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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30 (수)

김연희 작가 에세이

‘한계’라는 배부른 소리


 

 

“저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 한마디에 깜짝 놀라 잠깐이지만 당황한다. 언젠가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위한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던 적이 있다.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내 차례가 되자 다른 사람들처럼 이름을 시작으로 소개를 하며 한 말이다.

 

말을 던져놓고 바로 후회가 몰려온다. 왜 필요도 없는 말을 했을까? 어이가 없기도 했고 워낙 말을 잘하는 사람들 틈에 있으려니 기가 죽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맞을까?”라는 깊은 질문 속에 빠지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정말 나는 듣는 것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한 말에 동의를 못 하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디서든 내 의견을 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진심이었으리라.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담소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있는 곳에서의 말하기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혹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던 중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걸까? 어떤 경험이 있었기에 시작도 전에 못 할 것이라고 벽을 만들어버린 것일까?

 

사람은 긍정적인 일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보다, 부정적인 일을 바로 현실처럼 쉽게 상상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마치 당장 청중 앞에 서야 할 사람처럼 뒷걸음치는 모습 속에는 “나는 이 정도 밖에 안돼.”라는 한계가 이미 만들어졌음이 보인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나쁜 기억은 없다. 단지 성장할 기회 앞에서, 부족함을 극복할 노력 대신 물러나 버린 일이 늘 가슴에 남아있긴 하다. 능력 부족이 아니라 노력 부족이다. 물이 끓어 기체로 바뀌는 시점을 임계점이라고 하는 것처럼 성장을 위해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임계점 앞에서 더 나아가기를 포기했음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또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봐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다른 희망을 보기도 한다. 자신을 직시할 수 있을 때 발전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체성 수업>의 공동저자 로버트 프리츠는 “어떤 결과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 수 있는 때는 이미 해냈을 때다. 그 주제에 관한 다른 생각은 오직 추측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책에서 인간의 한계는 스스로가 정한 것이라고 깨우쳐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개인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한없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해진 답을 알면서도 그 답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함은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제 그 한계를 즐겨보고 싶다.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며 살고 있는지 각자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쉽게 포기했던 것들은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좋아하고 간절히 필요한 것이었으면 한계를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한계라는 것도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하는 꾸짖음이다.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