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설회사에서 15년을 일한 베테랑 목수가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었다. 그는 솜씨가 좋은 사람이었고 남다른 열심도 있었다. 자신이 해고된 영문을 모른 그는 관리실에 쫓아가 거세게 항의를 했다. 현장 소장이 대답했다. “내가 어제 오후에 현장을 돌아보고 있을 때, 당신은 동료들과 같이 헌 목재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녹슨 못을 뽑고 있었는데 당신은 못 하나가 뽑히지 않고 머리가 떨어지자 그대로 박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고작 못 하나 때문에 나를 해고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못 하나에 불과하지만 누군가는 대패질을 할 텐데 당신이 박아버린 못이 그 사람의 대패 날을 망가뜨릴 것이고 그로 인해 개인도 손해를 보고 우리의 공정도 차질을 빚게 됩니다. 이것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작은 문제이지만 언젠가 당신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 나왔다. 록펠러는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가져온다고 했으나 목수의 행위는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적당주의 즉, 도덕성이 문제였던 것이다. 노자(老子)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실제로 100 빼기 1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면 우리는 로마의 귀족들을 떠올리게 된다. 로마의 귀족들은 대단한 특권을 누렸지만 그에 못지않은 헌신을 했기 때문이다. 사재를 털어 거리 및 사회 공공시설을 세웠고 전쟁이 발발하면 귀족들과 그들의 자제들은 진두에 서서 전쟁을 이끌고 많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원래 노블리스(Noblesse)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제(oblige)는 '달걀의 노른자'를 뜻하는 말이란다. 이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말로 사회로 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리스)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무려 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쟁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길었던 백년전쟁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칼레'라는 작은 항구도시가 있는데 인구 12만인 이 항구는 영국의 도버 해협과 불과 20여 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 파리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하게
1. 들어가는 말 - 불편한 진실: 훈민정음의 위대한 약속과 현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긴 “슬기로운 이는 하루아침에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는 위대한 약속은, 비과학적인 통글자 암기 방식 앞에서 빛을 잃었습니다. 이 약속과 달리 우리 교육 현장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합니다. 필자가 지난 40년간 초등 교육 현장에서 직접 진행한 연구 실험 결과, 초등학교 4학년 63%가 여전히 한글 해득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한 문해력 부족과 학습 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 불편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자는 훈민정음 본질인 ‘규칙 과학’을 되찾아 ‘하늘 소리 규칙(소릿값 내기)’ 원리를 실제 수업에 적용하며 그 효과를 검증해 왔습니다. 현재 한글 교육은 마치 외래 언어 학습법처럼 통글자를 통째로 암기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대 11,172자(실용 2,500자 내외)에 달하는 문자를 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특히 겹받침 앞에서 아이들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의 독창적인 배움 원리는 사라지고 그저 자랑거리로만 남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손으로 세종대왕의 꿈을 완성해야 할 때입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 한 여학생이 교무실에 들렀는데 팔과 다리가 온통 흉터투성이어서 흡사 표범을 연상케 했다. 놀란 내가 눈이 휘둥그레 물으니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다가 모기에 물려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니, 너희 집의 모기는 이빨이 있어서 살점을 뜯어 놓는 모양이로 구나!” “아니죠. 모기는 피만 빨았는데 가려워서 긁어 상처가 났지요.” “그럼 이 상처는 모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만든 것이로구나!”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노라니 문득 지난 날 낭패를 당했던 때가 생각났다. 무심코 양복 차림으로 수풀에 들어갔다가 가시덤불에 걸려 옷이 엉망이 되었던 적이 있다. 같이 간 일행은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 문제가 없었으나 나는 정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온통 실오라기들이 뽑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그 옷은 교감 취임을 한다고 큰 맘 먹고 장만한 옷이었다. 속은 상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지라 ‘그나마 니트 소재를 안 입었기에 망정이다.’ 하고 말았다. 가시덤불은 거기 있었고 두 사람이 그곳을 지났으나 하나는 말짱하고 하나는 상처투성이라면 이는 가시덤불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는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이 문제였던 것
오랜 항해와 망망대해에 지친 1등 항해사는 어느 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여 근무 중에 술을 한 잔 마셨다. 하필이면 그 때 그것을 목격한 선장이 항해일지에 “오늘 1등 항해사는 근무 중 술을 마셨다.” 라고 적었다. 항해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선장은 자신이 없는 사실을 적은 게 아니라면서 끝내 기록을 지워주지 않았다. 며칠 후 선장의 근무 날이 되자 항해사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선장은 근무 중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자 선장은 불같이 노하여 소리쳤다. “이게 뭔가! 다른 근무 때는 내가 술을 마셨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항해사는 대답했다. “나는 사실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말은 묘한 힘을 가졌다. 단어 몇 개를 추가하거나 빼버리면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하고 앞뒤를 바꾸어도 전혀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말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치는 동안 착각이나 의도에 의해 자꾸 변하고 부풀려진다. 그래서 종착지에 도달할 즈음에는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말로 인한 화가 개인의 생에서부터 가족이나 국가에 미치고 인류의 역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내가 담임을 했던 여학
한 사람이 천국 문 앞에서 심판을 받았다. 그는 살아생전에 가난한 이웃을 돕기도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천사는 그의 천국 입장을 거부했다. “당신은 남의 것을 훔쳤습니다.” “내가 무엇을 훔쳤다는 말입니까?” “다른 사람의 존엄성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의 존엄성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오직 구걸을 할 때만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노아 벤샤의 『빵장수 야곱』이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84쪽). 가난한 사람은 구걸하기 위해 얼마나 망설이고 얼마나 자존심 상해했으며 자신의 신세를 슬퍼했을까. 레바논의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요청하기 전에 도와주는 것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 때 고개를 돌리십시오. 그들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마주치지 않도록-” 기독교의 십계명 중 제 8계명은 ‘도둑질 하지 말라’이다. 글자 수도 몇 자 안 되고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난해 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도둑질의 외연(外延)을 금
세월이 흘러도 결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기억이 그렇다. 남들은 유년이 그립다느니 다시 돌아가고 싶다느니 하지만 내가 유년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은 4학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담임 선생님이 결코 원하는 반장이 아니었다. 3학년 까지는 저학년이라 담임 선생님이 직접 임명을 하셨지만 4학년부터는 소위 고학년이라 하여 학급 회의에서 직선제로 뽑았다. 우리 반에는 선생님께서 내심 점찍어 놓으신 아이가 있었는데 눈치 없는 친구들이 나를 반장으로 선출을 했고 더구나 나는 지극히 내성적인 데다가 통솔력도 부족한 아이였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은 도회지에 있는 큰 학교에서 오셨다. 선생님은 정년을 앞둔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이었는데 수업도 주로 앉아서 하셨다. 그리고 전에 근무하시던 학교를 늘 그리워하셨다. 우리학교는 시골에 있고 규모도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야무지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엄마는 시골에서 볼 수 없는 멋쟁이였다. 파란 바탕에 하얀 땡땡이가 있는 원피스에 화사한 파라솔을 쓰고 종종 선생님께 인사를 왔다. 일
『족제비의 자존심』 초등학교 시절에는 붓을 쓸 일이 많았다. 미술 시간에 붓글씨도 쓰고 수채화도 그리고 하는 시간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술시간이 결코 기다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괴로움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미술에 흥미가 없거나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경제적 능력은 안 되는데 준비물이 너무 많았다. 깜빡 잊는 바람에 또는 살 돈이 없어서 준비물을 못 가져가 혼나던 기억이 많다. 그것마저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지만 어렵게 장만한 도구를 잃어버리고 다시 사달라는 말씀도 못 드리고 다가오는 미술시간을 전전긍긍하며 두려움 속에서 기다리던 시간들이 많았다. 나는 싸구려 개털로 만든 붓도 없어 풀이 죽어 있는데 족제비 털로 만든 붓으로 위용을 뽐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족제비 털로 만든 붓이 왜 특별한지를 그 때는 몰랐으나 훗날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좋아 개털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족제비는 자신의 털을 몹시 자랑으로 여겨 늘 털을 가꾸는데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언젠가 수능 모의고사에 ‘족제비의 자존심’이라는 지문이 있었는데 요지인즉 족제비는 목숨보다 자신의 털을 더 아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적에게
중국의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화씨(和氏)란 사람이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여 여왕(藇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에게 감정을 시켰더니 보통 돌이라고 했다. 화가 난 여왕은 화씨를 월형(刖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이번에도 옥 세공인은 쓸모없는 돌이라고 감정을 했고 이번에는 나머지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초나라 산 아래서 사흘 밤낮 을 울어 나중에는 눈물이 마르고 피가 나왔다. 이 소문을 듣고 문왕이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묻자 자신은 ‘형벌을 받아서 슬피 우는 것이 아니라 옥을 돌이라 하고 올바른 사람을 미친놈이라 욕하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감동을 받은 문왕이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게 하니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명명했으니 저 유명한 화씨의 옥이다. 《한비자》 화씨(和氏)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화씨지벽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마천의
오래 전 시골에 있는 조그만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새로 내부를 단장한 조그만 교회였는데 옹이가 촘촘한 판자로 벽을 두른 예배당에서는 아름다운 무늬와 함께 나무 향이 그윽하게 풍겨왔다. 무척 아늑했다. 잠시 눈을 감고 향기를 음미하노라니 깨달음이 수묵처럼 스며들었다. 그렇다. 나무의 생채기가 옹이를 만들고 그 옹이에서 향내가 풍겨오듯 내 영혼의 향기는 주로 상처에서 나온다. 난생 처음 미국을 간다고 어린애 마냥 좋아하던 아내가 보름이 지난 다음 돌아왔다. 그런데 썩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다. 무릎과 손바닥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돌아왔는데 대자연의 장엄함에 절로 무릎이 꿇렸는지 하필이면 이 세상 최고의 절경 가운데 하나라는 그랜드 캐년에서 넘어졌단다. 보름이 지난 지금도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면 자칫 응급 구조대를 부를 뻔 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가 보다. 아무튼 상처 때문에 여행기간 내내 힘들었다고 투덜거리는 아내를 달래다 보니 문득 그 때 보았던 예배당의 옹이가 생각났다. 낫에 베인 상처, 운동회 때 넘어진 상처, 거울을 보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갔다가 응급실 신세를 졌던 상처 등 내 몸에도 몇 개의 중요한 상흔들이 있다. 세월이 흐른 다음 아픔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