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초등학교가 있었다. 운동장도 좁고 더구나 낭떠러지가 있어서 자칫 아이들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대책 마련을 위한 운영위원회가 열렸고 두 명의 열성적인 교육위원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한 사람은 만약에 대비해 사고당한 아이를 즉시 후송할 앰뷸런스를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돈으로 울타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위원회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장시간의 토론 끝에 엠뷸런스를 구입하기로 했다. 속담이 말하는 대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겪는 많은 사건 사고 후 가장 많이 듣는 말들은 ‘인재(人災)’였다느니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느니 ‘안전 불감증’이라느니 하는 말이다. 그것은 산불과 같은 대형 화재나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 시에도 마찬가지다. 올해만 해도 전반기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차마 믿기지 않는 사건 사고가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많이 일어났다. 우리는 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것일까? 신임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안전문제를 짚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호텔에서 주방 직원을 채용하는 광고를 내고 면접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이 만약 스무 개의 접시를 들고 가다 문턱에 발이 걸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턱으로 접시를 누르고 몸을 굴리겠습니다.” “재빨리 발을 디밀어 접시의 파손을 막겠습니다.” “온 몸으로 막겠습니다.” 등등 모두들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내 놓았지만 합격자의 대답은 “미리 조심하겠습니다.” 였다.
한편 영국 왕실에서 여왕의 마차를 몰 마부를 채용할 때도 내로라하는 훌륭한 마부들이 지원을 했고 서로 자신의 솜씨 자랑을 했다. “나는 낭떠러지 50센티 가까이에서도 달릴 수 있다.” “그게 대순가? 나는 30센티에서도 끄떡없다.” “나는 한 뼘까지도 안전하게 마차를 몰 수 있네.” 왕실 관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한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다. “저의 선친께서도 평생 마부이셨습니다만 그분의 유언은 절대로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채용되었음은 당연하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다’는 격언이 있다. 사후에 아무리 훌륭한 수습책을 내놓는다 해도 불행한 일을 안 당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예방이 최선인 것이다.
편작(扁鵲)은 삼형제의 막내였는데, 위의 두 형도 의사였다. 어느 날 황제가 편작을 칭송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형님들의 의술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의술로는 맏형이 제일 으뜸가며 그 뒤를 작은 형이 잇고 자신은 가장 못하다고 대답했다. 황제는 다시 형들의 의술이 그리 뛰어나다면 어째서 편작의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졌느냐 묻자 편작은 이렇게 답했다.
"제 맏형은 환자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표정과 음색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치료하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또한 둘째 형은 병이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하므로 그대로 두었으면 목숨을 앗아갈 큰 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들 눈치 채지 못합니다. 이 탓에 제 형님들은 가벼운 병이나 고치는 시시한 의사로 평가받아 그 이름이 고을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저는 이미 병이 크게 될 때 까지는 알지 못해 중병을 앓는 환자들을 법석을 떨며 치료하니 제 명성만 널리 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편작의 말처럼 의사의 경우에도 예방을 하는 의사가 명의(名醫)인 것이다.
우리는 때늦은 후회를 일컬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거나 ‘죽은 후에 처방을 내린다는 뜻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을 말한다. 소를 잃은 후에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다음 소라도 지킬 수 있지만 죽어버린 후에 처방을 내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앰뷸런스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만들자.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