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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9 (일)

김연희 작가 에세이

우연이 아니라 갈망이며 필연이다


“당시 나는 독특한 피난처를 찾아냈다. 흔히 말하듯이 ‘우연’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란 없다. 누가 무언가를 꼭 필요로 하는데 제게 꼭 필요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우연이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갈망과 필연성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것이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며칠 동안 이어졌던 책 읽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글귀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과 후련함이 파도치듯 밀려오고 나는 그 느낌을 즐겨본다. 헤르만 헤세의 문장들은 책 곳곳에서 나를 흔들고 깨우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글귀는 저것이었나 보다. 처음부터 <데미안>을 읽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어쩌다 시작된 독서 계획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나는 며칠째 풀리지 않는 숙제 앞에서 조급증을 내고 있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뒤적인 것이 그 시작이다. 이 책 어딘가 내 답답한 가슴에 숨구멍을 내어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완전한 답이 아니라 실마리가 되어줄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는 희망으로 말이다.

 

부드러운 겨울 햇살에 고스란히 드러난 책꽂이는, 나의 무심했던 시간을 말해주듯이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고 있었고, 나는 책 한 권을 꺼내 책장을 두서없이 넘겨본다. “그래. 이 책인가? 어디쯤이었을까?”라는 마음으로 책을 뒤적이던 나는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첫 장부터 읽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책 읽기가 몇 권째 이어졌고 그것은 마치 길고 긴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에 물이 들어가듯이 무서운 흡입력으로 내 갈증을 풀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펼친 책에서 애타게 찾던 질문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기뻐하는 것은 잠시다. 곧 더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 또 다른 질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르만 헤세가 말한 “갈망과 필연성”이 생명을 얻는다. 언제나 호기심과 갈증 같은 질문은 다른 무언가로 연결되는 시작점이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알아야 할 ‘그것’ 가까이 데려다 놓고는 한다. 필요한 것을 적절한 때에 알게 하고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만나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내가 겪는 많은 상황은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빛나는 생(生)을 위한 잘 안배된 경험이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내 갈망에 대한 대답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생을 조금 더 알아가고 조금 더 깊어지라고 말이다. 질문은 언제나 번뜩이는 섬광처럼 오고 답으로 가는 문은 묵직한 바위처럼 천천히 그러나 환하게 열리곤 했으며, 내가 알아차리든 모르든 그렇게 나는 세상을 경험하며 삶을 누리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거짓말에서 시작한 싱클레어의 휘몰아치는 내적 갈등과 자아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 그려진 <데미안>을 비롯해 더불어 읽었던 몇 권의 책은 엉킨 실타래였던 내 숙제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문득 며칠간 몰입에 빠질 수 있게 했던 책들과 마지막 날에야 <데미안>을 생각한 것도, 마침 아이가 도서관에서 <데미안>을 대출해 온 것도 어쩌면 내 간절한 갈망의 실현이 아닐까 싶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이란 것이 기가 막힌 시간과 공간에서 각자의 생(生)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말이다.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