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의 호흡 소리 휴일 오후, 글이 안겨주는 평온 속에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긴다. “카톡”. 평온함을 깨는 소리, 책에 고정되어 있었던 눈은 자연스레 휴대폰을 향한다. 업무 내용과 함께 전달된 파일. 반나절이나 남아있던 휴일의 여유와 평온함은 카톡 알림 소리로 마침표가 찍어진다. 내용을 보니 담당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내온 업무이다. 기분이 얹잖아 진다. 이러한 감정들은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며 점차 불편한 감정까지 만든다. 평온했던 마음에 금이 가고 화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려 한다. 천천히 호흡한다. 들이쉬고, 후우 내쉬고, 들이쉬고, 후우 내쉬고, 그렇게 호흡을 반복하며 내쉬는 숨을 따라 화가 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화라는 감정을 말없이 바라본다. “화가 나는구나. 쉬는 날 방해받아 불쾌했구나. 그 기분이 과거의 불쾌했던 일까지 떠오르게 만들어 화나는구나. 화가 날만 하는구나.” 화가 나는 감정을 인정하고 들여다보니 내 마음 그릇의 크기가 보이는 듯하다. 담을 수 있는 감정의 양, 소화할 수 있는 감정의 크기가 꽉 차 여유가 없음도 느껴진다. 마음의 그릇이 꽉 차 더 담지 못하고 금이 가고 새어 나오는 감정 화. 그러한 화가 말로, 행
생(生)이 여행이 될 수 있기를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마디가 있다. “할매는 이제 새로운 여행을 하러 가는 거잖아.” 엄마가 떠나던 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가 한 말이다. 아이의 그 말은 황망한 상황에서도 내 가슴에 새겨졌던 것일까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상념에 잠길 때면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늘나라에서 이제 편안하실 거라는 말도 아니고 여행을 한다니, 그냥 무심코 던진 말이었을까? 난 아이에게 삶은 여행이고 죽음은 다른 생을 위한 여정일 뿐이라는 비슷한 얘기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날 이후, 내 생에서 가장 가깝고 사랑했던 사람, 엄마를 떠나보내고 과연 죽음은 무엇인가를 자주 생각했다. 왜 그렇게 가슴이 찢기는 것같이 아프고 슬픈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상실감으로 다가왔던 건지를.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았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현생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에 태어나는 윤회(輪廻)는 있는가? 그도 아니면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면 영혼까지도 사라지는 것인가를
새해, 나의 세 번째 커피는 올해의 목표와 소망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마음으로 향하는 첫 출근길 떡국과 함께 한 살 더 먹는 나이가 마냥 좋았던 어릴 적과는 달리,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름이 없는데 하루 사이에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것에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드는 출근길이다. 새해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출근길 커피 한 잔, 점심시간 동료들과 마시는 커피가 아닐까? 뜨거운 커피를 손에 쥐고, 컵에 입술을 살짝 댄다. 아직 이불 속에 있는 듯한 머리를 카페인이 깨워주길 바라며 주문을 외우듯 호호 불어 본다. 입안에 들어온 따스한 아메리카노의 온기는 멍했던 머리를 깨운다. 반쯤 감긴 눈을 뜨게 한다. 온몸에 퍼지는 커피의 따스한 기운이 시렸던 몸과 마음을 녹이는 듯하다.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새해의 결심, 카페인 덕에 머릿속에 각인되듯 또렷해진다. 올 한 해, 아침잠을 깨우고 차가운 몸과 마음을 녹여준 커피처럼 나와 인연이 닿은 이들에게 작년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하고자 다짐하며 새해 첫 수업을 시작한다. 수강생들과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시작하는 수업, 오늘은 핸드드립 대신 라떼를 나누어 볼까 싶어 물어본다. “새해 첫 커피
커피 맛이 왜 매번 다를까요? 수강생이 묻는다. “강사님! 제가 자주 가는 집 앞 카페가 있는데요. 갈 때마다 커피 맛이 달라요. 왜 그런 거예요?” 수강생의 질문에 잠시 수강생을 바라본다. 그리고 되묻는다.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데 맛이 다른가요? “네, 똑같은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는데 갈 때마다 맛이 달라요.” “같은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주문하는데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거죠?” “네” 어떻게 대답을 할까 잠시 고민한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커피를 잘 알고, 일관된 맛으로 추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 핸드드립으로 추출된 커피의 맛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핸드드립으로 추출되는 커피의 맛이 갈 때마다 다르다면 그 이유를 몇 가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생두의 종류가 바뀌거나 품질이 다를 경우 그러할 수 있다. 생두의 종류가 바뀌면 원재료가 바뀌는 것이니 당연히 향미가 다를 수밖에 없고, 같은 종류의 생두라도 품질을 달리하면 커피의 맛에 영향을 준다. 두 번째 이유는 동일한 종류, 품질의 생두라도 로스팅이 균일하지 않을 경우이다. 커피의 향미는 로스팅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기에 로스팅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프로파일을 작성해
완급조절 지난 15일, 다니고 있는 음악학원에서 색소폰 연주회가 있었다. 연주회라고 해도 정식 음악회가 아니다. 크리스마스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음악학원에서 배우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평소 연습하는 곡을 발표하는 이벤트였다. 나도 이중주와 사중주를 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중주는 여름부터, 이중주는 10월말부터 열심히 연습했으니 연주가 끝난 후에 해냈다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 반작용인지 다음 날은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고 다행히 일도 없는 날이니 오랜만에 하루종일 쉬고 있었다. '완급조절'이라는 말이 있다. 야구에서, 투수가 모든 타자에게 전력을 다해 던지지 않고 상대에 따라 힘을 조절하는 일, 즉 강타자에게는 전력을 다하여 던지고, 상대적으로 타격이 약한 타자에게는 힘을 아끼며 던지는 경우를 이른다. 원래 있던 그런 뜻에서 발전되어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잘 맞춰서 활력을 다시 얻는 것도 의미한다. 평소 잘하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잘 쉬는 것이 어렵다. 조금 쉬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도 다른 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휴식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부정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자동
나와 마주하는 법 연두 빛 표지의 다이어리를 선물로 받았다. 2025년을 잘 맞이했으면 한다는 지인의 선물이었다. 늘 새해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달력과 스케줄러를 사기 위해 서점을 찾는데 올해는 지인의 선물로 좀 더 이른 시점에 2025년의 시간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나의 2024년은 어떠했었는지를 말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2024년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 빠르게 시간이 흐른 듯하다. 시간에 쫒기며 살아서인지, 등 떠밀리듯 타인에 이끌려 행했던 일이 많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지나버린 것 같아 여러 면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 해 열심히 사용했던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24년은 이렇게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각 월마다 써놓았던 여러 이슈들. 그리고 계획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며 설레었던 시간도 있었고, 힘들게 지나간 순간들도 있었다. 기록으로 남겨진 12개월의 시간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나를 찾아본다. 외부의 자극이 많은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하다. 지나간 날들이 모두 기억나지도 않고, 그 때의 내가 어떠했는지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쉽게 생각나지 않는 일들도 많다. 그
사는 게 힘들다는 너에게 겨울이 깊어갈수록 어둠은 일찍 찾아온다. 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감탄을 한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이 낮게 떠 있는 달이 무언가에 서서히 잡아먹히고 있는 것처럼 한쪽 귀퉁이가 잘려나간 채 어둠을 밝히고 있는 모양이 동화의 한 장면 같다. 문득, “저 달이 아름다운 동화처럼 느껴질 수 있을 만큼 나의 하루가 괜찮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 아침부터 조금 전까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과 유쾌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진 감사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토록 충만한 하루를 보냈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을 누군가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쓰이고 아팠다. 며칠 전, 가까이 지내는 동생이 “왜 나만 사는 게 이렇게 힘들까요?”라고 했던 말이 가슴에 얹혀서 내려가지 않는다. 꾹꾹 눌러왔던 마음을 풀어내는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동생도 저 달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한없이 슬퍼 보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누구는 충만함을, 누군가는 슬픔을 느꼈겠다고 생각하니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살아낸다는 말
색으로 짐작할 수 있는 생두의 나이 겨울, 시린 바람이 사람의 온기를 찾아 불어오듯 외투 속으로 파고든다.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지하철로 향한다. 북적이지 않는 따뜻한 지하철 안, 봄처럼 밝은 모자, 고운 색의 목도리, 두꺼운 외투, 부츠로 무장한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이 출발하자 겨울바람, 앙상한 마른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흔들리듯 할머니 한 분이 휘청하신다. 반대쪽 문에 몸을 기대 서있던 비슷한 연배의 여성분이 “할머니, 여기 기대 서셔.”라고 말하며 할머니를 잡아 본인이 서있던 자리를 양보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잠시 기대 서계시다 이내 다시 처음 있던 곳으로 걸어가 꼿꼿하게 서신다. 생기가 넘치는 한 여름의 나무처럼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듯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잠시 머물며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짧은 인연이었을지라도, 오늘은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지하철 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얼굴에서 나이와 상관없는 각자만의 생기가 느껴진다. 생두는 보관되는 기간에 따라 향미가 생기있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고, 점점 사라지는 시기가 있지만 사람은 그러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생두는 그린빈(Green bean)이라고도 하는데
12월과 컵 안의 물 12월도 중순이 되었다. 일본어로 12월은 ‘시와수’라는 별명이 있고, 한자로 ‘師走’라고 쓴다. 그 어원은 몇 가지 추정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 가장 유력한 견해에 따르면 ‘스님(師)이 바쁘게 달리는 달’이라는 뜻이다. 옛 일본에서는 매년 연말에 불명회(佛明会)라는 법회가 있었다. 스님들이 각지의 사찰을 돌며 법회를 하거나 겨울철에 스님을 초청해 독경 등 불사를 하는 집이 많았다는 이유로 12월은 스님이 바빠 그런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현대 일본에서는 스님을 집에 부르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별명은 여전히 남아 있고, 師를 선생님이라고 해석해 ‘평소 유유히 걷는 선생님도 바빠서 달리는 12월’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쁜 사람은 선생님뿐이 아니다. 이 시기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송년회가 많고 모두가 여러모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계절이기 때문이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바쁘다는 말이 한자로 쓰면 ‘忙’, 마음을 잃는다고 쓰인다. 바빠서 정신이 없다는 표현도 있듯이 바쁘면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시기라 오히려 조용히 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 초, 나는 번역서 1권, 내가 집필하는
감정을 마주 하는 것 다양한 색채들이 하얀 종이 위를 가득 채운다. 어느새 종이는 그림으로 채워졌고 그림 위에 나타내고 싶었던 감정의 이름을 적는다. 감정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며칠 전 참여한 세미나의 주제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감정은 우리의 행동과 선택, 그리고 대인관계에 깊은 영향을 준다. 흔히 감정을 기분이나 느낌에 비유하지만, 감정은 그 이상의 것으로 우리의 경험을 만들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기본적인 감정으로는 기쁨, 슬픔, 분노, 외로움, 부담감, 열등감, 두려움 등이 있다. 다양한 감정은 진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두려움은 위험을 인식하고 피할 수 있도록 하며, 기쁨은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호나 메시지를 주기도 하고, 상황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돕는다. 감정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고받는 감정을 통해 상대와 연결되기도 하고, 서로를 공감하기도 한다. 관계에서 긍정적인 작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