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의 행렬 뒤에 포로가 된 노예를 세워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누리는 영광이 영원하지 않으며, 인간의 운명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인간의 영화가 길지 못하고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이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때 잊지 않으려는 그 처사는 현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멸망했음은 망각하고 말았기 때문이고 결국은 망각하고 마는 것이 인간의 슬픈 운명이다. 어느 날 페르시아의 한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그 또한 삶의 균형감각을 잃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유대인의 지혜서 미드라쉬에는 이 반지가 다윗왕의 반지라고 쓰여 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우두머리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나를 위하여 반지 하나를 만들어라! 거기에 내가 매우 큰 승리를
한 해 농사의 풍흉(豐凶)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추수 때이다. 풍작인 줄 알았는데 수확이 허망할 때가 있고 농사를 망친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소출이 많을 때도 있다. 사람도 그렇다. 그가 잘 살았는지 잘 못 살았는지는 장례식을 가보면 안다. 어떤 이는 잘 사는 것 같았는데 정작 장례식에 가 보면 싸늘한 분위기이거나 여기저기서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수군거려지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저 그렇게 산 줄만 알았는데 미담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정작 정승이 죽었을 때 보담도 그가 기르는 개가 죽었을 때 조문객이 많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력자가 살았을 때는 면전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비위를 맞추던 사람들도 그가 유명을 달리하고 나면 깃털처럼 가볍고 부운(浮雲)처럼 무상한 그 모든 감칠 맛 나던 언어들을 거두어들이고 진심어린 평가들을 쏟아놓는다. 그 동안 숱하게 많은 장례식을 참석했고 어떤 장례식은 단순한 조문객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자로 또는 기도자로 참석한 것도 부지기수다. 장례식의 풍경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그저 무덤덤한 장례식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민망한 장례식도 있다. 기도를 부탁받았을 때 고인에 대한 어떤 위로도 부활에 대한 소망도 말
50여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미국 동부를 여행하고 있을 때 날마다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벌써 여권, 비자를 비롯하여 지갑 신발 휴대폰 등 각종 물건을 잃어먹기 시작하더니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가방을 바꿔와 공항은 공항대로 여행사는 여행사대로 본인은 본인대로 홍역을 치렀다. 호텔에서는 컵라면에 물을 붓지 않아 전자레인지를 태워 먹기도 하였고 어느 날은 달리는 버스 속에 기다란 갈색 뱀이 통로를 따라 기어 나와 기겁을 하였더니 뒤쪽에서 엎지른 콜라가 통로를 따라 흘러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고로 잠시도 편한 순간이 없었다. 아이들은 프라이팬 위의 콩처럼 튀었다. 주의도 당부도 호통도 아무 효험이 없었다. 우리는 버스 두 대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한 번은 2호 자가 문제가 있어 점심이 늦었고 기다림에 지친 1호차는 하는 수 없이 점심을 먼저 먹고 다음 행선지로 먼저 출발을 했다.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식당에 휴대폰을 두고 왔단다. 난감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국과 달리 아무데서나 차를 돌릴 수도 없고 더구나 고속도로에서는 대책이 없었다. 그러나 뒤늦게 도착한 2호차 덕분에 되돌아가는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도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보면 위험한 순간들이 있다. 종종 차 앞을 가로막고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귀는 이어폰으로 막고 시선은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다. 참다못해 경적을 울리면 그제야 눈은 여전히 휴대폰을 응시한 채 한 발짝 비켜선다. 지하철을 타 보면 거의 모두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휴대폰에 몰두하고 있다. 약간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숫제 카뮈가 말한 ‘의식이 단절된’ 세상에 살고 있다. 개인적인 생활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하는 것은 국회의 모습이다. 같은 사안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데도 서로 다른 주장만 한다.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자신의 당(黨)이 결정한 내용만을 주장한다. 마치 언어가 다른 사람들 같다.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다양할 텐데도 특정 당(黨)에 들어가기만 하면 생각이 통일 되는 모양이다. 국가와 국민들이 당면한 문제는 안중에도 없고 당리당략(黨利黨略)만을 사수(死守)하려 한다. 민생은 물론 안위와 생존이 걸린 안보나 국방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TV의 한 오락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한다. 참가자들에게 헤드셋을 착용하게 한 다음 소음을 흘러
오래 전 나에게는 애장(愛藏)하는 분재가 한 점 있었다. 봄이면 연분홍의 화사한 꽃을 피우면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자태에 늘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래하는 화원 주인이 학교에 배달 차 왔다가 분재를 보고는 말릴 새도 없이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내 굵은 가지 하나를 잘라버렸다. 화가 났고 나의 놀라움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재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늘 아쉬웠던 2%가 채워져 있었다. 잘라냄으로 완성이 되다니! 문득 학창시절에도 도장을 참 잘 새겼던 친구가 생각났다. 장난삼아 고무지우개에 글자를 새기는 것부터 상수리에 새기기도 하고 나무나 아크릴 같은 것에 진짜 도장을 새기기도 했다. 훗날 생각하니 이 원리는 사람 사는 이치하고도 연관이 있었다. 친구의 칼끝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갈 때 밋밋하던 나무에 글자가 생겨나고 문양들이 나타나던 것처럼 우리 인간도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낼 때 놀라움으로 꼴 지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짐 콜린스는 말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일하고 또 일하고, 반복해서 일함으로써 가속도를 내려고 엄청난 할 일 목록을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제주시 건입동 426번지에는 오랜 풍상을 견뎌온 돌비(石碑)) 하나가 있다. 그 비(碑)는 예사로운 비가 아니다.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고 ‘은광연세(恩光衍世-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빛난다.)라는 내용이 엄청난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이 굉장한 비의 주인은 정조 때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다간 한 여인이었다. ‘김만덕’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기생의 수양딸로 들어가 한 때 기적(妓籍)에도 올랐었으나 훗날 신원이 회복되어 장사로 수많은 제물을 모았고 제주에 극심한 흉년이 들고 정부의 구휼미를 실은 배마저 침몰하여 모두 굶어죽게 되자 만덕은 자신의 사재를 모두 털어 사람들을 구제했다. 정조는 지방관들에게 영을 내려 만덕의 소원인 금강산 유람을 시켜주었고 체제공은 영의정의 신분으로 기녀였던 만덕의 전기를 친히 기록했으며 석학인 박제가는 그녀를 위해 한시(漢詩) 네 수를 적어 주었다. 그리고 훗날 제주에 유배 갔던 추사 김정희가 그녀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은광연세’ 라는 현판을 썼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비석이 만덕에 대해 써 놓은 글도 전한다. 한 여자로 인하여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나라가 들썩이니 그야말로 ‘은광연세’다. 만덕 그녀가 굶주리는 백성을 외
해가 바뀌면 ‘올해는 좀 나은 해가 되려나’ 기대들을 한다. 아니 기원을 한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천재지변에다가 인재(人災)가 겹치기도 하고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해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전쟁에다 트럼프 발(發) 전쟁까지 겹쳐 물가는 치솟고 생필품까지 수급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극심한 어려움은 인간이 자초한 것이고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도 인간이다. 그것이 단순히 예측하거나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 할지라도 어떤 질서 아래 모두가 힘을 합한다면 후유증울 훨씬 줄일 수 있을 텐데도 그것을 통해 오히려 이득을 취하려 한다거나 홀로 면하기 위해 상황을 더욱 악하게 만든다. 전쟁도 국익을 위해 시작하는 일이고 물가가 오르면 사재기를 한다. 한 편에서는 가짜를 만들고 원산지를 속이고 심지어는 인체에 해로운 것도 버젓이 유통을 시킨다. 대한민국은 마약에 위협 받는 국가가 되었다. 정권 수호를 위해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볼모로 전쟁 상황을 획책하기도 하고 국가적이고 국민적인 슬픔마저도 상술에 이용하려 한다. 슬픈 일이다. 이 모든 불행의 기저(基底)에는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상실해 버린 인류의 비애가 있다. 이사카
미국 앨라배마주의 엔터프라이즈라는 작은 마을에 가면 특별한 감사의 탑이 서 있다. 이런 일들 그러니까 탑이나 비석 따위로 무언가를 기리는 일들은 흔히 있는 것이나 이 마을에 있는 탑을 유독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 탑이 신이나 사람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벌레에게 감사하는 탑이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주는 미국의 남부에 있는 주이고 일찍부터 공업이 발달한 북부와 달리 남부는 목화를 비롯한 농업을 주로 하는 지역이었다. 그중에서도 앨라배마는 ‘Cotton State (면화의 고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목화를 많이 재배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훗날 노예해방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스토우 여사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배경이 바로 노예를 이용한 이 목화 산업이었다. 그래서 공업이 주가 되었던 북부는 노예 의존도가 낮았지만 남부는 노예 해방을 끝내 거부했던 이유도 이 목화 산업을 위한 노동력 때문이었다. 이 앤터프라이즈라는 마을도 목화를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이어서 목화 재배 때가 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일꾼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1895년 그 지역에 목화 벌레들이 창궐했고 목화 벌레들의 피해가 얼마나 컸던지 그 해 수확이 평년의 삼분의
BC 6세기에 로마는 폭군이었던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그러나 쫓겨났던 타르퀴니우스는 에트루리아인들과 연합하여 왕정을 수복하고자 로마로 쳐들어왔다. 그리하여 로마-클루시움 전쟁(BC508~506)이라 불리는 전쟁이 발발했다. 이를 예상치 못했던 로마는 무방비였고 상대적으로 침략군은 어마어마한 대군이었다. 로마의 농민들과 시민들은 도망치기에도 시간이 없었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도 할 수만 있으면 도망을 칠 기회를 엿보았다. 한편 침략군이 로마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티베르강 위에 건설된 수블리키우스의 다리라고 불리는 나무다리(木橋)가 유일한 통로였다. 로마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나부낄 때 홀로 다리를 막아선 병사가 있었다. 하급 장교인 호라티우스 코클레스(Publius Horatius Cocles)였다. 그는 전 집정관 호라티우스 풀빌루스의 조카였고 호라티우스 가문은 로마 왕정 시절부터 로마를 수호하는 데에 있어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그는 적군이 이 다리를 통과하면 로마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력을 다해 적군을 저지했다. 후방의 나무다리를 비워 놓으면 적들은 곧 팔라티누스 언덕과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채우
이른 아침 새까만 벌레 한 마리가 방을 가로질러 기어가길래 슬쩍 건드리니 신경질적으로 꽁무니의 집게를 번쩍 쳐들었다. 건드리면 재미없다는 뜻일 게다. ‘아니, 이놈 봐라. 버마재미가 수레를 가로막는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을 흉내 내는구나! 그런다고 내가 겁을 내겠냐? 실소(失笑)를 하며 밖에 내다 버렸다. 비록 미물이라도 지상에 사는 생물들은 저마다의 방어기재(防禦機才)가 있다. 기가 막힌 보호색을 가지고 적을 기만하는 것들도 있고 어떤 나방은 커다란 눈 모양의 문양이 있어 상대로 하여금 기겁을 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심지어는 앞뒤를 혼동하게 만들어 퇴로를 차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개나 닭은 목덜미의 깃털을 세우거나 날개 죽지를 펼쳐 몸집을 부풀린다.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이다. 이른 바 허장성세(虛張聲勢)다. 사람은 어떠한가. 만물의 영장답게 사람에게는 다양한 방어 기재가 있다. 말로 허풍을 떠는 허장성세는 물론 권력자와 친분관계를 내세워 호가호위(狐假虎威)하기도 한다. 선거용 벽보에 유력인사와 찍은 사진을 내세우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가진 척, 잘난 척, 유식한 척, 용감한 척..... 많은 경우에 쓰이는 ~척이라는 단어는 사실은 그렇지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