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커피대신 보리차를 마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음료가 진열되어 있는 쇼케이스로 다가가 1+1 행사 중인 보리차를 꺼내 들고는 계산대에 있는 점원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2000원입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딸랑” 소리와 함께 나는 편의점을 나선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처음 하는 일중 하나는 편의점에 들러 습관처럼 보리차를 마시는 일이다. 간혹, 달달한 무언가가 끌릴 때면 포장된 바나나를 사서 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보통의 하루가 시작된다. 편의점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 너무나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의 한 장면이다.
며칠 전,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 한 마리가 길거리에 늘어진 모습을 보았다.
‘좋은 곳으로 가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잠시지만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잔잔한 아침에 찾아온 불편한 장면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는데, 보통의 하루에 상처가 생긴 기분이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5에‘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키워드가 있다. 과거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였다면, 아보하는 소확행을 뛰어넘는 개념이었다.
우연히 일어나는(幸) 좋은 일(福) 행복.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지쳐서, 하루의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 무탈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키워드가 되었다는 점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꼭 행복해야 한다는 행복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하루를 그저, 평범하게 보내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 그만큼 행복을 추구하기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보이는 모습이 중요했던 우리. 그것에서 벗어나,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를 평온하게 살아내는 것에 집중하게 된 것이 더 나은 삶일지도 모르겠다.
별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어떨 때는 지루함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신문기사에 나는 위험한 일을 당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를 마주하지 않게 되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저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다행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도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되는 지점이다.
아주 보통의 하루는 거창한 행복,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러한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키워드가 아닐까 한다.
보통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속도로 차곡차곡 하루를 쌓아가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즐겁거나 내세울만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묵묵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하루이지 않을까.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물음에
“별일 없었어.”라는 답변이 안도감을 가져오는 시대. 별일이 없어도 자신의 하루를 흡족해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소수의 기념일을 핑계 삼아 다수의 비기념일을 평범하게 만들 때, 그들은 모든 날들을 비범하게 만든다. 그들은 아무 때나 그냥 선물한다. -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
유은지 작가는
10년이상 개인의 커리어와 마음의 성장을돕는 상담사로 일하며,결국 글쓰기가 삶의 열쇠임을 알게된 뒤로 글을 쓰고있습니다.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삶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합니다.
[저서] 마음에 길을 묻다. 치유글약방. 성장글쓰기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