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색을 꿈꾸며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오래전 추억이 머물렀던 곳으로 가보고 싶습니다.낯선 곳에서 오래 걷고, 낯선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며, 익숙한 일상 밖의 공기가 내 안에 어떤 마음으로 들어올지, 가만히 느껴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 색칠해 보고 싶었던 무채색의 어느 날을 떠올려 봅니다. 다시 와 보고 싶었던 스위스의 조용한 시골 마을을 그리며, 문득 스위스 마테호른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다시 오고 싶었던 스위스. 마음 속에 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던 장면으로 되돌아가 봅니다. 기억 속에 있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걸어가면 자연의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줄 것 같습니다.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에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말씀이 별로 없으셨던 아버지는 꼭 손을 잡고 데리고 다녀주셨습니다. 사랑한다는 단어를 아끼셨던 아버지의 손길은 무언의 표현이었습니다.기쁠 때도,슬플 때도,누군가의 아내로 살게 되는 딸의 손을 잡고, 웨딩홀을 걸어갈 때도 손을 꼬옥 잡아 주셨습니다. 지나간 무채색의 추억, 스쳐 온 인연, 함께 걸어왔던 시간, 추억 속에 기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 중 당신은 어떤 게 더 편한가요? 예로부터 글이란 아무나 쓰는 건 아니라는 말이 있으니 편하게 하는 말하는 것이 쉬운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오히려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말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있는 글이 더 편하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막상 써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요. 엉켜있는 수많은 생각의 실타래 속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끄집어내야 하기 때문이죠. 좋은 글은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매주 한 편씩 쓰는 글의 마감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주제를 생각하다 결국 마감일이 가까워져서야 의자에 앉게 되죠. 키보드에 손을 얹고 머릿속에서 유영(遊泳)하는 단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중 하나를 꺼내어 글을 쓰기 시작해보지만 문장을 완성하기도 전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죠.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 오르는 생각들로 정리가 되지 않아 손은 또 그 자리에 멈추고 맙니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죠. ‘나는
마음의 정전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하는 새벽의 글쓰기는 그 어떤 시간과 바꿀 수 없습니다. 알람의 소리 따뜻한 차 한잔 잔잔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아침 손끝으로 튕기는 키보드 소리는 마음을 두드려주는 여유로움을 줍니다.사각사각 연필로 하얀 종이에 글을 썼던, 아날로그 버전이 조금씩 일상을 변화시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습니다.그런데 갑자기 모든 불이 꺼졌습니다. 충전 중이었던 스마트폰의 조명만을 가지고 두꺼비집을 향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어둠의 습격은 나만의 새벽을 모두 가져갑니다. 새벽의 공포를 느꼈던 날, 일상이 멈춰진 것 같았던 시간, 그날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함이 주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이죠. 수리를 마치기 전까지 음악에 마음을 맡겼던 새벽도 사라지고, 커피향도 찾을 수 없었던 시간들, 그 평온함에 금이 가게 한 이유는 단 하나, 정전이었습니다. 전기가 잠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정전(停電), 하지만 만약 그 시간들이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나의 소중한 새벽을 다시는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밀물처럼 몰려 들어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저는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
지극히 일상이 지극히 행복이다 집 앞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고들 했습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을지, 잠시 작은 기대를 품어봅니다. 한때 저는 평범한 하루를 그다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일이 생기고, 무언가 이루어져야 인생이 잘 풀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늘 특별한 일을 찾아다녔고, 남들과 비교하며 저의 일상은 너무 작고 평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던 그 일상 속에서 저는 이미 많은 역할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글을 쓰는 시간, 아이의 성장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순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역할들이 쌓여 지금의 시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사랑 위에서 유지되고 있었는지, 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마음을 지켜준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작은 것들이었습니다. 글을 쓰며 제 자신을 돌아보던 시간, 아이를 키우며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순간들, 새로운 가족 속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배워가던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저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모임을 싫어하는 편이죠,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소개 시간이 싫은 겁니다. 모임에 따라 조리 있게 말을 잘하면 좋으련만 나이가 들어도 이 부분이 저는 제일 힘이 드네요.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들, 어디서 학원이라도 다녔는지 아나운서 같은 조리 있는 말솜씨에 저도 모르게 왠지 다가서고 싶다는 마음까지... 그런 시간들 사이로 저의 시간이 다가오면 늘 후회합니다. 조금 더 잘 말해볼걸... 학창시절, 선생님께서는 날짜별로, 출석부 이름대로, 발표를 시키셨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가슴은 콩콩 뛰었습니다. ‘제발 내가 걸리지 않기를....’ 비록 몰라서가 아니라, 그저 말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표를 하지 않은 날이면, 운이 좋다며 남몰래 웃음 지었던 저였습니다. 어린 시절, 오빠와 소꿉놀이를 자주 했습니다. 하루는 좋은 역할을 서로 하겠다고 다투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어요. 왜 동생과 싸운 거냐고 이유를 묻자 오빠는 대답을 참 잘했습니다. 하지만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저는 엄마 앞에서 한마디도 못 하고 서럽게 눈물만 흘렸습니다.
헌혈의 문턱을 낮추는 작은 계기- 팬 문화가 만든 변화 헌혈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 경험이 없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주사바늘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고, 어쩌면 헌혈과 관련된 의미 없는 불안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그저 기회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죠. 맞아요. 무언가 처음 시도할 때는 작은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자의든 타의든 경험을 시작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말이죠. 최근 유명한 기획사의 제안으로 이색적인 헌혈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엔 하이픈이라는 그룹인데요. 이들의 모티브가 ‘뱀파이어’라고 합니다. 피를 마시는 가수와 헌혈과의 연결, 참 흥미롭지 않나요? 서울에 있는 일부 헌혈의 집에서만 진행된 헌혈 이벤트인데요. 제가 근무하고 있는 센터도 포함되었습니다. 헌혈하면 그룹 멤버들의 미공개 포토카드와 ‘blood bite’글자가 새겨진 초콜릿을 증정하는 거예요. 게다가 헌혈의 집 내부에는 앨범과 그들의 사진, 소품들로 특별한 공간연출도 하였습니다. 경험과 재미를 함께 할 수 있게 말이죠. 이 특별한 프로모션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10대, 20대 팬클럽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무려 11시간이나 배와 버스를 타고 온 고등학생도
어느 주말, 수면을 다시 생각하다 어느 바쁜 주말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몰려온 피로에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즈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CRM 상담사의 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오늘 헌혈하신 000헌혈자님이 지금 어지러워 버스 정류장에 계신다고 합니다. 연결해드릴까요?” “네 ” 짧은 대답이 끝나자마자 헌혈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저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버스 정류장이요.” “지금 어디가 가장 불편하세요?” “속이 좀 안 좋고, 어지러워요” “의자에 앉아 계시고, 가능하다면 누워서 다리 들고 계세요. 제가 지금 바로 갈께요.” 목소리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태인지 느껴졌습니다. 이동 혈압계를 챙겨 들고, 급히 정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헌혈 후 대부분은 특별한 증상 없이 귀가하지만 간혹 오늘처럼 헌혈 관련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 비교적 흔한 증상이 혈관미주신경반응인데요. 과도한 긴장이나 불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 나타나게 되죠. 특히 처음이거나 피로가 누적된 상태일 때 헌혈하는 경우 그럴 수 있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왜 우리는 늘 목표 앞에서 지치는가 어느새 새해가 지난 지 10일이나 되었어요. 위클리 다이어리를 쓰는 저에게는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따라옵니다. ‘어휴, 벌써 한 주가 지난거야? 시간이 왜 이리 빠른 거야.’ 나지막이 읊조리는 혼잣말에 지나가던 막내가 피식 웃음을 건넵니다. “엄마, 이제 겨우 한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는 거야” 딸의 말이 오늘따라 더욱 친숙하게 들리며 작은 철학자의 가르침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에 흡수되는 온도는 이렇게나 다른가봅니다. 늘 이맘때면 연중행사와 같던 저의 독백, ‘시간은 늘 부족한데, 할 일은 늘어나는 이유는 뭐지? 몸은 예전과 같지 않은데 말이야’ 어느 심리학자가 한 말이 불현 듯 기억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몸은 약해질 수 있지만, 지혜는 강해지기에 너무 슬퍼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이죠. 차 한 잔을 준비하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지혜보다 어쩌면 몸으로 밀어붙인 일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와 몇몇 모임을 하면서 삶에는 늘 진심이라 믿었지만, 결과를 보면 불만족한
내 몸이 보내는 ‘세로줄’ 당신은 읽고 있습니까? 평온한 주말 오전, 보고 싶었던 책도 볼 겸 도서관에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모처럼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저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었죠. 그때 책상위에 놓인 핸드폰을 보는 순간,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헉” 갑자기 멈춰버린 핸드폰 화면, 손가락으로 톡톡 몇 번씩 두드려 보고, 수차례 밀어도 보았지만, 저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스마트폰의 화면은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어, 왜 이러지?” 당황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요즘 핸드폰은 ‘오장칠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몸의 일부와도 같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죠. 평소와는 다른 이상함을 느낀 저는 도서관을 포기하고, 서비스센터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주말 운영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가까운 대리점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핸드폰을 본 직원은 안타까운 얼굴로 나지막이 말을 건넵니다. “아. 액정이 나갔어요,” 한숨 섞인 그의 표정에서 금방 해결되지 않을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길게 그어진 세로선을 가리키며 그는 말을 더했습니다. “고객님 원래
출근길, 사랑을 생각하다.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출근길입니다. 비 때문일까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오늘따라 왠지 감성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러려고 날 사랑했니? 나를 사랑하게 했니?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노래한 그 가사가 오랫동안 귓가에 머물러있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일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 사람의 어떤 모습에 이끌리셨나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이란 참 신기합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조건 없는 사랑을 하기도하고,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같은 동료라도 마음의 거리는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게 느껴지지만, 어떤 사람은 왠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니까요. 연인과의 사랑은 또 어떤가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두 사람이 운명처럼 이끌려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게 되기도 하죠. 수많은 사람 중 당신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인연’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듯합니다. 외모, 능력, 성격 등 모든 걸 갖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