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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6 (목)

임지윤 작가 에세이

침지, 여과 - 숫자와 감각 사이


 

비율, 조율.

비슷하게도 보이는 이 두 단어는 과연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비율(比率)의 사전적 정의는 ‘한 수량이 다른 수량에 대하여 가지는 비’이다.

즉, 수학적으로 둘 이상 수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반면, 조율(調律)은 ‘어울리도록 음을 고르거나, 균형이 맞도록 상태를 조정하는 일’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숨 쉬고 있다.

 

관계를 유지할 때도, 감정을 표현할 때도, 심지어 혼자 있는 순간에도.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할 때, 우리는 비율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일에 쓸 시간, 밥 먹는 시간, 나만을 위한 시간.

각각의 몫을 정해두고 그 안에 나를 끼워 맞춰보지만, 정해진 비율로는 하루가 부족하기도, 채워지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조율이란 과정을 거친다.

생각보다 일이 오래 걸릴 때는 마음의 여유를 조율하고, 갑작스레 찾아온 공백엔 쉼의 의미를 조율한다.

예상보다 길어진 만남, 지체된 일정 앞에서 우리는 다시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며 나를 맞춰간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비율과 조율은 필요하다.

몇 그램의 원두에 몇 그램의 물을 부을지, 물의 온도는 몇 도로 할지, 교반은 어떻게 할지 등. 수많은 변수 앞에서 수치를 계산하지만, 그 수치만으로는 커피의 맛이 완성되지 않는다.

동일한 20g의 원두에 물 300g을 부으면 1:15의 비율이지만, 그 300g의 물을 부어주는 방법에 따라 즉, 조율하는 방식에 따라 커피의 맛은 전혀 달라진다.

물줄기의 두께, 붓는 속도, 침지(immersion)와 여과(percolation) 시간, 이 모든 요소는 숫자 밖의 감각이고, 추출이라는 행위에 나의 해석을 더하는 방식이다.

 

침지 방식은 원두가루와 물을 일정 시간 함께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프렌치프레스나 커핑처럼, 물과 커피가 만나는 시간을 갖기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추출의 핵심이다. 그 안에 담긴 맛은 안정적이다.

반면, 여과 방식은 물이 원두가루를 관통하며 중력에 의해 추출되는 구조다. 드리퍼 위에서 원두가루로 물을 부으면, 물은 아래로 흐르며 커피의 향미를 끌어낸다. 이 방식은 물줄기의 굵기, 물을 붓는 횟수, 시간 등이 결과에 영향을 준다. 조율의 개입이 크고, 브루어의 감각이 필요한 과정이다.

 

같은 원두, 같은 물의 양이라 해도 침지로 내리면 하나의 흐름 안에 오래 머물고, 여과로 내리면 흐르는 물줄기마다 서로 다른 층위의 맛을 만든다.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커피를 추출한다는 것은 비율과 조율을 해석하고 녹여내는 과정이다. 얼마나 머물게 할 것인가, 어떻게 흘려보낼 것인가는 결국 감각의 문제다.

 

침지와 여과의 방식처럼, 관계도 삶도 그런 선택의 연속이다.

 

어쩌면 나는 매일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나만의 비율을 세우고, 그 안에 감정과 관계를 조율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무를 것인지, 흘려보낼 것인지.

원두가루 사이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처럼 나도 그렇게 내 하루를 천천히 추출해낸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