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의 탈무드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청각 장애인 두 사람이 길에서 마주쳤다. “여보게, 고기 잡으러 가나?” “아니, 고기 잡으러 가.” “응, 난 고기 잡으러 가는 줄 알았지.” 그리고 둘은 각각 자기 길을 간다. 마치 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과 국민들의 여론을 보는 것 같다. 모두들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자기 말만 한다. 자신에게는 전혀 문제가 앖는데 상대방이 귀머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그 둘은 또 두 동강이 난다.
한 번은 어떤 사내가 이비인후과 병원에 들렀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실은 내가 아니라 제 아내가 요즘 잘 듣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본인이 오셔야지요.” “그렇기는 한데 워낙 병원을 싫어해서요.” “그럼 댁에 가셔서 부인께서 얼마나 떨어진 거리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못 들으시는지 알아 오십시오.” 사내는 집으로 갔다. 현 관에 들어서니 아내는 주방에서 저녁을 짓고 있었다, “여보, 저녁 메뉴가 뭐야?(11미터)” “......” “저녁 메뉴가 뭐냐고- (7미터)” “....” “저녁 메뉴가 뭐냐니까? (4미터)” “.....” “저녁 메뉴가 뭐냐고 여러 번 물었는데...(2미터) ” “칼국수라고 4번이나 말했지!” 정작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담임을 하다보면 어려운 일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상담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여학생과의 상담은 더욱 어려웠다. 상담 요청을 하고서도 좀처럼 속내를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성적 문제인 것 같다. 장래 희망과 현실과의 괴리 때문인 줄 알고 열심히 조언을 한다. 데이터를 동원하고 효율적인 학습 방안을 얘기하고 정말 어려우면 차선책을 택하라고 조언을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낙심하지 않는 것이고 기복이 없이 꾸준히 하다보면 금방 나아질 거라고 30여분을 떠든다.
그러나 아이의 문제는 가정사로 변한다. 부모님과의 갈등에 대해 나름대로 다독인다. 세대 차이는 어느 집에나 있기 마련이고 세상에 완벽한 가정과 완벽한 부모는 없다고 이제 머지않아 독립을 할 터이니 조금만 참고 견디라고 또 30여분을 떠든다. 그러나 아이의 애매모호한 반응은 또 다른 주제를 향한다. 두어 시간이 경과한 후에 드러나는 문제의 본질은 친구 문제였다. A라는 아이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으나 그 아이가 최근에 다른 아이와 더 가까이 지내는 것 같다는, 그래서 속이 상하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독점욕에서 기인한 고민이었다. 맥이 풀린다.
돌이켜 보면 내가 범한 초년 시절의 시행착오란 마치 나는 담임으로서 전능자이고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자기 과신(過信)과 넘치는 의욕이었다. 아이의 말을 듣기 보다는 지레 짐작으로 충고와 조언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럴수록 아이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다 점점 관록이 쌓이면서 되도록 말은 적게 하고 듣기만 했다. 학부 때 공부한 상담 원리 중의 ‘비 지시적 통찰(非指示的洞察)’이 생각났다. 상담의 기본은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심중에 쌓인 *물루(物累)를 토로(吐露)하고자 찾아왔었다. *물루- 몸을 얽어매는, 세상의 온갖 괴로운 일(필자 주)
아이들은 혼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도 자신이 제시했다. 그리고는 자세히 상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그뿐 아니라 다음 날 쯤에는 감사 편지나 쪽지가 오기도 했다. 자신이 묻고 스스로 해결책도 제시하고는 내가 한 일은 가끔 맞장구나 치면서 듣기만 했는데 나더러 상담을 해 주었단다.
요즘 거리에 나가 보거나 전철을 타 보면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표정은 한 결 같이 잔뜩 화가 나있는 것 같다. 모두들 경계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이 경계심을 넘어 적개심을 느끼게 하는 완고함, 좀처럼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담장은 아마도 대화의 단절에서 기인한 문제일 것이다. 불신의 사회는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고 그럴수록 모두는 더욱 SNS나 반려동물에 빠져들며 서로를 가르는 장벽은 견고해져 간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우리가 귀를 열면 우리사회는 여전히 살만한 세상이고 우리가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선거일이 눈앞에 다가온 오늘 종일 거리마다 확성기들이 공허한 메아리를 토해내고 있다. 생각해 보라 신은 우리가 한 개의 입과 두 개의 귀를 가지도록 창조했음을-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