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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 (화)

전재학의 교육이야기 - 세대를 잇는 ‘격대교육’의 힘을 다시 생각한다

정년 퇴직 후에 손자·손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때, 우리는 시간이 만든 세대의 간격을 넘어서 또 다른 사랑과 책임을 체험하게 된다. 정작 부모가 되었을 때 직장에 얽매여 미처 자세하게 느끼지 못한 내리사랑을 경험한다. 손주들이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처음 글자를 배우는 등 이런저런 작은 성공과 좌절을 겪을 때, 지켜보는 부모는 물론이지만 또 다른 보호자인 조부모는 그 순간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교육의 축’으로 자리 잡는다. 최근 여러 가정에서 이러한 역할을 ‘격대교육(隔代敎育)’, 즉 조부모가 손자·손녀의 성장에 적극 참여하는 교육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의 사회학자 메릴린 밍거스(Merril Silverstein)와 빙트슨(Vern L. Bengtson)이 발표한 ‘세대 간 연대(Intergenerational Solidarity) 이론’ 연구는 가족 구성원 간의 정서적·사회적 유대가 아동 발달과 심리적 안정에 큰 영향을 준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에 실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조부모와 손주의 친밀한 관계는 손주의 자존감과 사회적 적응력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격대교육이 단순한 돌봄을 넘어 교육적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1. 조부모가 주는 ‘시간의 교육’

부모 세대가 경제·사회적 책임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조부모는 아이에게 ‘느림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한 초등학교 3학년 손녀와 함께 텃밭을 가꾸는 어느 조부모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손녀는 씨를 심고 싹이 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다림의 가치를 배웠고, “자연도 사람처럼 시간이 필요하다”는 조부모의 말을 깊이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경험은 교육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가 말한 ‘경험의 구조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아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경험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조부모가 제공하는 시간과 여유는 아이에게 나름대로 자기 세계를 깊게 형성하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2. 세대의 지혜가 전달되는 교육

격대교육의 또 다른 강점은 세대 간 경험의 전수다. 한 중학생이 역사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할아버지에게 1970~80년대 산업화 시절의 삶을 인터뷰한 사례가 있다. 할아버지는 “그땐 없어서 불편한 게 많았지만, 그래서 서로 돕는 일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고, 학생은 이를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 속 공동체성의 변화’라는 주제로 뛰어난 발표를 완성했던 사례가 있다.

 

이는 하버드대 교육학자이자 『다중 지능』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말한 “지혜의 교육(wisdom education)” 개념과 일치한다. 아이들은 세대의 경험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연결해 사고의 폭을 확장한다. 조부모의 삶은 한 개인의 역사인 동시에 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며, 아이에게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고 있다.

 

3.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보호막으로서의 조부모

영국 노팅엄대학교의 2014년 연구(Chambers et al., Child Indicators Research)에 따르면, 조부모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 지수가 더 높았다. 특히 부모가 바쁜 맞벌이 가정에서 그 효과는 더욱 두드러졌다.

 

조부모는 부모보다 감정적으로 여유롭고, 그만큼 아이의 감정을 더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괜찮아, 그런 날도 있단다”라는 조부모의 말은 아이에게 큰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 이것은 교육학자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서 말하는 ‘안전기지(safe base)’의 역할을 조부모가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이다.

 

4. 조부모 교육의 필요성도 함께 논의돼야

그러나 격대교육의 순기능이 크다고 해서 모든 조부모 역할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최신 교육 방식이나 디지털 환경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소위 컴맹인 조부모가 혼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격대양육 실태조사에서도 조부모의 “양육 스트레스 증가”와 “교육 정보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따라서 조부모를 위한 ‘세대 간 교육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나 지역 커뮤니티 기반 교육 워크숍이 필요하다. 조부모가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고, 손주의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적 소통을 배워야 진정한 의미의 격대교육이 실현된다 할 것이다.

 

5. 바람직한 세대 통합 교육의 방향

따라서 세대를 아우르는 바람직한 교육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①서로 배우는 관계: 조부모는 인생의 지혜를, 아이는 디지털 감각과 새로움을 가르치며 서로가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②정서적 연결의 강화: 세대 간 정서적 유대가 교육의 출발점이다. 식사 한 번, 산책 한 번, 짧은 대화 하나가 아이의 자아 안정에 큰 기반이 된다. ③ 가정·학교·지역이 함께 만드는 세대교육 생태계: 학교에서도 ‘세대 결연 프로그램’, 지역에서도 ‘조부모-손주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세대 통합 교육을 지지해야 한다.

 

맺는 말

손자·손녀를 바라보는 조부모의 마음과 내리사랑에는 시간이 선물한 깊은 책임과 사랑이 있다. 아이는 그 사랑 속에서 따뜻함과 지혜를 배우고, 조부모는 아이를 통해 또 한 번의 배움과 생기 즉, 제2의 삶의 의미를 얻는다. 세대가 서로를 키워내는 이 과정이 바로 격대교육의 본질이라 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세대 간 단절이 아닌 소통과 배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오늘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조부모의 따뜻하고 다정한 한마디와 사랑의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