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 또는 이민 가고 싶은 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스위스가 첫째나 둘째 정도로 등장한다. 영세 중립국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프스와 푸른 초원지대, 그림 같은 집들 .... 하나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스위스는 정말 살고 싶은 부러운 나라다. 그러나 시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스위스에게도 몹시 아픈 기억이 있다. 너무 가난하고 살기 힘들어 스위스의 선조들은 이웃 나라의 용병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들은 비싼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웃 나라의 전쟁에 참가하여 피 흘려 죽으면서 목숨의 대가로 후손들을 먹여 살렸다. 루체른에 가면 ‘빈사의 사자상’이 있는데 마크 트웨인은 이 조각상을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조각상이라 했다. 옆구리에 부러진 화살이 박힌 채 죽어가는 사자는 후손들을 위해 죽어간 선조들을 상징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지키기 위해 고용된 스위스인 용병 786명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시민군도 그들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었고 루이 16세 마저도 이제 되었으니 도망을 가라고 권유 했으며 근위병도 도망가고 없는데 그들은 끝까지 목숨을
엊그제 부끄러운 기사가 전 세계에 유포되었다. 기사의 내용인즉 일본의 유명한 관광지에 생고기와 김치 라면과 같은 음식물 들이 종이 플라스틱 캔 병 등과 함께 버려져 있었는데 문제는 한글로 표기된 봉투에 담겨져 버려졌다는 것이다. 진위를 따지기 전에 한글이 몹시 부끄럽다. 우리 국민의 소위가 아닐 것이라고 애써 부인하고 싶지만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지금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본다면 그 사건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서울 도심은 노상방뇨로 곤욕을 치루고 있고 청계전이나 인천공항 등도 몰상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꽤 오래 전 일이기는 하다. 친척 방문을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지척에 이웃하고 있어서 낯설지 않은 나라, 오랜 옛날부터 우리와 역사적으로 얽혀 있는 나라, 우리에게 너무나 아픔을 준, 아무리 가까이 하려 해도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나라 일본을 찾은 것은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말이었다. 더구나 고질적인 독도 문제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때라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주춤거리며 트랩을 내렸다. 첫발을 디딘 나리타공항의 첫 모습은 인천공항에 비해 무척 낡고 초라한 모습이었고 외국인의 입국 수속은 길고 지루해
정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정홍순(1720숙종 46~1784정조 8)이라는 훌륭한 재상이 있었다. 그가 호조판서로 있을 때 수하에 김 모라는 착실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늘 꾀죄죄하게 가난을 못 벗어나고 있어 하루는 홍순이 물었다. “자네는 나라에서 주는 봉록으로 살림이 펴지지 않는가?” “아니올시다. 봉록은 넉넉하오나 군식구가 20여 명이라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네네 식구는 몇인가?” “여섯 명이올시다.” “그럼 군식구들을 다 쫓아 보내게” “저를 의지하고 있는 가난한 친척들이라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해직일세. 내일부터 나오지 말게.” 이렇게 김 모는 어이없이 해직을 당하고 말았다. 그 후 일 년 뒤, 정홍순은 사람을 보네 김 모를 불렀더니 그는 더 초라한 모습으로 호조에 나타났다. “아직도 군식구를 먹이는가?” “아니올시다. 제가 해직 당하자 하나 둘 다 제 발로 가고 지금은 제 식구 여섯뿐입니다.” “하하 그것 참 잘되었네. 내일부터 다시 호조에 나와 일을 보게. 하도 딱해서 자네 대신 군식구를 쫓아 준 걸세. 섭섭하게 생각 말게. 여기 일 년 치를 모아둔 봉록이 있으니 가져가게. 실은 자네를 해직시킨 게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시작된 페르시아 왕국은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리 큰 세력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550년경을 기점으로 점점 팽창하기 시작하여 서아시아 전체를 통합하면서 동양의 패권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짧은 시간 내에 권력을 잡은 사람이 다레이오스(다리오) 왕이다. 그는 페르시아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왕으로,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 일부까지 차지하고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방면까지, 북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가 그처럼 빠른 시간에 권력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을 가진 민족들을 통합시킨 데 있고 그 통합의 비결은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이었다. 다레이오스가 왕이 되었을 때, 그리스인들을 불러놓고 돈을 얼마나 주면 그들의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먹을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리스인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런 짓은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다음에 다레이오스는 부모의 시신을 먹는 인도의 칼라티아이 부족을 불러놓고, 돈을 얼마나 주면 부모의 시신을 화장하도록 허락하겠느냐 물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불가하다고 말했다. 칼라티아이인과 같은 식인 풍
완숙 토마토를 샀다. 빛깔도 좋고, 유기농 재배를 하였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잔뜩 기대를 하고 먹어보니 아무런 맛이 없다. 고개를 갸웃하며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먹어보니 싱싱하고 맛이 좋다. 어제는 왜 맛이 없었을까? 하루 사이에 숙성이 되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는 수박을 먹은 다음 토마토를 먹어서 그랬던가 보다. 단맛은 기분을 좋게 하며 느낌이 강하고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인류는 꿀을 좋아하고 설탕을 비롯한 각종 단맛을 찾으려는 노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설탕은 묘한 놈이다. 뒤에 먹는 음식물의 맛을 아주 버려놓기도 하고 짠 음식도 감쪽같이 간을 맞춘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은 곤란하고 불편한 일이 발생했을 때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설탕요법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설탕이 소금을 중화시키는 것은 아니고 우리의 미각을 속일 뿐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술이나 마약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들이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는 딸기를 먹을 때도 토마토를 먹을 때도 설탕을 찾는다. 그렇게 되면 과일의 새콤한 맛도 쌉쌀한 맛도 모두 달콤함 속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의 행렬 뒤에 포로가 된 노예를 세워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누리는 영광이 영원하지 않으며, 인간의 운명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인간의 영화가 길지 못하고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이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때 잊지 않으려는 그 처사는 현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멸망했음은 망각하고 말았기 때문이고 결국은 망각하고 마는 것이 인간의 슬픈 운명이다. 어느 날 페르시아의 한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그 또한 삶의 균형감각을 잃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유대인의 지혜서 미드라쉬에는 이 반지가 다윗왕의 반지라고 쓰여 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우두머리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나를 위하여 반지 하나를 만들어라! 거기에 내가 매우 큰 승리를
한 해 농사의 풍흉(豐凶)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추수 때이다. 풍작인 줄 알았는데 수확이 허망할 때가 있고 농사를 망친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소출이 많을 때도 있다. 사람도 그렇다. 그가 잘 살았는지 잘 못 살았는지는 장례식을 가보면 안다. 어떤 이는 잘 사는 것 같았는데 정작 장례식에 가 보면 싸늘한 분위기이거나 여기저기서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수군거려지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저 그렇게 산 줄만 알았는데 미담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정작 정승이 죽었을 때 보담도 그가 기르는 개가 죽었을 때 조문객이 많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력자가 살았을 때는 면전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비위를 맞추던 사람들도 그가 유명을 달리하고 나면 깃털처럼 가볍고 부운(浮雲)처럼 무상한 그 모든 감칠 맛 나던 언어들을 거두어들이고 진심어린 평가들을 쏟아놓는다. 그 동안 숱하게 많은 장례식을 참석했고 어떤 장례식은 단순한 조문객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자로 또는 기도자로 참석한 것도 부지기수다. 장례식의 풍경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그저 무덤덤한 장례식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민망한 장례식도 있다. 기도를 부탁받았을 때 고인에 대한 어떤 위로도 부활에 대한 소망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