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4 (수)

공에 맞은 날, 인성에 감전된 날

 교장이 전해 들은 운동장의 이야기

 

며칠 전, 한 선생님에게서 피구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었다.
공에 두 번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두 번이요.
한 번도 억울한데 두 번은… 그건 공이 아니라 인연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공이랑 친하시네요.^^”

그런데 정작 인상 깊었던 건 ‘두 번 맞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 다음 이야기였다.

맞는 순간,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는 것이다.

‘아~~~ 이거 애가 트라우마 생기겠다.’

공을 찬 아이가 그 자리에서 얼었다고 했다.

“아이고~~큰일났다아~~~!”

눈이 커지고, 숨이 멎고, 영혼이 없는 듯한 표정



그래서 바로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괜찮아~”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가 끝나자마자

이어진 이야기에 놀랐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오더니
공을 찬 아이에게 단체로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야, 너 뭐하냐?”
“선생님한테 죄송하다고 해야지!”
“빨리 말씀드려!”
“지금이야! 지금!”

선생님 표현으로는,
아이들이 갑자기 ‘예절부’가 되었다고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현장 지휘가 되고,
심지어 사과 타이밍 코치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공은 선생님의 얼굴을 때렸지만,
아이들의 예의는 선생님의 마음을 때렸다는 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 애들 착하네.”
그 순간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을 들으며
나 역시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인격은 위기에서 드러난다.”
그날 아이들은 공을 피하는 법보다,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더 먼저 알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장면이 있다는 것.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자 감동한다.

그리고 속으로 덧붙인다.
미담 게시판에 붙을 글감이 꼭 교실에만 있는 건 아니구나.
운동장에도 있구나.

물론 현실은 늘 균형이 맞는다.
“요즘 웃긴 애들 없어요?”
“싸가지 없는 애들 없어요?”

있다.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오래 기억하는 건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사과해야지!”라고 말하던 얼굴들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담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날 아이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속도가 거의 급식 줄 서기 전력질주 수준이었다고.

“선생님! 우리 꼭 ooo선생님 o학년 되게 해주세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고 한다.
“ooo선생님 o학년 되게 해달라니…?”

“저희가 올라가는 o학년 담임을 ooo선생님이 했으면 좋겠어요! 진짜 좋아요!”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은 칭찬을 “잘했어요”로 표현하지만,
아이들은 칭찬을 소유욕으로 표현한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는 호감이고,
“우리 학년으로 같이 올라가요”는 거의 계약 연장 요청이다.

2학기 초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고,
중반쯤 또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 내년에도 ooo선생님이면 좋겠어요.”

이 정도면 아이들 마음속에서 담임은 직책이 아니라 정착지다.
그 자리에 계속 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야기.

ooo담임선생님이 아프셔서 잠시 1학년 o반에 보결수업 들어가셨을 때였다.
선생님이 가볍게 물었다고 한다.

“여러분, 이제 2학년 되는 게 좋죠?”

대답은 뜻밖이었다.

“싫어요.”

이유를 묻자 아이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고 한다.

“ooo선생님이 너무 좋아서요. 1학년 그대로 있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건 성장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놓고 싶지 않은 거구나.‘

미담은 멀리 있지 않다.
“선생님 죄송해요”라는 말 한마디,
“선생님 좋아요”라는 말 한 줄,
“우리 내년에도 같이요”라는 말 한 방.

그게 선생님들에게는
버티게 하는 비타민이고,
견디게 하는 진통제이다.

“사람은 사랑받은 만큼 자란다.”


아이들이 ‘내년에도 같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사실 교사에게도 자란 흔적이다.

교육을 말할 때 우리는 제도와 정책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학교를 지탱하는 힘은
운동장에서 오간 한마디, 교실에서 나눈 눈빛 같은 작고 단단한 순간들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날,
나는 교장실 창밖 피구장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공은 사람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예의는 사람을 살린다.

“작은 예의는 큰 하루를 구한다.”


애들, 참 착하다.
진짜로.

 


 

칼럼니스트 박대훈

 

• 현) 태강삼육초등학교 교장
•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 광운대학교 대학원 석사(초등영어교육)
• 전국삼육초연합회 회장
• 한국사립초연합회·서울사립초연합회 부회장
• 서울시·충청북도 수업연구 발표대회 1등급
• 충북 단재연수원 1급 정교사 연수 특강 강사
• 학교법인 삼육학원 전국 예비교사·중고등부·어린이교사 수양회 초청 강의 다수 출강
• ‘어린이 수업 집중법’ ‘부부행복세미나’‘섬기는 교육행정’강의 다수 출강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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