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더 이상 ‘기회의 사다리’가 아니다. 비용이 선결 조건이 되는 경쟁 시장에 이미 깊숙이 진입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일컬어 ‘사교육 공화국’이라 지칭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입시 제도는 공정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구조다.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의 입시는 과연 능력을 평가하는가, 아니면 가정의 경제적 능력을 측정하는가.
한국에서 사교육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오래된 논쟁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사교육 그 자체가 아니다. 사교육이 없어서는 안 되는 구조가 문제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상위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집단적 인식, 입시 정보와 전략이 학원 시장에 종속된 현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묵인해 온 제도적 무책임이 오늘의 사교육 공화국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는 끊임없이 ‘공정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출발선의 불평등을 방치해 왔다. 고가의 컨설팅, 선행 학습, 비교과 스펙 관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져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과만을 두고 공정하다고 말한다. 이는 공정의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한 결과다. 공정은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계의 교육 선진국들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해왔다. 세계의 교육 벤치마킹 선진국인 핀란드는 학교 간 서열화를 철저히 배제했고, 조기 선발과 과도한 시험 경쟁을 최소화했다. 사교육이 발붙일 공간이 줄어든 이유는 단순하다.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신뢰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학업 성취를 포기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높은 성과와 낮은 격차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에서, 경쟁 중심 교육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정책은 어떠한가? 입시 제도는 수시와 정시, 학생부와 수능을 오가며 복잡해졌지만, 그 복잡성은 사교육 시장의 새로운 상품이 되었다. 제도가 바뀔수록 정보 격차는 더 커지고, 학부모의 불안은 학원으로 향한다. 교육정책이 사교육을 줄이기보다 사교육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온 역설적인 결과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교육을 지나치게 선발의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기보다 평가를 준비하는 장소가 되었고, 학생은 성장의 주체가 아니라 입시의 객체가 되었다. 이 구조 속에서 교사의 전문성은 위축되고, 교육의 본질은 시험 일정에 종속되어 있다. 사교육은 바로 이 공백을 파고들 뿐이다.
이제 사교육을 줄이기 한 정책은 백약무효(百藥無效)다. 이에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방향의 전환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첫째, 학교 교육만으로도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이 가능하다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입시에서 지나치게 세밀한 변별을 추구하는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상위 몇 퍼센트를 가리기 위해 다수를 불안에 빠뜨리는 제도는 교육이 아니라 선별에 가깝다. 셋째, 교사에게 교육과 평가의 자율성과 책임을 돌려주어야 한다. 표준화된 관리가 아니라 전문성에 기반한 판단이 존중될 때, 학교는 다시 중심이 될 수 있다.
입시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입시가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공정한 경쟁을 믿기란 어렵다. 사교육에 기대지 않으면 불안한 구조를 유지한 채 공정만을 외치는 것은, 교육을 통해 신뢰를 가르치겠다는 말과 모순된다.
이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지금의 입시 체제는 공정하지 않다기보다 지나치게 고비용이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에 유리한 구조를 방치하면서, 결과만을 능력으로 포장해 왔다. 우리 교육이 다시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경쟁의 규칙이 아니라 출발선의 정의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교육은 누군가를 탈락시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모두를 성장시키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 약속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떤 입시 개편도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국가의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해 악순환의 고착화를 이룰 뿐이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구조와 과열 경쟁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 추구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것인가?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