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시간이 많은 하루였다. 급하게 처리할 일도, 미리 잡힌 약속도 없었다. 읽고 싶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미뤄둔 집안일도 해치울 수 있겠다 싶었다. 여유롭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은 조금 먼 곳까지 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도착한 식당은 하필 휴무. 급히 다른 곳을 검색해 이동했지만, 이번엔 대기가 만만치 않았다. 더 돌아다니기엔 시간도 늦었고 배도 고파, 결국 근처에서 또 한참을 기다려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식사 한 끼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늦은 오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다. 딸아이와 카페에 가서 각자 책을 읽기로 한 약속도 결국 저녁 식사 뒤로 미뤄야 했다. 해 질 무렵, 마음 한구석이 스산해졌다. '오늘 대체 나는 뭘 한 걸까.' 많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사라져 있었다. 읽으려던 책도, 쓰려던 글도 결국 손도 대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내 하루를 몰래 훔쳐 간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흔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없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오늘 하루,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
언젠가 친구가 물었던 적이 있다.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그땐 나조차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몰랐다. 특별하게 어떤 생각을 하며 달리지 않았고, 문득문득 떠 오른 상념들은 금방 사라져 버리니까. 오늘 달리면서 그 답을 찾아본다. 더없이 좋은 계절, 이 가을에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청량한 가을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이른 아침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가을향기 가득한 자연을 느끼며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감사하다는 마음은 그렇게 내 안을 조용히 채우고 있었다. 최근에 봤던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가장 갈망하는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이고,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미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다. 얼마 전 멀리 보내드린 사랑하는 분이 생각났다. 언제나 함께하리라 생각했던 시간들, 슬프게도 그분과 함께했던 소중했던 시간은 이제 결코 다시 가질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셨던 큰 형부 집, 휴가철이 되면 우리 형제들이 자주 모이던 곳이다. 서울에 올라올 때면 정성스레
가면, 어느 모습이 나일까? 어렸을 적부터 친근한 영화 제목들이 있다. 슈퍼맨, 헐크, 그리고 스파이더맨. 하지만 정작 이런 제목의 영화들을 즐겨 보지는 않았는데, 독특한 의상을 입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왠지 남성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상하리만치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스파이더맨4를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히어로 캐릭터의 영화가 단순히 영웅담만 보여줄 거라는 생각은 나의 오해였던 것이다. 화려한 액션 뒤에 숨겨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도 충분히 공감하며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스파이더맨'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지만, 정작 사랑하는 친구들과 연인 앞에서조차 그 가면을 벗을 수 없는 외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영화 속 한 장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진 그레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에게 어떤 모습이 진짜 너냐고 묻는 장면이다. 가면을 쓴 스파이더맨이 진짜인지, 가면을 벗은 피터 파커가 진짜인지 그녀는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나는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속으로 대답했다. '가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 얇게 떠진 눈 사이로 새벽 2시를 가리키는 시계바늘이 보였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다시 잠을 청해보려 몸을 뒤척였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작스러운 통증에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옆구리 어디쯤에서 시작된 통증은 자세를 바꿀 때마다 날카롭게 되살아났다. 흔히들 말하는 '담'에 걸린 것이었다. 얼마 전 배우기 시작한 요가 수업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때 했던 어느 한 동작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런데 병원을 찾은 나는, 통증의 진짜 원인이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옆구리가 아니라, 목 안쪽 깊숙한 근육이 너무 오래 긴장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평소에는 목이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늘 어딘가에 힘을 꽉 주고 살아왔나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지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통증, 그때마다 나는 늘 아픈 부위만 들여다보았을 뿐, 정작 그 뒤에 숨은 이유는 헤아려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목을 풀어주자, 다른 곳의 통증까지 훨씬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그동안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진
시작은 많았지만 깊이는 없었다 강연을 좋아한다.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있어서다. 그 사람만의 언어와 표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순간, 몰입도가 다르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책보다 강연에서 더 쉽게 마음에 와 닿는다. 얼마 전 벌꿀로 유명한 안상규 대표의 토크콘서트를 다녀왔다. 설렘 때문이었을까, 새벽부터 눈이 떠졌고 천둥소리에 잠깐 걱정도 됐다. 다행히 기차 탈 무렵엔 비가 잦아들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대구역행 기차에 올랐다. 어떤 분일까? 기차 안에서 미리 검색해본다. 개발도상국에 학교를 세우며 여러 후원 사업을 이어온 이력이 눈에 띈다. 몸소 나눔을 실천해온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다가갔다. 오늘 강연이 내 삶에 새로운 점 하나를 찍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강연장에 들어섰다. 무대에 선 안상규 대표, 나와 같은 고향인 경상도라 그런지 사투리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작은 체구였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어낸 삶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리라. 44년을 벌과 함께 산 인생. 벌들을 온몸에 붙이고 대중 앞에 섰던 숱한 시도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원하며
몸이 기억하는 쉼 유난히 힘들고 지친 하루. 가족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가슴에 내려앉더니,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스르르 빠져나가 버렸다. 퇴근 후 해야 할 일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잠시 뒤로한 채 무작정 목욕탕으로 향했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평소라면 10분이면 닿았을 거리를, 그날따라 발걸음이 무거워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마감을 앞둔 탕 안에는 한두 사람의 모습만 보였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나를 감싸 안는 듯했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나는 오랜만에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했다. 물이 내게 다가오는 그 감각. 얼마나 따뜻한지, 또 얼마나 서늘한지. 물속에서 흔들리는 내 몸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몸통을 좌우로 흔들어도 보고, 아이처럼 발장구도 쳐 보았다. 몸에서 힘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마치 태초의 양수 속에 떠 있던 아기가 된 것처럼.두 다리를 가만히 모아도 보고, 눈을 감아도 보고, 깊은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렇게 감각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기울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안 깊은 곳의 장기들까지도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뛰는 박동,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의 조용한
고모의 피아노 매년 4월 식목일이 다가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산소를 고모와 함께 찾아갑니다. 산소를 갔다가 멋진 카페도 들려보고 맛집에서 식사하는 기분이 일 년에 행해지는 연중행사로 즐겁습니다. 고모를 모시고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하다 보면 고모의 모습 속에서 자상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다가옵니다. 고모와의 추억 속에서 함께한 대화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이 몰입되어 갑니다. 학교음악 선생님으로 정년 되임을 하시고도 늘 바쁘신 모습의 고모 어릴 적 기억으로, 저에게는 연예인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진 미모의 모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특히 피아노를 멋지게 치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제 기억에 있습니다. 예쁘고 젊은 고모의 얼굴과 함께 피아노 건반이 움직이는 그 시간은 마치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음악을 선물로 주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고모의 하얀 손은 악보의 음표들에 마술을 거는 듯했고, 그런 모습을 닮아가고 싶은 저는 며칠 동안, 엄마를 조릅니다. “엄마! 나도 고모처럼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 피아노학원에 가고 싶어요” 심부름도 열심히 해보고 국어 시험도 100점을 받고 나서야 드디어 피아노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은 바람과는
새 신발이 편해질 무렵 여름이 다가오면 외출을 준비하는 손길이 조금 더 바빠집니다.선글라스, 양산, 물, 썬크림등이 가방 속으로 들어가면 겨울보다도 더 묵직한 가방이 됩니다. 잘 신고 다니던 운동화도 왠지 답답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신발가게에 놓여있는 여름 신발에 눈이 갑니다. ‘사놓고도 결국 운동화만 신는 건 아닐까’ 시원하게 신고 다닐 샌들을 사고 싶지만 운동화만 또 신을까 봐 갈등을 하다가 결국 신발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운동화처럼 편안한 샌들을 추천해주세요 ” 직원이 웃으며 말했습니다.“고객님! 요즘은 굽이 있어도 착용감이 편안한 여름 샌들이 아주 많아요. 마음에 드는 것부터 한번 신어보고 결정하세요” 몇 켤레를 신었다 벗기를 반복하다가 그중에서 제일 편한 것을 선택합니다.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그 기억을 떠올리며, 새 신발을 신고 버스정류장을 향하지만, 얼마 걷지도 않아 발등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샌들의 가죽이 발등을 너무 조여서, 벌겋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잠시 약국에 가서 상처가 난 발등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면서, 신발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냥 운동화를 신고 다닐걸. 괜히 굽이 있는 신발을 사서
내려놓아야 채워지는 것들 이제 조금 더위가 지나가고 있다. 너무나 더웠던 올해 여름, 늦은 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다녀왔다. 평소 같으면 노트북과 책들로 가방이 무거웠겠지만, 이번에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충전시키고 싶어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녀왔다. 이렇듯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있어야 다시 돌아와도 새로운 회복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 바쁜 일상에 그렇지 못한 듯하다. 휴가를 가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메일함을 확인하고, 밀린 업무를 걱정한다. 몸은 바닷가에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사무실에 남아있다. 나 또한 그랬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멈추는 것을 불안하게 만든다. 잠시라도 뒤처질까 봐, 남들에게 게을러 보일까 봐, 우리는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늘 반쯤 켜진 상태로 방전되어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괜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고, 여행지에서 떠오른 생각이라도 적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완전한 쉼이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쉼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여긴다. 하지만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랑의 잔소리가 지나가면 딸아이가 인사를 합니다. “엄마 카페에 공부하러 갔다올께” 그러나 제 눈에는 아이가 착용하고 있는 커다란 헤드셋이 보입니다. 제 눈에는 아이가 쓰고 있는 커다란 헤드셋이 보입니다. “도서관에 안가고 카페가서 공부하려고? 그리고 길거리에서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면 불편하지 않겠니? 그러다 뒤에서 차가 지나가도 모르겠다 ”“엄마! 요즘은 도서관보다 카페가 더 공부가 잘돼요. 그리고 이렇게 커다란 헤드셋이 유행이야” 딸 아이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히면서, 그 순간 어릴 적 어머니의 음성이 귀에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딸 아이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히면서, 헤드셋을 쓴 채 총총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문득 그 뒷모습 위로, 어릴 적 제 뒷모습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겹쳐옵니다. 항상 앞을 보고 차 조심하고 이어폰 듣지 말고 가라 도서관을 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항상 앞을 보고 차 조심하고 이어폰 듣지 마라 도서관을 가는 저에게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모습을 걱정하셨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항상 뒤로 하고 집 밖을 나왔습니다. 엄마는 공부할 때 늘 음악을 틀어놓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