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디지털 시대이자 인공지능(AI)이 대세인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지식의 종말이자 지성의 부활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요즘 온통 화두는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지식은 더 이상 과거의 권력이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AI)은 인간이 평생 쌓아온 지식을 수 초 만에 검색하고 정리하며, 고도의 논리적 답변까지 쏟아내고 있다. 따라서 지식의 양과 속도로 승부를 가늠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지식인(Knowledgeable Person)’의 시대에서 ‘지성인(Intellectual)’의 시대로, 교육의 근본적인 정의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과거의 지식인은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백과사전적 정보를 습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답을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지식인의 척도였다. 그래서 우리 교육이 지난 수십 년간 주입식 암기 교육에 획일적으로 매몰되었던 이유도 바로 이 ‘지식인’을 양성하는 데 가치와 수단이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오늘날 화두가 되는 지성인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우리 역사상 실학파의 거두라 할 수 있는 19세기 다산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 유배지에서 그저 학문을 연마한 것이 아니라, 그 학문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고 백성의 삶을 구제할 방책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권이 넘는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렇듯 지성인은 지식을 자신의 내면화된 철학으로 변환하여,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질문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지식인이 ‘방법(How)’을 제시했다면, 이제 지성인은 ‘본질(Why)’을 통찰한다고 할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오늘날 AI는 지식인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AI는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한다. AI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은 할 수 있어도, 그 선택이 가져올 인간적 고통이나 사회적 정의를 진심으로 공감하거나 책임지지 않는다. 실제로 AI를 이용하면서 잘못된 정보나 출처가 빈번하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 AI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인간적인 정서 즉, 기계로서의 본질인 ‘무정(뻔뻔함)’을 드러낼 뿐이다. 역시 기계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여기서 지성인의 역할이 극명해진다. AI가 쏟아내는 정보의 바다에서 ‘참’과 ‘거짓’을 가려내고, 그 정보가 인간과 공동체에 미칠 윤리적 영향을 평가하며,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오직 인간의 지성뿐이다. 만약 우리 교육이 여전히 AI가 더 잘하는 ‘지식 습득’에만 경쟁하듯이 매몰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은 기계에 예속된 노예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와 ‘공감 능력’을 가진 지성인으로 길러낸다면, 그들은 오히려 AI를 다스리는 주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더 이상 인간을 족집게처럼 정답을 맞히는 기계로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양 길러내선 안 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은 현재 우리 교육이 전국에 걸쳐 점차적으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도입에 나선 국제 바칼로레아(IB) 시스템이 지향하는 ‘개념 기반 탐구’와 우리 교육의 미래인 ‘K-SEL(사회·정서 학습)’의 융합이어야 한다. 반가운 사실은 우리의 수도 서울에서만 IB과정을 채택한 학교가 140여 곳이 넘는다는 소식도 있다.
이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질문의 교육이 보편화 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역사 수업에서 사건의 연도를 외우는 것은 과거 구태의연한 방식이지만, 이제는 “과거의 이 선택이 오늘날 우리의 어떤 가치관과 충돌하는가?”를 토론하게 해야 한다. 이른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H.카Carr)의 유명한 명제에 충실한 방식이어야 한다.
둘째, 성찰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기술적 숙련도보다 중요한 것은 ‘성찰’이다. 우리 사회가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기술적 전문성(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적 책임감(가치)을 함께 교육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은 칼과 같아서, 손에 쥔 자의 지성에 따라 세상을 살릴 수도,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과거와는 딴판으로 수많은 갈등과 혐오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지성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지성인은 자신의 지식에만 의존하거나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통해 갈등의 실타래를 풀며, 공동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며 이타적인 행위에 앞장선다.
독일의 교육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는 “교육은 인간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지식이 도구라면, 지성은 그 도구를 다루는 인격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고교 졸업생의 70% 이상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는 대학 진학이라는 틀을 깨고, 아이들이 각자의 재능을 꽃피우며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참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지원해야 한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보는 시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는 ‘인간다운 품격’이다. 기술의 효율성이 아닌, 생명의 가치와 정의를 고민하는 지성인, 그들이야말로 현시대와 미래에 꼭 필요한 인재상으로 2026년을 넘어 미래 대한민국을 지탱할 가장 든든한 사회적 자산이자,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