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가 오는 날 고속버스를 탔다. 창밖에 내리는 비 때문에 창에 김이 서려서 밖이 보이질 않아 커튼으로 닦아 보았으나 닦이질 않았다. 재질이 나일론 섬유라 그런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손수건으로 닦으니 잠시 후 다시 흐려지기는 했으나 우선은 깨끗이 닦였다. 문득 장마철이 생각났다. 장마가 계속되어 햇빛을 보기 어려운 때는 온 집 안이 습하여 모든 빨래들이 잘 마르지 않기는 하지만 가장 곤란한 것은 수건이다. 손수건 정도야 선풍기 바람에도 금방 말라 버리지만 수건은 오래오래 탈수를 하여도 잘 마르지 않아 불쾌한 냄새가 난다. 수건이 유독 마르지를 않는 이유는 그것이 많은 물기를 보듬어 안기 때문이다. 손수건으로는 눈물이나 땀 몇 방울 정도를 닦을 수 있을 뿐이지만 수건은 목욕 후의 물기도 닦을 수 있고 감은 머리를 말릴 수도 있다.
언젠가는 네 잎 클로버를 따서 아무 생각 없이 책갈피 대신 바인더에 끼워 놓았다. 그리고 며칠 후 클로버 생각이 나서 꺼내보니 그것은 문드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돼버렸다. 비닐이 클로버의 습기를 흡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렇다. 살면서 고난 없는 사람이 없고 어려움 없는 사람이 없다. 이 때 누군가 넌지시 다가와 손을 내밀고 눈물을 닦아 준다면 그는 다시 일어서겠지만 모두 외면하고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넘어진 사람은 좀처럼 일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은 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한편 “나는 쿨-한 사람이야.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일수록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눈물이랄 것이 없지만 남의 고통까지 보듬어 안는 사람은 쉬 마르지 않는 눈물이 있다. 어머니가 그렇다. 얼마 전 친한 친구의 아내가 몸이 좋질 않아 병원에 갔다가 췌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어느 누가 그랬다고 한들 놀랍지 않고 충격을 받지 않겠는가마는 그 사람은 자식들과 가족밖에 모르고 산 사람이라고 언제나 말이 없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자신들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그러니 가족들 몰래 모두의 눈물을 보듬어 안고 살았을 것이다. 저 사람은 마음이 넓으니 이해를 할 거라고, 어머니는 응당 그러는 거라고 함부로 넘기는 일들이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그런 사람일수록 가슴에 더욱 더 마르지 않는 눈물이 있는 것을- 그런 사람일수록 더욱 더 햇볕이 필요한 것을 -
핀란드의 한 도시에는 유명한 조각 공원이 있는데 매 년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유독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한 조각상이 있는데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그 조각상은 등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머니로서 품에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에게 앞을 보게 하기 위해 자신은 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늘 그렇다. 먹는 것 입는 것에서 자신은 늘 희생하는 것이 어머니이다.
한국 엄마들의 극성은 독보적이지만 유태인 엄마들도 못지않게 극성스런 모양이다. 나라를 잃고 동유럽에 흩어져 살던 200만 가량의 유대인들은 20세기(1880-1920)를 전후로 하여 미국으로 모여들어 거기 터전을 잡기 시작했는데 영어도 할 줄 모르는 가난뱅이들이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궂은일을 했고 임금 착취를 당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서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고 지나치리만큼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요했고 자식들은 오늘날 미국을 장악하는 변호사, 기업인, 금융가. 의사가 되었다. 엄마들은 오로지 자식들 곁을 맴돌며 자식들 생각, 자식에 관한 대화만을 한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는 죽음에 임박해 자신을 화장해 줄 것을 요청한다. 유태인의 규례 상 화장은 안 된다고 랍비가 정색을 하는데도 굳이 화장을 원하면서 자신의 재를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뿌려달라고 한다. 의아해하는 랍비에게 ‘그러면 내 아들은 일주일에 두 번은 나를 만나러 올 겁니다.’라고 말한단다. 평생을 짝사랑으로 살아온 엄마의 눈물과 기다림은 이생에서는 끝나지 않는가 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