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감사를 연습하다 5년 전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찬비가 내리는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엄마 웃을 때 이상해. 거울 좀 봐요." 아들이 말했다. "그래?" 거울 앞에서 웃음을 지어본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표정, 한쪽 입 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불편함이 있었지만, 대충 식사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했다. 회사에 일찍 도착한 나는 카페에 잠시 들러 커피 한잔을 들고 서점으로 향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들고 자리에 앉은 나는 여유로운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빨대로 커피 한 모금 마시는데 이상하게 자꾸 옆으로 흘러내렸다. 사무실에 들어가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하러 갔다. 얼굴 반쪽이 마비되어 음식은 흘러내렸고, 거울을 보니 나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어떻게 병원을 찾아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귓가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다만 내 손에 쥐어진 많은 약 봉투만이 책상 위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6개월의 시간. 하루하루가 작은 전쟁이었다. 물을 마시려 하면 흘러내렸고,
해보기는 했어?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너 해봤어?” 그 짧고 간결한 질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말투로 다가왔다. ‘해봤어’라는 말 속에는 단순한 경험 이상으로 무언가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너 해봤어?’ 그 질문은 단순히 ‘어떤 일을 해본 적 있느냐’는 물음이 아니다. 이 말의 시작은 고,정주영 회장의 어록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또한 어려운 순간, 갈등을 앞에 두고 있을 때면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과 같이 항상 제 몫을 하는 질문이다. 그것은 고단했던 시간을 견뎌내고,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는지 묻는 말이다. ‘해봤다’는 3글자에 내포된 의미는 마치 인생의 굴곡과 성장의 흔적,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해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도전과 시도가 내 삶을 빚어왔다. 놀이동산에서 처음 높고 빠른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심장은 터질 듯 뛰었지만, 용기 내어 다시 앉았던 그 순간. 처음 ‘혼자’라는 이름 아래 여행을 떠났을 때, 길을 잃고 낯선 곳에서 헤매면서도 나 자신을 믿었던 그 시간
지난달 말경에 정작 뉴스에는 언급이 전혀 없는데 인터넷 블로그들에는 ‘손흥민 선수와 트럼프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손흥민 선수의 짧은 한 마디가 트럼프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는 이야기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왜 미국의 젊은이들이 손흥민에 열광하는지 알고 싶었다는 것이고 그 이유를 묻는 트럼프에게 손흥민은 자신이 축구를 잘 해서가 아니라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기 중에 저는 많은 것들을 경험합니다. 거친 태클, 야유, 때로는 인종 차별적인 발언도 듣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봅니다. 화를 낼까? 대응할까? 포기할까? 저는 침묵합니다. 그리고 다음 골을 넣습니다. 왜냐하면 싸움은 나를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나를 증명합니다." 법정 싸움, 언론 싸움, 정치 싸움 등 평생 '싸움'으로 자신을 증명해 온 트럼프는 그 밀을 수긍하기 어려웠고 "그럼, 너는 약한 거 아니냐? 대응하지 않으면 세상은 널 약하다고 볼 거야." 하고 반문했다. 그는 평생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해 온 사람이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모든 정치 철학이 그 위에 세워져 있었다. "미국 우선주
비우는 시간의 힘 옷장 문을 열 때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언젠가 입겠지, 하며 버리지 못한 옷들. 비싸게 샀다고 억지로 걸어둔 원피스. 그런데 막상 입는 건 늘 비슷한 옷 몇 벌뿐이다. 토요일 오후. 잠시 정리하려고 했는데, 하나씩 꺼내다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방바닥에 옷 산더미가 쌓였다. 이걸 내가 다 갖고 있었나 싶다. 결국 절반 넘게 버리고 나서야 마음이 후련했다. 옷장 안 옷들이 숨 쉬는 것 같았고, 나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왠지 모르게 너무 좋다. 단순히 정리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뭔가 내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 내가 일하는 헌혈의 집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혈액을 본다. 투명한 백으로 흘러들어오는 빨간 혈액. 처음엔 그냥 다 똑같아 보이지만, 혈액 속 성분의 무게에 따라 층이 분리되면 보인다. 혈액마다 다르다는 것이. 어제도 그랬다. 30대 남자분, 혈소판 성분 헌혈 전 검체를 원심분리기로 돌렸더니 혈액이 뿌옇게 보였다. "어제 뭐 드셨어요?" 물었더니 역시나 회식이었다고 하셨다. 삼겹살에 소주. 무척 미안해하시는 표정, 괜찮다고,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했지만, 사실 묻고 싶었다. ‘이분은 오늘 처음일까, 아니면 매일 이런
젊은 두 스님이 길을 가고 있었다. 얼마를 갔을까 그들의 앞에 냇물이 나타났다. 그다지 깊은 물을 아니지만 어른 무릎 이상은 되어 보이는 깊이였다. 두 스님은 물을 건너기 위해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런데 그들보다 먼저 냇가에 도착한 젊은 색시가 있었고 그녀는 물을 건널 용기가 나질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때 도착한 두 사람을 보고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하였다. “스님들, 저를 좀 도와주시어요.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한 스님은 합장을 하며 정중히 거절을 하였다. “사정은 딱하오나 저희는 출가한 몸이라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러나 곁에 있던 한 스님이 흔쾌히 색시를 업어 물을 건너 주었다. 색시는 자기 길을 갔고 둘은 다시 길을 갔다. 그러나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얼마를 갔을까 한 사람이 더 이상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응?, 말해 보게나.” “아까 그 냇가에서 자네가 여인을 업고 물을 건넜잖은가-” “아- 난 또 뭐라고, 나는 물을 건너자마자 여인을 내려 주고는 잊어버렸는데 자네는 아직도 등에 업고 있나? 참 힘들었겠네.” 사실 여인을 업지 않은 그 스님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아이들의 성장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한때 우리 교육 현장에는 ‘모든 학생은 가능성이 있다’는 숭고한 교육 철학이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성장의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특정 과목에 유독 강하든 약하든,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이 가능성의 불씨를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임을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바로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라는 정겨운 평가 방식이 있었다. 단순히 우열을 가리고 줄을 세우는 오늘날의 상대평가와는 사뭇 달랐다. '수(秀)'는 빼어나고, '우(優)'는 뛰어나며, '미(美)'는 아름답고, '양(良)'은 좋고 어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가(可)'는 단순히 '수(秀)' 아래의 등급이 아니라, '옳을 가(可)', '할 수 있다'는 뜻처럼, 아직 부족하더라도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가(可)'를 받은 학생에게조차 “너는 아직 해낼 수 있는 아이”라는 따뜻한 격려와 믿음을 주었던 평가, 이것이야말로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 어떤 제자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스승의 사랑이 담겨있었다. 당시의 교사들은 마치 한의사의 마음처럼
행복의 그림자인 괴로움 “엄마….” 오랫동안 기다려 온 소풍날,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로 갈 수 없음을 안 초등학생처럼 딸아이가 나에게 터덜터덜 걸어온다. ‘뭔가 또 일이 생겼나 본데, 이번엔 무슨 일일까?’ “나… 왼쪽 눈 아래에 또 다래끼가 난 것 같아. 나이가 들었는데도 왜 아직도 다래끼가 자꾸 나는 걸까? 너무 속상해.”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딸지만, 나이가 들면 괜찮아질 거라 말했던 엄마의 말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한편으로 귀엽기도 한 말이지만, 어쩐지 말 속에 숨어 있는 속상함이 느껴져 말없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인 나보다도 훌쩍 더 커버린 아이, 이제는 내가 안아준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이 폭신한 곰 인형 안듯 엄마를 안는다. 딸의 말처럼 이렇게나 컸는데 왜 아직도 계속 도돌이표인 걸까? 사실 5살 때부터 다래끼를 달고 살았다. 부모인 우리도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는 금방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방치했더니 많이 딱딱해져서 시술까지 해야만 했었다. 겁을 먹어서 덜덜 떠는 그 어린아이의 몸을 꼭 붙들고 서로 엉엉 울며 보내야만 했던 시술 시간. 그런 경험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늘 불안한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관계의 혈류: 말하지 못한 감정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알 것 같은 사이가 있다. 이렇게 가까운 관계일지라도 사소한 말 한마디로 때로는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모두 이해해줄 것 같은 든든했던 관계, 그러나 그런 나의 믿음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반응에 당황할 때가 있다. 길지 않은 그 진공의 시간들 속에서, 나와 그 사이에는 어떤 불편한 간극이 존재했던 것일까? 오늘 오후 전화로 대화를 하던 중, 그의 말 한마디가 나의 감정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있었다. 급격하게 차가워진 온도를 서로 확인하는 순간 침묵이 흐르고, 어색한 긴장감마저 감돌게 된다. 그가 한 말 그 자체는 그리 어렵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내 마음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혼자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의 실수도, 그의 실수도 아닐 수도 있었을 단어의 조합, 문장이었겠지만, 유독 내 기분을 힘들게 한 이유, 그 감정의 끝을 잡고 기억을 더듬어본다. 누구에게나 건들지 말아야 할 역린(逆鱗)이 있을까? 사이가 멀어졌던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그 역린을 건드린 일
엄마를 부르는 계절 햇살이 유난히 좋았던 어느 가을날 오후, 카페에서 만난 딸아이는 평소 즐겨 마시는 커피 대신 건강차를 주문한다. 조금 의아하다. 추운 겨울날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 커피를 즐겨 마시던 아이이기 때문이다. 항상 밝고 명랑한 아이였는데, 그날 따라 왠지 모르게 진지해 보였다. 딸아이는 찻잔을 매만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뭇거리며 말했다. “엄마...나... 임신했어.” 수줍은 듯 조용히 가방에서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순간, 손끝이 떨렸다. 이 짧은 한마디에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벅참이 파도처럼 밀려 오고 있었다. 딸이 엄마가 된다는 사실.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기만 한 딸이 아기를 품었다는 일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제 또 다른 생명을 책임질 존재가 되었다. 나는 그 순간, 잊고 지냈던 시간의 무게를 실감했다. ‘이제 정말 세월이 흘렀구나’ 그 감동 속에서, 불쑥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딸의 임신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던 이름. 치매로 서서히 기억을 잃고, 결국 나를 떠났던 엄마. 엄마라 부르면 늘 따뜻하게 돌아보시던 그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잠에서 깨어난다. 가젤은 사자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자는 가젤보다 빠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사자든 가젤이든 마찬가지이다. 해가 뜨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 생존 세계는 처절하다. 그런데 약육강식의 투쟁이 사바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현장에도 있다. 동물의 세계에는 불문율이 있어서 오로지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만 사냥을 한다. 그러나 인생의 레이스는 끝이 없다. 욕망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빨리 달려야만 한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스프링복(Springbok)은 평소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처음에는 10여 마리가 모여 평화롭게 생활하지만 떠돌이들이나 작은 집단이 합류하게 되고 군집이 커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앞에 있는 무리들이 풀을 죄다 뜯어먹게 되고 뒤에 쳐진 무리는 풀을 차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무리 중 한 놈이 앞으로 가기 위해 뛰기 시작하면 하나 둘 따라 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무리의 모든 스프링복이 뛰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