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 가을이 되니 동료, 친척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에게 따스한 축하의 말을 전하며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인지 문득 생각에 잠긴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삶을 함께하겠다는 약속. 청첩장에 담긴 신랑, 신부, 부모님의 이름을 보니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 할 시간에 대한 무게감과 의미가 새삼 전해진다. 인생에 행복과 고통, 그 모든 순간에 서로를 믿고 지지하며 성장해 나가는 가장 긴 인연으로 함께 할 두 사람. 이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리모니의 마지막 잔에 담긴 커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리모니 (Coffee ceremony)” 아라비카 품종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는 ‘커피 세리모니’라고 하는 중요한 의식이 있다. 단순히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을 넘어 관계를 강화하고 존중과 환대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식인 커피 세리모니. 그 준비는 주로 여성이 특별한 장소에 풀과 꽃으로 장식하고 기름이나 향을 태워 따뜻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시작된다. 물에 씻어 실버스킨을 제거한 생두를 숯불이나 화로에 직접
생각과 실천 세상에서 두 유형의 사람이 있다. 먼저 하나의 유형은 행동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먼저 행동한 다음에 생각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검토를 끝났기에 실천할 때 망설임도 없다. 대신 실천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먼저 행동하는 사람은 반대로 실천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그 뒤에 고민과 후회가 많다. 어느 쪽에도 장단점이 있으니 정답이 없다. 다만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오랜 시간 키웠던 습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도 체험하면 다른 시각으로 사물이 보이게 되니 좋다는 경험을 최근에 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집에서 10km정도 떨어진 바닷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였다. 전철로 20분쯤밖에 걸리지 않으니 비교적으로 가깝지만 막상 가려고 하면 왠지 먼 곳 같은 느낌이 늘 들었다. 전철을 타야 하는 이유가 마음을 귀찮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깝고도 먼 바다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 나는 10월 마지막 날, 바닷가까지 달렸다. 마침 운동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까지 거의 직진해서 가면 된다는 안심감도 있었다. 가는 길에 있던 공원에서
향기는 감정을 알고 있다. 짙고 옅은 아로마 향이 차례로 코끝을 자극한다. 커피 향을 한번 맡고, 다시 손바닥 위로 떨어진 아로마오일을 두 손으로 비비고는 코에 가져다 댄다. 그러고는 깊이 향을 들이마신다. “이 향 너무 좋은데?”“어? 정말이야? 신기하네.” 내가 들이마신 향의 아로마오일을 보고 테라피스트로 활동하는 지인이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언니. 1년 전과는 정말 다른 향을 선택했는데?” 1년 전에도 지인을 통해 감정오일을 체크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무향에 끌렸는데, 다시 만난 오늘은 오렌지향에 후각과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른 향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가지며, 지인의 아로마오일 이야기에 집중한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로마 오일은 식물에서 추출된 오일이며, 특유의 향기와 살균, 재생 등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인이 추천한 향이 있었는데, 코에 가까이 가져가자 다른 향에 비해 너무 강하게 느껴져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그 향은 유향(보스웰리아)이라는 것으로, 굳은 나무 수액에서 나는 향이라고 했다. 아기예수가 탄생했을 때 동방박사가 바친 3가지 선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라고 한다. 그만큼 귀한 향인
넌 사랑 그 자체야 “엄마, 할매가 보고 싶어.” 라고 말하는 아이의 꾹꾹 누른듯한 목소리. 이미 두 눈엔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그래, 많이 참았다 싶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손녀로 할머니에게 기쁨의 존재였던 우리 아이. 그 사랑에 답하듯 손녀는 지난여름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시기 전까지 지치지 않고 지극한 사랑을 보냈다. 아이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행여 희미해지고 기억에서 지워질까 슬퍼하고 있었다. “○○야, 네가 할머니와 한 일을 다 기억하든 못하든 너는 할머니한테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 줬어.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야. 엄마도 할머니를 사랑했지만, 너만큼 순수하지는 못했을 거야. 너는 어떠한 이익이나 요구하는 게 없는, 그러니까 마음이 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사랑이었어. 사랑 그 자체였다고 생각해.” 나는 눈물 콧물로 젖은 아이를 꼭 안으며 말했다. “넌 사랑 그 자체”라고. 레스터 레븐슨은 <세도나 마음혁명>에서 행복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이 사랑이고,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역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아이의 순수한 눈빛과 그런 손녀를 향한 애
시절인연과 커피 체리 푸념을 내뱉듯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 좋은 일들만 있으면 좋겠어.” 하는 내 말에 친구는 나지막하게 대답한다. “그건 너의 욕심이야.” “너의 바람과 마음을 접고, 타인의 눈으로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좋겠어. 그러면 각자의 감정, 상황도 보다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까? 나는 네가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의 시절인연을 만났고 너에게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시간, 사건들 속에서 너 자신을 돌아보면 보이지 않았던 모습도 보이면서 성숙해지고 단단해지지 않을까? 나는 너에게 그런 의미 있는 시간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고, 네 옆에 함께 있을게.” 불교 신자다운 그녀의 시선과 조언, 좋은 친구를 곁에 둔 것 같아 힘들었던 마음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봄빛이 땅에 베인 듯 노란 낙엽들을 살포시 밟으며 걷다 보니 나도 가을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든다. 계절의 변화 안에서 잎이 떨어지고, 때가 되면 다시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 나 또한 인생의 특정 시기에 만나는 사람과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겪으며 성장하는 나무와 같진 않을까? 성장하는 나무, 그 가지에
행복의 진수(真髄) ‘오늘 행복한 사람은 내일도 내년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라는 말과 마주치게 되었다. –최경규 작가의 글 중에서- 왜 오늘 행복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은가? 만약 그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이 좋은 일이나 환경을 인해 얻은 것이라면 내일도 오늘과 같은 행복을 보장받을 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도 똑같이 좋은 일이 생길지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이유일까? 성공한 사람은 주는 사람(Giver)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이 받을 것을 먼저 생각한다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성공자들은 지식이나 따뜻한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감사의 마음을 받아 자기 삶에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그 감정을 통해 주는 기쁨을 배운다. 긍정심리학 제1인자인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셀리그만(Seligman) 교수는 우리가 행복을 느끼기 위한 요소로 PERMA 이론을 제시했다. P는 positive emotion 긍정적인 감정, E는 engagement 몰입, R는 relationships 인간관계, M는 meaning 의미, A는 achievement 성취감의 약칭이다. 성공자들이 느낄
“괜찮아졌어.” 라는 말이 듣고 싶은 날 언제나 좋은 소식을 들으며 전하고 싶지만, 삶은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가까운 지인이 궁금해 며칠 전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지?” “..... 응.. ” 평소 밝은 목소리의 친구였지만,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많이 지친듯했다. 낮은 목소리의 무게에 “무슨 일 있어? 왜 그래?”라는 몇 마디를 건네기가 조심스러워,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울리는 카카오톡 알림 소리. 전화상으로 말하기가 어려워 메시지로 남긴다는 지인은, 최근에 검진 후 건강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퇴원을 하면 연락한다는 이야기였다. 지인의 병명을 듣고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하고 생각하니 속상함이 밀려왔다. ‘건강했던 친구였는데, 세상사 일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인지..’ 최근 들어, 아프다는 소식 등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그럴 때면, 마음 한켠에 묵직한 무언가가 나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아 좋지가 않다. 위로의 말을 쉽게 내뱉기도 어렵고, 함께 슬퍼하며 울어줄 수도 없는 순간들. 그저 조용히 들어주는 것이 전부인
당신은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 당신은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가을이 깊어갈수록 새벽어둠은 점점 길어지고 따스한 이불 속의 유혹은 참으로 달콤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떤 핑계라도 만들어 아침을 늦추고 싶지만, 마음을 다잡고 일어난다. 잠시 후 의식은 완전히 깨어나 주어진 현실에 빠져 살아간다. 어쩌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나의 일상, 아니 많은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며,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지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물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정신없이 쫓기듯 바쁘게 살았든, 한가로이 느긋한 하루를 보냈든 상관없이 찾아온다. 내가 의도한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되길 원하는지 어떤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지 의도적인 생각으로 시작을 한다. 물론 아직 많은 날 여전히 무의식에 끌려다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의식적으로 의도를 세우는 걸 잊지 않으려 관심을 기울인다. “의도를 세우라”는 말이 자칫 부담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리 거창한
얼마나 뜸을 들여야 할까? 어릴 적, 추석이면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보이던 황금빛 일렁임. 할아버지께서 일궈낸 일렁임을 보며 좁은 시골길을 걷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분홍 꽃잎과 가는 줄기의 떨림이 눈 속에 담기곤 했다. 봄 같은 바람의 살랑임에 설레는 마음으로 대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장대 끝엔 빨간 고추잠자리, 가을볕에 말라가는 빨간 고추들. 손자, 손녀를 반기시던 할머니의 따스한 미소만큼이나 풍성하게 느껴졌던 어릴 적 가을 풍경이다.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나뭇잎, 쌀쌀한 겨울이 느껴지는 바람에 어릴 적 추석 풍경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문득 떠오른다. 한 해를 한 달 남겨놓은 11월, 잠시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내 마음의 풍경과 온도에 머물러본다.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의 온도는 적정한지 잠시 눈을 감아본다. 마음이 머물고, 생각이 깊어지는 상황과 인연들이 떠오른다. 머릿속을 스쳐 짧게 지나가는 인연,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감정까지 하나하나 건드려지며 머무는 인연 등. 올해 나와 함께 했던 인연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바람에 일렁이는 가을 들녘 같아
마음의 준비 갑자기 인스타 계정이 비활성화되었다는 이 메일을 받았다. 원인은 생각나지 않는다. 최근에 사용한 계정이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계정도 아니다. 게다가 성적으로 부적절한 내용이나 정치적인 내용을 포스팅한 적도 없다. 메시지에는 계정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절차가 적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가 정말로 운영회사에서 온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요즘 유행하는 피싱 사기로 인해 이상한 메시지를 받는 경우가 많아져서 메시지 안에 있는 자세한 안내 버튼조차 편안한 마음으로 클릭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검색해도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안내 절차를 따라하였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한 순간에 인스타 계정의 액세스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생각했다. 편하게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여 우리는 매일 다양한 정보에 접근, 전 세계 규모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고, 또 비즈니스와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을 통해 여러 혜택을 받는다. 대신에 개인 정보 유지와 데이터 보호의 필요성, 가짜 뉴스 확산의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