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사장 인부가 발 밑 흙더미가 무너지는 바람에 미끄러져 지하층 기초공사장으로 추락했다. 그는 솟아오른 철근에 하나는 대퇴부 대동맥 바로 곁으로, 하나는 등에서 폐를 약간 비켜서 가슴으로, 다른 하나는 목 뒤에서 앞으로 몸이 세 군데나 꿰뚫렸다. 모두 치명적인 부위를 관통하였다. 곧 911 구조대가 도착하고 몸을 고정시킨 채 용접기로 철근을 절단하기 시작했다. 철근이 열을 받아 달구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냉각을 시키며 어렵게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동안 서서히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그는 숨을 몰아쉬며 동료의 손을 움켜쥐고 자기 아내와 4살 난 아들에게 그들을 사랑한다고 전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러나 친구는 손을 뿌리치며 그런 부탁은 가슴이 아파 차마 들어줄 수 없노라고, 자신이 직접 말하라며 거절했다.
매정하게 거절하는 친구가 한없이 야속했다. 어떻게든 아내와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끝까지 의식을 놓지 않은 그는 어려운 수술을 이겨내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가 사막에 불시착해 9일 만에 구조되었을 때 어떻게 극한 상황에서 살 수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족들을 생각했다고 했던 것처럼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꺼져가는 그의 생명의 불꽃을 끝가지 지켜주었던 것이다.
먼동이 틀 무렵 온 누리는 잿빛뿐이었다. 머리 위 하늘도 잿빛, 엷은 새벽빛을 받고 있는 눈도 동료 포로들이 걸치고 있는 누더기도 잿빛, 그리고 그들의 얼굴마저 잿빛이었다. 바로 그 순간 저 지평선 아득히 한 조각 그림자처럼 서 있는 농가에서 불빛이 켜졌다. 바바리아의 먼동 속에서, 처절한 잿빛의 세계에서 말이다. 그때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의 한 대목이다.
모든 포로들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지평선 멀리서 반짝 켜지는 불빛을 본 포로들은 고향과 가족들 따뜻한 벽난로와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 생각에 생기가 돌았다고 했다. 그리고 프랭클 자신도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며 그 순간을 이겨낸다.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듯한 시선을 느꼈다.……나는 몇 시간 동안 얼어붙은 땅을 파면서 서 있었다. 감시병이 지나가면서 욕을 했고, 나는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점점 더 그녀가 곁에 있는 것같이 느껴졌으며, 그녀는 정말로 내 곁에 있었다. 그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손을 뻗쳐서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생생했다. 그녀가 정말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파놓은 흙더미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프랭클이 작은 새를 바라보던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죽었었다. “우리는 어떤 상태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그 상태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수용소에 갇히든 로또에 당첨되든 우리는 우연의 손에 놀아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지향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것이다. 인류가 스스로에게 저지른 잔학 행위에 사고가 마비되고, 젊은이들이 ‘구세대가 만들어놓은 나쁜 세상’을 탓하고 있을 때,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를 제시해주었다. 그는 이것을 ‘로고테라피’라고 말한다. 사랑은 죽음과 절망에 대한 거부이다. 사랑의 숭고한 힘은 삶에 대한 의지이며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디지털 세상의 나쁜 신호들 중 하나는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들에게 까닭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가 하면 가정이 파괴되고 존속 살인이 일어난다. 이웃 나라들에서도 이유 없는 총기난사나 흉기를 휘둘러 인명을 헤치고 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이 힘든 세상에 남아 있게 만드는 유일한 가치이며, 우리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죽음도 불사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영혼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절망도 죽음에 이르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빅터 프랭클-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