행재소(行在所)와 기호지방은 강화(江華)와 연안을 통하여 연결됨으로써 전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다. 이때 이정암은 섶을 쌓고 그 위에 앉아 싸움을 지휘했다고 한다. 성이 함락되면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결심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장졸이 합심하여 나흘간을 죽기 살기로 싸웠고 적은 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입은 채 떠났다. 이정암은 곧 바로 장계를 올렸다.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적이 아무 날에 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날에 포위를 풀고 떠나갔나이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큰 전과를 거두었는지 일체 자랑을 하지 않았다. 부하의 공을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다. 김육(1580-1658)은 <해동명신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적을 물리치기는 쉽다. 공을 자랑하지 않기가 더욱
벚꽃잎 하나, 첫사랑 하나 점심시간, 산수유꽃 노란 숲 길에서 아이들 생활지도를 하고 있었습니다.그 시간은 단순한 지도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열리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때였습니다. 여자 어린이 세 명이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오다가 저를 발견하고는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동으로 나오는 인사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얘들아~~산수유 꽃 보여줄까?”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따라왔습니다. “이 노란 꽃이 산수유입니다. 이건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봄을 알려주는 꽃 중 하나입니다.” “와~~” 바로 근처에는 백리향 야생화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잎을 하나씩 떼어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이건 백리향입니다. 백 리까지 향기가 난다고 해서 백리향입니다.” 아이들은 잎을 코에 가져다 대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우와! 진짜 좋은 향이 나요!” “향이 진하다!” "아이들은 그 작은 잎을 소중하게 손에 쥐고 놓지 않았습니다. 향기를 맡고 감탄하는 이 순간, 아이들의 감각은 열리고 기억은 깊어집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들 입에서 갑자기 첫사랑
‘무심(無心)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무심하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없다.”와 “남의 일에 걱정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다.”이다. 뜻을 따져 생각해 보니, 어떤 대상에 대하여 예민하거나 과도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라면 ‘무심하다’도 도움이 되거나 필요하기도 할 것 같다. 그러면 우리말 우리글 사용에서는 어떨까. 말하고 쓰는 활동에서 ‘무심하다’가 작용한다면 아마도 ‘바른*’ 말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언어생활에서의 ‘보람**’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바르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들어맞다. **보람: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의 가치 ‘무심함’으로 인해 자주 잘못 쓰면서도 ‘무심함’으로 인해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표현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문화체육관광부·국립국어원의 ‘개선이 필요한 공공언어 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함) 먼저 ‘염두에 두다’를 ‘*염두해 두다’로 쓰는 경우이다. ‘염두(念頭)’가 ‘마음속’과 동의어임을 알면 ‘마음속에 두다’로 표현하듯 ‘염두에
젊음을 유지하는 세가지 방법 안병욱 교수는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말합니다. 공부하고, 여행하고, 사랑하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세 단어가 점점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공부 — 정신이 늙지 않는 방법 새벽 4시 30분,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집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 펼치는 순간, 바래진 종이에서 희미한 향기가 납니다. 그 냄새는 책을 처음 읽던 그 시절로 데려다줍니다. 밑줄을 그었던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춥니다. 그때의 내가 왜 이 문장에 줄을 그었는지, 지금의 내 눈으로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늘은 『100세 철학자의 수업』을 다시 읽었습니다. 수많은 세월을 건너온 철학자의 문장 속에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의 무게가 배어 있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한 줄이 오늘은 가슴에 걸립니다. 같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달라진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읽고 생각하는 한, 정신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새벽의 독서가 매일 가르쳐 줍니다. 여행 – 추억이 늙지 않는 방법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제주도의 어느 해변,
가벼워지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도 저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서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가볍게 들고 다니려 애씁니다.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 넣고 다닙니다. 그야말로 핸드폰만 겨우 들어가는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가방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체구에 들고 있는 가방이 무거워 보이는지 사람들은 종종 제게 묻습니다. “가방이 왜 이리 무거워요?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사실 가방 안에 특별한 건 없습니다. 책 한두 권, 다이어리, 그리고 화장품 파우치가 전부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렇게까지 들고 다닐 필요가 있어요?” 맞는 말입니다. 굳이 매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집에 두고 필요할 때만 펼쳐 봐도 되지요. 때로는 가방에서 꺼내지 못하는 때도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두고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그 무게감에는 조금씩이라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고 싶은 조용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가방 안에 있는 책들은 저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꺼내어 보는 저를 바라보면 흐뭇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어책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고 듣는다면
숫자가 말을 걸어온다. 2024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10명 중 약 3명이 최근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다(27.7%). 스트레스 인지율은 42.3%로 전년 대비 5%포인트 뛰었다. 청소년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은 인구 10만 명당 11.7명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여성가족부, '2025 청소년 통계'). 9세에서 24세 사이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1위가 자살이라니. 이 한 문장을 가볍게 읽고 넘기기 어렵다. 자해,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자살. 이 단어들이 청소년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고 있는 걸까.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분명하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불안세대》에서 수십 건의 실험 결과를 종합한 뒤 이렇게 결론 내린다. "소셜 미디어 사용은 불안과 우울증, 그리고 그 밖의 질환과 단순히 상관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건 2007년이다. 이후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들의 하루가 바뀌었다. 하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십대가 화면 기반 레저 활동
본 특별기고는 지난 2026년 3월 31일(화) 러시아 볼고그라드국립사회-사범대학교가 개최한 국제 학술대회에서 카잔연방대학교 고영철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 논문은 2026년 5월 러시아연방 교육부 인정 논문집에 게재될 예정이다. 러시아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주요 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북극은 21세기 새로운 전략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변화로 해빙이 되어 북극 항로 상업화, 자원 및 에너지 개발 확대, 북극 산업 도시 증가, 국제 정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특히 한국은 러시아와 최우선적으로 북극 항로의 해운 협력과, 다음으로 자원개발 협력이다. 그래서 대 상대국인 러시아의 협력을 위해 러시아의 법규와 정책 그리고 과학적 수준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북극 관련 국제법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스발바르조약(Svalbardtraktaten)이 있다. 그리고 비북극권 국가들은 영유권은 없지만 북극해 공해와 국제 해저지 그리고, 기타 특정 지역에서의 항행, 비행, 자원 탐사 및 개발 등의 자유와 권리가 있다. 북극관련 한국과 러시아에서의 선행 연구와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러시아는 소비에트 시절부터 여러 연구가 활발히 이루
최근 동아일보의 보도(2026.4.7.)는 우리 교육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6년 전통의 여고도, 92년 된 남중도 못 피해간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기사의 충격에서 연유한다. 이는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를 피하지 못하는 소식이다. 작년 에만 무려 전국적으로 32개교가 성별의 벽을 허물었다. 이를 두고 교육계에서는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고사(枯死) 방지책’이라거나, 고교학점제 아래서 내신 등급 확보를 위한 ‘학생 수 늘리기’라는 실용적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남녀공학 전환을 단순한 ‘인구학적 생존 전략’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교육적 함의가 크다. 이제 우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관성에서 벗어나, 남녀공학이 미래 세대에게 제공할 ‘교육적 효능감’과 ‘민주 시민 육성’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즉, 80~90년 전통의 명예보다 소중한 ‘공존의 학습권’과 ‘민주 시민의 요람’에 대한 교육적 사명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흐름은 남학생은 남학교를 선호하고, 동문회는 모교의 정체성이 훼손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교실 안의 모습은 달라져야 한다. 작년에 이어 고교학점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