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워진 날씨 때문일까요. 그리 길지 않은 머리인데도 웬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약속 장소로 나가기 전 미용실부터 들렀지요. 유리문 너머로 정돈된 깔끔한 내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출입문 종소리가 울리자 원장님께서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인사를 건넵니다. “어서 오세요 ” 밝게 맞이해주시는 원장님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해집니다. 머리를 하는 동안 원장님은 늘 그렇듯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렇게 하나 둘 이야기가 이어지다보면 가족이야기, 지인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죠. 그러다 오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나름 판단해왔던 원장님에 대한 이미지, 즉 ‘원장님은 이런 사람일 거야’라는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할 때 주로 보이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둡니다. 외모나 직업, 그리고 현재 그가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죠. 저 또한 그랬습니다. 원장님은 부잣집 외동딸로 큰 어려움 없이 사랑만 받으며 자랐을 것 같았습니다. 또 지금 자리도 타고난 감각과 능력으로 자연스럽게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실제 원장님의 삶은 저의 상상
마릴라를 공감하며 책꽂이 한 편,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책에 눈길이 머무릅니다.가끔 외롭고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읽는 책, 바로 ‘빨간 머리앤’입니다. 천진함이 가득하면서도 자기 주관이 분명하고, 감성이 풍부한 앤처럼 살고 싶었던 나, 그 어떤 소설 속 주인공보다 제 마음을 움직였던 주인공 앤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읽었던 이 책의 내용은 세월이 지날수록, 제 마음 속에서 다른 색깔로 익어갑니다. 요즘 다시 읽는 이 책에서 느끼는 새로운 감정, 앤이 아닌 그녀를 키운 마릴라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합니다. 말수가 없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서툴게 삼키는 그녀, 조용한 마음으로 앤에 대한 애정 표현을 담고 살아가는 모습에는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마릴라는 앤을 사랑하지 않아서 엄격한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표현 방식을 달리했는지 모릅니다. 사랑스러운 앤에 대하여 마음에 담긴 말을 다하지 못하는 그녀 한 아이의 성장을 묵묵히 바라보는 침묵 속에는 걱정과 애정이 담긴 엄격함이 깃들여져 있지만, 그것이 부모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갑니다. 앤과 마릴라의 첫 만남 그리고
엄마는 요즘 저는 다시 글을 쓰고, 라디오 방송 진행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니 아이를 키우느라 잠시 일을 내려놓았던 시간이 파도처럼 떠오릅니다. 한동안 닫아두었던 내 삶의 무대가 다시 열리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나날들입니다. 그러던 며칠 전 저녁, 식사하면서 딸이 물어봅니다. “엄마는 왜 계속 영어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았어?” 저의 경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외국인과 함께 일하던 곳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갖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이론으로만 공부했던 영어를 계속 사용할 수 있어서 만족하고 다녔던 직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을 다니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날 무렵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친목을 다져가고, 엄마들의 모임에 상관하여 아이들의 우정이 다져졌던 시절이었기에 특히 여자아이들은 엄마가 일하는 것을 싫어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온 저는 늘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과
참 잘했어요 운동을 시작하면서 새벽을 시작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하루의 이끌림을 주고, 편안한 안정을 갖게 해주는 감사함이 점점 깃들고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은 서로 엄마 역할을 원했지만, 아빠 역할은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아빠 역할을 하였고 그런 저를 친구들은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고무줄놀이할 때는 달랐고, 아무도 저와 같은 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고무줄 안에 들어가 잘 뛰다가도, 운동신경이 없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편을 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 제가 싫어했던 수업은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체육이 시간표에 있는 날이면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비가 와서 실내에서 수업하기를 바란 적도 많았고 공휴일과 겹치기를 바라며 달력을 들여다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 저의 학창 시절, 어느 수업 시간이 기억납니다. 멀리 공던지기 연습을 하면서 나름 열심히 집중도 했었지만, 제 손을 떠난 공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발 앞에 떨어졌습니다. “지금 멀리던지기를 하는 거니, 포환던지기하는 거니?” 체육 선생님의 말씀에 친구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최선
엄마, 아빠 딸이라서 행복해 “엄마, 아빠 우리는 언제 여행가? 친구들은 다 외국으로 간다는데...” 연휴가 다가올 때면 자주 듣는 막내, 중학생 딸의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딸아이는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녁 밥상에 앉자마자 수저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대뜸 인스타그램 화면을 들이밀었습니다. 이 친구는 오사카에서 찍은 타코야키 사진, 저 친구는 방콕 수영장 셀카. “봐봐, 모두 가는데, 나만 집에 있잖아.” 한 마디, 한 마디에 부러움이 묻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식사 내내 말이 없다가, 설거지를 하는 제 등 뒤에서 조용히 한 마디를 덧붙였죠. “나는 추억이 없어.” 그 말에 괜히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 투덜대는 딸을 위해 짧지만 1박 2일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 고속도로가 한산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저의 예상과는 달리 잠시 들른 휴게소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목적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아마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희 가족처럼 말이죠. 사실 인간은
반복의 힘, 서툼을 익숙함으로 바꾸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부자연스러워 어색하기만 하죠. '나는 소질이 없나 봐' 노력해도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운전을 처음 배울 때 그랬습니다. 운전대를 직접 잡아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백미러를 보는 것조차 어려워 그저 앞만 보고 달렸던 시간들, 가족을 데리러 나갔다 만나지도 못한 채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홀로 돌아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빵' 하고 클랙슨이 울리기만 해도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 같아 당황했던 순간들, 그리고 기계식 주차장에 들어갈 때면 등에 식은땀이 흘렀던 적도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주유소에서 혼자 주유하는 일조차 한참이 지나서야 가능해졌습니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던지요. 제가 경험해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무심히 지나쳤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처음부터 쉬운 게 아니었음을 말이죠. 긴장의 연속이었던 그런 초보 시절을 지나 저도 어느새 운전이 편해진 순간이 왔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차선변경도 할 수 있고, 차창 밖으로 풍경을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죠. 지나고 보니 두려워했던
아버지의 침묵 음악이 예식장의 분위기를 더욱 경쾌하게 만듭니다.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신부는 혼자 입장합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오던 예전의 신부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신부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 찼고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당당해 보였습니다. 결혼식장은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다짐의 축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신부를 보다가 문득 오래전 저의 결혼식, 그날이 떠올랐습니다. 5월의 신부 웨딩마치 음악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떨리는 걸음으로 식장 안으로 들어갔던 추억 속에서 아버지의 담담한 표정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담담해 보였지만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아빠 저 결혼해서 서운하세요?”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마음속에서만 몇 번이고 맴돌았지요.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시간이 되었을 때, 저는 눈을 살짝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동안 참아두었던 감정선이 터져버릴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어머니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아버지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이쁜 딸이 아닌, 다른 곳을 찾는 듯,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칭찬받기 위하여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려라. 너 좋아하는 열무김치 담갔다” 저는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무릎이 아파서 계단도 천천히 오르시는 어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열무를 한 줄기씩 손질하고 계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시린 손으로 양념을 버무리시면서, 딸 생각을 하셨을 그 모습을요. “엄마!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아직도 많아요, 무릎이랑 허리 아프신데 그냥 두세요 .” “열무가 너무 싱싱해 보여서, 김치 좋아하는 우리 딸 주려고 만들었다” 사실 저는 매운 것을 잘 못 먹었습니다. 어릴 적 유난히 매운 것을 싫어하는 아이였습니다. 식구들이 많았던 그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는 많은 종류의 김치를 만드셨습니다. 파김치, 물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밥상 위엔 늘 김치가 가득했지만 저는 매울 때마다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밥을 남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김치도 없이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고 어른들의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식탁에 놓여있는 고기반찬과 댤갈 프라이는 오빠에게 양보해야 해야 했지만 저도 칭찬을 듣고 싶어서, 김치를 먹기 시작합니다. 물 한잔을 꿀꺽 삼키고 김치 한 조
엄마는 늘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전화기를 들면 늘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괜찮다. 잘 지낸다.” 그 말이 얼마나 당연하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엄마니까, 늘 그래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러실 거라고. 저는 그 말에 안심하며 짧은 안부 전화로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엄마, 다음 달에 한 번 내려갈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 채 어느새 오월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전해진 엄마의 입원소식. 화장실 가는 길에 넘어져 척추 골절로 입원을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번 달에는 꼭 내려가 뵈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구순의 연세라 입원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입원 후 엄마의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폐렴증상과 함께 호흡곤란까지 이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게다가 수혈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 의료진의 좋지 못한 예후에 관해 설명을 듣고, 엄마와의 약속을 더는 미룰 수가 없었죠. 퇴근 후 급히 시골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기차 밖 풍경은 이전과 다르지 않은데, 그날 기차 창밖의 모든 장면은 유난히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살면서 선택의 기로 앞에 설 때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알람 소리에 일어날지, 잠을 더 잘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지, 점심 메뉴로는 무엇을 고를지, 이처럼 작은 일상부터 인생의 중요한 순간까지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하죠, 어쩌면 이런 순간순간이 모여 우리 인생이 채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는 종종 선택 앞에서 망설입니다.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정 장애’라는 말이 있듯,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정해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저 역시 선택이란 명제 앞에서 때론 머뭇거릴 때가 있습니다. 조금 더 나은 결실을 위해, 후회를 줄이기 위해 말이죠. 후회는 흔히 아픔과 아쉬움을 동반합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지나간 과거에 마음을 붙잡아두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후회가 적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