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이 말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는 왜 중요할까. 모든 것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모르면 막막해서 시작 자체를 미루게 된다. 혹은 열심히는 하는데 방향이 엉뚱해진다. 노력은 했는데 남는 게 없는 이유다.
더욱이 인공지능 시대라 메타인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활용의 시작은 명령어, 다시 말해 질문 입력이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먼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메타인지가 곧 질문력이다.
학습이 하루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에겐 특히 더 중요하다. 수학 공부를 예로 들어 보자. 메타인지가 높은 학생은 "이 단원 개념은 아는데 응용이 약하다"처럼 자신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안다. 그래서 모르는 부분, 약한 부분 위주로 공부하고, 시간도 그쪽에 더 쓴다. 남들과 같은 1시간을 공부해도 결과가 다른 이유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팀장이라고 하자. 팀장이라고 모든 영역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메타인지가 높은 팀장은 자기 약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 부분은 잘하는 팀원이나 인공지능에게 과감히 맡긴다. 일을 레버리지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메타인지가 낮으면 일의 분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 팀의 아웃풋이 좋기 어렵다.
진로를 정할 때는 더더욱 결정적이다. 메타인지가 높으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메타인지가 낮으면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진로 앞에서 헤매고 방황한다. 남들이 정해준 기준에 이끌려 우여곡절 끝에 선택한 진로일수록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메타인지는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우선 독서다. 독서는 간접 경험의 최고의 도구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수록 내가 어떤 것에 흥미와 관심이 있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점점 선명하게 보인다.
다음은 쓰기와 말하기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어렴풋이 아는 건 결국 모르는 것과 같다.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이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꾸준히 쓰고 말할수록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끝으로 사색이다. 혼자 있는 시간, 즉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지금 내 상태는 어떠한지, 지금 집중해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을 수시로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 메타인지를 천천히 끌어올린다.
내게도 메타인지는 결정적이었다. 수의사는 내과, 외과, 안과, 치과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알아야 한다. 나는 내과에 흥미와 소질이 있고, 다른 분야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다. 그래서 내과 위주로 깊이 파고들었고, 그게 임상에서 실질적인 힘이 됐다.
독서와 글쓰기는 나의 메타인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마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제야 내 안의 잠재력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작가로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자주 되물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알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석학들은 말한다. 안다고 하는 게 많을수록 손해라고. 그만큼 배울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함부로 안다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다. 완벽히 이해하기 전에는, 삶에 실천하기 전에는 쉽게 "안다"고 말하지 말자.
지금 당신이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그것, 과연 정말 그럴까?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박근필
* 수의사
* 작가,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 박근필성장연구소 소장
* 청소년 진로 직업 특강 외 다수 출강
* 데일리벳 외 다수 매체 칼럼 연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2023)
-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2024)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2025)
-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 (2025, 공저)
[참고 링크]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