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고전 『일리아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되었고, 영화팬들의 호기심 만족을 위한 영화 <트로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 중에는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일시적으로 멈춘 한 장면이 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적장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무릎을 꿇는 장면의 연장선에서 나온다.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이 체면을 내려놓았고, 분노에 사로잡혔던 영웅은 복수를 멈추었다. 그 결과 12일간의 휴전이 이루어졌다. 이에 고전의 원전과 영화를 근거하여 진정한 엘리트란 누구이며 왜 그런지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는 ‘엘리트’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명문대 졸업장, 고시 합격, 화려한 경력은 곧 능력의 증표로 간주된다. 정치권과 고위 관료 집단은 우리 교육 시스템이 길러낸 최상위 엘리트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분명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인재들이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치열함이 과연 공동체를 위한 책임 의식과 도덕적 절제까지 길러냈는가? 최근 수년간 급속히 냉각되어 온 정치적 갈등과 정책 혼선, 책임 회피와 진영 논리는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보여준 민낯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 한 교육언론에 의하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인권친화적 학교 조성 정책 권고」를 통해 “갈등을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학교 문화”의 개선을 촉구했음을 보도했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 권고를 넘어, 우리의 학교가 어느새 ‘사법화’의 와중에 빠져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교실에서 벌어진 갈등이 대화와 중재 대신 고소·고발과 행정심판, 소송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교육의 본질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은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는 법이 시작점이 되고 있다. 실제로 교육 현장의 사법화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각 시·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 관련 행정심판 및 소송은 최근 수년간 증가 추세를 보였다. 법무법인을 통한 대응, 생활기록부 기재를 둘러싼 분쟁, 교권 침해에 대한 형사 고소 등은 일상이 되었다. 갈등 해결의 언어가 ‘사과’와 ‘회복’이 아니라 ‘증거’와 ‘처벌’로 대체되는 최근 학교의 모습은 자의든 타의든 배움의 공간이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법적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17개 각시도 교육청과 교육부는 교사 법적 소송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예산을 별
2026년 현재 한국의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s)는 이제 낯선 교육 실험이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영어교육도시, 송도국제도시, 그리고 수도권 곳곳에 자리한 국제학교들은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빠르게 확산되어 왔다. 특히 제주에 위치한 네 곳의 국제학교는 최근 충원률 71.7%(한때 90%를 웃돌았음)에 이르며 여전히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비 부담, 지역사회와의 단절, 교육 양극화 심화라는 그림자 또한 분명하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은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국제학교 설립을 추진해 왔다. 실제로 제주 영어교육도시는 한때 해외 유학 수요를 국내로 돌려 외화 유출을 줄였고, 교육을 이유로 한 ‘교육 이주’ 현상을 만들어 지역 상권을 살렸다. 여기엔 내국인 100%의 입학 조건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높은 학비는 여전히 큰 장벽이다.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은 일부 계층에게만 허락된 특권이고, 이는 국제학교가 지역 공동체 속 ‘섬’처럼 고립되는 결과를 낳는다. 국제학교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닫힌 글로벌’이 아니라 ‘열린 글로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
최근 한 교육언론에 따르면 학생들의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를 의무 배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국정기획위원회 ‘모두의 광장’에 제기된 바가 있다. 청원인은 AI 시대 교육격차 해소와 민주시민 역량 강화를 위해 학교도서관진흥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원에 따르면 전국 1만 2천 200여 개의 학교도서관 중 사서교사가 있는 곳은 13.9%에 그친다. 2025년 공립학교 기준 보건교사는 8천75명, 영양교사는 6천880명, 상담교사는 4천220명인 데 비해 사서교사는 1천660명에 불과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난 2023년 신규 사서교사 채용 규모는 0명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연간 200명 내외로 순증가했던 것과 대조된다. 청원인은 “학교도서관이 사서교사 없이 공무직 사서나 일반교사에 의해 운영되는 것은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과 융합수업을 지원하지 못하는 구조”라며 “이는 학생 간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청원인은 “AI 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필수”라며 “이러한 리터러시 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곳이 학교도서관”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자전거 탄 풍경의 이 서정적인 노래 가사는 세대를 초월해 우리의 마음을 적셔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쉴 곳이 되어준다는 이 가사는 사실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장 궁극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옆자리의 친구는 '나에겐 너'라는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내가 딛고 올라서야 할 '장애물'이자 내 등급을 깎아 먹는 '잠재적 적'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이 서글픈 경쟁의 트랙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는 곧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절규가 가득한 교실을 상생(相生)의 온기가 흐르는 배움의 터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 교육개혁의 제1 사명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에 구속되었다. 내가 90점을 맞아도 친구가 91점을 맞으면 나는 '실패자'가 되는 구조 속에서 연대와 협력은 사치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선 평가의 패러다임을 '수직적 서열'에서 '수평적 기여'로 전환해야 한다. 즉, '승자독식'의 성적표를 '성장 공유'의 포트폴리오로 전환해야 한다. 다음의
2026년 2월,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의 차가운 바람을 뚫고 전해진 선전의 소식들은 경이롭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오늘날 무한 경쟁과 심리적 위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교과서도 대신할 수 없는 강력한 교육적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Fear)과 부상(Injury)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삶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진리라 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감동을 준 장면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자존심, 페데리카 브리뇨네(Federica Brignone)의 질주였다.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스키 선수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부상을 딛고 10개월 만에 슈퍼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녀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내지른 포효는 단순한 승리의 기쁨이 아니었다. 다시는 눈 위를 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재활의 고통이라는 지루한 터널을 견뎌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기 극복'의 찬가였던 것이다. 또한, 은퇴 후 7년 만에 돌아온 41세의 전설 린지 본(Lindsey Vonn)의 도전은 나이라는 숫자가 공포의 대상이 아님을 증명했다. 비록 경기 중
2026년 정초부터 온통 인공지능(AI)에 관한 화두가 압도적이다. 이제 경제는 물론 교육 분야에서의 AI의 역할은 상상 이상의 기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해 초 라스베가스에서의 ‘CES 2026’에서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 현대차 그룹의 피지컬 AI인 ‘아틀라스’는 여타 AI 선진국들을 경계시킬 정도로 인간보다 유연한 동작으로 2년 후에 상용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로써 향후 산업 현장 및 가정 등에서 인간의 활동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가히 혁명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의 이런 AI의 혁신적인 기술은 기업의 투자와 연구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그뿐이랴. 많은 한국의 스타트업 기업들의 AI 제품도 가세해 전체 혁신상의 60%를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AI 기술은 이처럼 우리의 일상과 지식 체계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정보의 속도, 방대한 데이터 처리, 기계적 추론 능력은 이제 인간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핵심 잣대 중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는 K-교육의 힘이 초석을 이루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교육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정작 기술을 능가하는 인간다움을 드러내고 시대적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