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두 스님이 길을 가고 있었다. 얼마를 갔을까 그들의 앞에 냇물이 나타났다. 그다지 깊은 물을 아니지만 어른 무릎 이상은 되어 보이는 깊이였다. 두 스님은 물을 건너기 위해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런데 그들보다 먼저 냇가에 도착한 젊은 색시가 있었고 그녀는 물을 건널 용기가 나질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때 도착한 두 사람을 보고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하였다. “스님들, 저를 좀 도와주시어요.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한 스님은 합장을 하며 정중히 거절을 하였다. “사정은 딱하오나 저희는 출가한 몸이라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러나 곁에 있던 한 스님이 흔쾌히 색시를 업어 물을 건너 주었다. 색시는 자기 길을 갔고 둘은 다시 길을 갔다.
그러나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얼마를 갔을까 한 사람이 더 이상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응?, 말해 보게나.” “아까 그 냇가에서 자네가 여인을 업고 물을 건넜잖은가-” “아- 난 또 뭐라고, 나는 물을 건너자마자 여인을 내려 주고는 잊어버렸는데 자네는 아직도 등에 업고 있나? 참 힘들었겠네.” 사실 여인을 업지 않은 그 스님은 줄곧 그 일로 인한 여러 상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장작 업어주었던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곁에 있던 사람이 번뇌에 휩싸인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 중 실제로 일어나는 25%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75% 이상은 허상인 셈이다. 이 허상이라는 것이 온갖 번뇌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삶을 낭비하게 하는 주범인 것이다. 당사자와 상관없는 일을 지레 짐작으로 부풀리고 걱정하고 자신에게 일어나지도 않을 헛된 상상으로 삶을 망쳐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스페인의 시대착오적인 허상을 풍자하기 위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있고 행복했을 한 일생을 스스로 망쳐버린 여인의 이야기는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에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심지어는 우리의 신앙이나 신념이라는 것도 허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정작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초겨울 쌀쌀한 날씨에 해가 진지 꽤 지났는데 산속 조그만 사찰에 탁발수행 중인 늙수그레한 스님 하나가 찾아들었다. 저녁 공양은 이미 끝나버려서 스님은 주지스님이 배정해준 선방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밤 중 주지스님은 밖에서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이상히 여겨 옷을 주어입고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 소리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고 그곳에는 나그네 스님이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스님, 무엇을 하고 있소이까?” “너무 추워서 군불을 좀 때고 있는 중이올시다.” “땔감이 없을 텐데 무엇을 땐단 말이외까?” “법당에 가서 불상을 가져다가 쪼갰소이다.” “아니! 부처님을 땐단 말이오!” 경악을 한 주지스님이 길길이 날뛰는데 나그네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냉랭하게 말했다. “저깟 쓸모없는 불상은 차라리 불이나 때서 등이라도 덥히는 것이 낫지 않겠소이까?” 공양이 끝났다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방이 냉골인데도 아무 조치 없이 잠을 자도록 하는 자비심 없는 주지스님에게 부처의 가르침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다면 차라리 땔감이 되는 것만 못하다는 일갈(一喝)이었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학자요 문인이었던 이덕무(1741-17930가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 자신이 아끼던 『맹자』 7권을 2백전에 팔아 밥을 배불리 먹고 친구인 유득공에게 이야기하니 유득공도 『죄씨전』을 팔아 밥을 먹었다한다. 이덕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들이 만약 해를 마치도록 이 두 책을 읽기만 했다면 어찌 일찍이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겠소. 그래서 나는 겨우 알았소. 책 읽어 부귀를 구한다는 것은 모두 요행의 꾀일 뿐이니 곧장 팔아치워 한 번 배불리 먹기를 도모하는 것이 박실(樸實-본래의 충실함) 함이 될 뿐 거짓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이는 자여씨(맹자)가 친히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씨(좌구명)가 손수 술을 따라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이들은 실학의 선구자들이었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