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제 22편에 진(晋)의 대부 지백(智白)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부친인 지선자가 자기의 장자 지백으로 후사를 삼으려 하자 주변 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아름다운 턱수염이 길고 큰 것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것이 뛰어나고, 기예(技藝)가 뛰어나고, 교묘한 문장과 말솜씨가 뛰어나고, 세고 굳고 과감한 것들이 뛰어납니다. 이와 같지만 그는 아주 어질지 못합니다. 만약에 끝내 지백을 세우면 지씨 종족은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선자는 주위의 말을 듣지 않고 지백에게 권력을 물려주었고 과연 오래지 않아 지백은 자신의 용력만 믿고 주변의 제후들을 윽박지르다 멸망을 하고 만다.
옛 사람은 재주와 덕(德)을 온전히 다 갖춘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하며, 재주와 덕이 아울러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며 덕이 재주보다 많은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하고, 재주가 덕보다 많은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한다. 재주와 덕을 겸비하기가 어렵지만 둘 중 하나만 가져야 한다면 덕을 갖추는 것이 맞다.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재주는 재앙이다. 위인들 중 많은 이들은 재주가 덕을 능가해 자칫 잘못될 수 있었으나 자신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덕으로 제어하기에 이르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다. 한 무제(漢武帝) 때의 동중서가 그랬고 조선 초의 맹사성이 그랬다.
동중서(BC179?-BC104?)는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작정하고 공부를 하러 산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명석했던 때문인지 작정한 기한 보다 일찍 성취감을 느끼며 하산을 하였다. 입신양명할 생각에 부풀어 말을 달려 어느 고을을 지나가는데 어린 사내아이 하나가 동구에서 흙으로 토성을 쌓아 놓고 놀고 있다가 동중서가 다가오자 두 팔을 벌리고 가로막았다 “애야, 내가 지나가야 하니 비키거라.” “안 돼요. 이곳은 성(城)이니 말이 비켜 가야지 어찌 성이 비킨단 말인가요?” 어이가 없어진 그는 아이에게 “너 올해 몇 살이냐?” 물었고 아이는 일곱 살이라고 대답했다. “이제 겨우 일곱 살짜리가 말을 그리 조리 있게 한단 말이냐?” 놀라 묻자 “물고기는 알에서 깨자마자 헤엄을 칩니다. 하물며 사람이 일곱 살이면 이른 것은 아닙니다.” 문득 그는 깨닫는 바가 있어 말머리를 돌려 다시 산에 들어가 남은 기간 공부에 매진을 하였고 드디어 청사(靑史)에 빛나는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편 조선 초 청백리로 이름을 남긴 맹사성도 애초에는 자만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가 19세에 장원급제하여 파주 군수로 부임하였을 때 그의 자만심은 하늘을 찔렀다. 하루는 무명선사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고을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스님이 말하기를 “나쁜 일 하지 않고 좋은 일만 하면 됩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압니다.” 맹사성은 못마땅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 스님은 “어린아이도 다 알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팔십 노인도 어려운 일이지요” 라고 말하고 나서 차나 한잔 들고 가라며 차를 따르는데 차가 가득 넘쳐 방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에 맹사성이 "스님, 찻물이 넘쳐흐릅니다.” 라고 말을 하자 “찻잔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어찌 지식이 넘쳐 인격을 망치는 것은 모르십니까.” 그 말을 들은 맹사성이 부끄러움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급히 나오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치자 스님은 “몸을 낮추면 머리를 부딪칠 일이 없지요” 하며 겸손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맹사성은 그 것을 마음에 새겼고 그 후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한 청백리가 되어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정승이 되었다. 그는 정승이 되어서도 비가 새는 집에 살았으며 아무리 하급 관리가 찾아와도 의관(衣冠)을 단정히 하고 예를 갖추어 맞이하였다 한다.
도방고리(道傍苦李)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길 가의 오얏은 쓰다’라는 뜻이다. 일견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인다할지라도 써서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여지껏 거기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국가 요직에 앉힐 요량으로 인사청문회에 세웠다가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낙마하는 것을 자주 본다. 기실은 도방고리였던 것이다. 동중서나 맹사성이나 그들이 위대한 것은 훌륭한 자질을 지녔다 해서가 아니라 넘치는 자만심을 덕으로 제어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재승덕(才勝德) 즉, 재주가 덕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