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보내는 ‘세로줄’ 당신은 읽고 있습니까? 평온한 주말 오전, 보고 싶었던 책도 볼 겸 도서관에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모처럼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저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었죠. 그때 책상위에 놓인 핸드폰을 보는 순간,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헉” 갑자기 멈춰버린 핸드폰 화면, 손가락으로 톡톡 몇 번씩 두드려 보고, 수차례 밀어도 보았지만, 저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스마트폰의 화면은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어, 왜 이러지?” 당황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요즘 핸드폰은 ‘오장칠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몸의 일부와도 같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죠. 평소와는 다른 이상함을 느낀 저는 도서관을 포기하고, 서비스센터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주말 운영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가까운 대리점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핸드폰을 본 직원은 안타까운 얼굴로 나지막이 말을 건넵니다. “아. 액정이 나갔어요,” 한숨 섞인 그의 표정에서 금방 해결되지 않을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길게 그어진 세로선을 가리키며 그는 말을 더했습니다. “고객님 원래
크지는 않지만 제법 붐비는 우체국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포 꾸러미와 서류 봉투나 편지 따위를 들고 소포나 등기를 부치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예금 업무를 위하여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대체로 즐겁지 않다. 지루하고 다리도 아프고 앞 사람이 생각보다 지체할 경우 언짢은 생각이 들기 일쑤다. 안내를 하는 직원이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줄의 맨 끝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 차례는 아직도 멀어보였다. 그래서 다가가 도움이 될까하고 물었다. “할머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니예요. 우표 두 장만 사면 돼요.” “아, 그러시면 저기 자동판매기가 있습니다. 오래 기다리실 필요 없이 동전만 넣고 단추를 누르시면 금방 우표를 사실 수가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우. 허지만 저 기계는 창구의 아가씨처럼 ‘식사는 잘 하는지’ ‘허리 아픈 건 좀 어떤지’ ‘손자 녀석은 잘 있는지’ 이것저것을 자상하게 물어봐 주지를 않잖우.” 누구나 그렇듯이 할머니에게는 우표 두 장 보다도 창구 아가씨의 존중과 친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존중 받고 싶어 한다. 다섯 살배기 손자도 자
Z세대(Generation Z)는 1997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즉, 밀레니얼 세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유년기부터 스마트폰, SNS, 유튜브 등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며 자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 세대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함께 성장한 특징이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이들 Z세대가 역사의 흐름을 다시 쓰고 있다. 2020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뒤덮은 촛불 시위의 중심에도, 2022년 네팔 총선에서 신생 정당 래코스트(RSP)를 제1야당 반열로 끌어올리고 여성 총리를 탄생시킨 돌풍의 핵심에도, 그리고 2023년 마다가스카르의 대선에서 “더 이상 가난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외치며 기존 정치권력을 뒤흔든 주력 역시 바로 청소년 Z세대였다. 이들은 더 이상 정치와 경제의 주변인들이 아니다. 이제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세대가 되었다. 불가리아 청년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해변을 사유화하고 부패 스캔들이 반복되던 현실 앞에서 그들은 외쳤다. “더 이상 침묵하면, 이 나라는 사라진다.” 그들의 끈질긴 연대는 결국 장기 집권 세력의 몰락, 개혁 내각 출범으로
대한민국 교육이 위기 국면에 처한 것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심지어는 각시도 교육감을 비롯한 교육 전문가들조차 ‘붕괴’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교육의 민낯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그 공감의 정도가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을 더 듣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가? 3년마다 OECD를 통해 발표되는 국제학업성취도(PISA)는 비록 세계적 수준이라지만, 정작 학생들의 배움의 즐거움과 만족도는 최하위 수준이고, 교육공동체를 구성하는 교사·학생·학부모 사이의 신뢰는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 현장 곳곳에서 관계의 균열이 심화되며,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공동체라기보다 갈등의 장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그 방증이라 할 것이다. 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낙관적이거나 교육 현장의 현실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원로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접 “교육대개혁”의 실행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 “교육공동체 붕괴”라는 진단 앞에서 그 회복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출근길, 사랑을 생각하다.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출근길입니다. 비 때문일까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오늘따라 왠지 감성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러려고 날 사랑했니? 나를 사랑하게 했니?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노래한 그 가사가 오랫동안 귓가에 머물러있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일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 사람의 어떤 모습에 이끌리셨나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이란 참 신기합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조건 없는 사랑을 하기도하고,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같은 동료라도 마음의 거리는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게 느껴지지만, 어떤 사람은 왠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니까요. 연인과의 사랑은 또 어떤가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두 사람이 운명처럼 이끌려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게 되기도 하죠. 수많은 사람 중 당신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인연’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듯합니다. 외모, 능력, 성격 등 모든 걸 갖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좋아
오래전 내가 초년 교사 시절 내가 당면한 문제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관용이 부족한 것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 경험도 전무한 상태에서 내가 가진 가치관은 ‘바른생활’이라고 이름이 바뀐 도덕책의 가르침과 학부에서 학습한 ‘교육학’의 이론들이 전부였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선이 나름의 사고방식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잘못한 아이에 대해서는 응당한 대가가 있어야 하고 성실한 아이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한 남학생의 당돌한 말이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박혀있다.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을 잘 하시고 실력은 뛰어 나지만 인간미가 없습니다.” 생활기록부도 가감 없이 기록해야 하고 그로 인해 고통 받을 아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여 별다른 연민이 없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늘 지도를 받았지만 자신의 소신을 굽힐 마음이 없었고 그것이 공동체의 규율을 바로 세우고 결국은 살기 좋은 학급 또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특히 징계중인 아이가 반성 없이 자숙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모습은 보아 넘기기가 힘들었다. 드디어 연말
2025년의 대한민국 교육은 어느 해보다 격변 속에 놓여 있었다. 학령인구의 급감은 학교 체제 전반을 흔들었고, AI 학습 도구의 급속한 도입은 교실의 역할과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지역 간 교육격차는 오히려 심화되며 “출생지에 따라 학업 기회가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이에 대해 수많은 논의와 대책이 쏟아졌지만, 정책의 파편화•임기응변식 접근은 현장의 피로만 증가시켰다. 결국 교육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임에도, 우리는 그 방향에 대해 충분히 합의하고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특히 아쉬움이 컸던 정책 중 하나는 학교 재구조화에 관한 논의이다. 농산어촌 학교의 통폐합이 빠르게 추진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성과 공동체성, 그리고 학생들에게 제공될 교육적 대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전남의 한 소규모 중학교는 통폐합을 앞두었지만, 오히려 지역 대학•기업과 협력하여 ‘작은 학교’의 장점을 살린 프로젝트 기반 수업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 사례는 정책적 지원이 아닌 학교의 자구적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문제는 학교의 규모가 아니
십수 년 전 필자가 고교 3학년 담임으로 근무하던 시기에 한 여학생은 초중고 총합 12년을 통해 남자 담임은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물론 교직의 여초(女超)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은 필자 자신이 현장에서 느끼기도 했지만, 교육의 대상인 학생인 직접 느끼고 일종의 개인적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에는 “그럴 수가?”라며 심각한 교사의 성별 불균형 상태에 대해 깨달았다. 이는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는 고3 학년부장을 역임하면서도 교무 분장에서 학년 담임 배정 요구 시에 남성 교사를 소속 학년에 함께 하기가 여간 힘들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갈수록 심화 되어 이제는 남성 교사는 각 학년의 ‘천연기념물’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여초 현상이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성별 불균형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예컨대, 한 학교에서 학년 담임교사 10명 가운데 남성 교사가 1명에 불과하거나, 아예 전무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단순한 인력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의 성장 환경과 교육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를 넘어 학생이 일상적으로 접
중국 춘추 전국시대를 살았던 ‘공손앙(公孫鞅)’은(BC390-BC338) ‘상앙(商鞅)’ 혹은 '위앙'(衛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위(衛)나라 출신이었으나 여기 저기 떠돌다 진(秦)나라로 건너가 효공의 눈에 들어 조정의 실권을 쥐게 된다. 그리하여 가족 제도 개편, 중농 억상정책 실시, 토지 제도의 개편과 세제 개혁, 군주권 강화, 그리고 귀족의 특권 제한과 인민의 신분 상승 기회 개방 등 여러 가지 법안을 마련하여 진나라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크게 신장시킨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기타 열국이 대적하기 힘들 정도로 강대국이 되었다. 결국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한다. 천하통일에는 묵가의 공도 있었지만 상앙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개혁은 엄격한 법의 시행에 기초를 두고 있었는데 개혁 당시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으며 효공에게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상소가 산더미 같았다. 그러나 상앙은 흔들리려는 효공을 독려하여 변법을 늦추지 않았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을 가차 없이 처형하였다. 심지어는 공자 ‘건’이 법을 어겼다고 하여 코를 자르는 형벌(刑罰)을 가했고 태자의 스승에게는 얼굴에 죄명을 새기는 형을 가했다. 조량(趙良)이라는 숨은 현자가 조목조목 충고를 하였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이자 유학자로 한국 역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남긴 300여 권의 저서 중에는 『경제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가 대표적이며 이는 후세의 공직자들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그가 전남 강진 땅에서 18년을 유배 생활하면서 길러낸 제자들은 그와 함께 왕성한 저술 활동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그가 한국 교육에 남긴 족적을 살펴보고 이 땅의 교육에 사표(師表)로 삼고자 한다. 한국 교육은 3년마다 치러지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와 대학 진학률 등 외형적 지표에서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였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도 해외에 나가면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최근의 교육부 업무 보고에서 밝힌 바 있다. 과거 오마바 미국 대통령도 “한국 교육을 보라”며 높은 교육열과 수준 높은 교사들이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서의 역할을 실행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외 교육 현장 안팎에서는 한국 학생들의 배움의 즐거움 상실, 과도한 경쟁, 심화되는 교육격차와 같은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