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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1 (화)

최홍석 칼럼 - 사바나[savanna]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잠에서 깨어난다. 가젤은 사자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자는 가젤보다 빠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사자든 가젤이든 마찬가지이다. 해가 뜨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 생존 세계는 처절하다. 그런데 약육강식의 투쟁이 사바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현장에도 있다. 동물의 세계에는 불문율이 있어서 오로지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만 사냥을 한다. 그러나 인생의 레이스는 끝이 없다. 욕망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빨리 달려야만 한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스프링복(Springbok)은 평소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처음에는 10여 마리가 모여 평화롭게 생활하지만 떠돌이들이나 작은 집단이 합류하게 되고 군집이 커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앞에 있는 무리들이 풀을 죄다 뜯어먹게 되고 뒤에 쳐진 무리는 풀을 차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무리 중 한 놈이 앞으로 가기 위해 뛰기 시작하면 하나 둘 따라 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무리의 모든 스프링복이 뛰기 시작한다. 풀이 지천으로 있는데도 서로 뒤처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뛰다보면 달리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게 된다. 그러다가 한참을 달리던 선두 그룹은 어느 순간 멈춰 서야 한다. 앞에 낭떠러지나 악어가 우글거리는 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결국 미친 듯 열심히 달려오는 무리에 떠밀려 추락하거나 강물에 빠져 죽어야 끝이 난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사는 곳에서는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이동해 버리고, 그 자리에 멈춰 있으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기묘한 법칙이 존재한다. 이는 그 세계가 주변의 물체가 움직이면 주변의 세계도 같이 연동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며, 앞으로 나아가려면 죽어라 달릴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들이 100km/h로 달릴 때 나도 같이 100km/h로 달려야 멈춰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상대속도가 0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속도가 100kh/h이 못 되면, 다른 차들보다 후퇴한다. 결국, 남들을 앞서가려면 100km/h를 초과하는 속도로 달려야 한다.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칙은 시카고대학의 진화 학자 리 밴 베일런(Leigh Van Valen) 교수가 생물학의 ‘붉은 여왕의 효과 (Red Queen Effect)’라고 언급함으로써 유명해졌고 생물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든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이론이 되었다.

 

아이들이 모친의 태에 있을 때부터 태교로 시작된 교육은 영어를 필두로 한 조기 교육과 태권도와 각종 예능 학원으로 이어지고 학창 시절 내내 입시를 준비하느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학원을 전전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끝이 아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하고 교통지옥을 뚫고 출퇴근을 하며 전셋집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야간에도 두 개 세 개의 부업과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나 바라는 꿈은 항상 저만치 앞에 있다. 나의 능력치보다 집값 상승이 크기 때문에 보금자리는 항상 앞서 가고 있다. ‘붉은 여왕 효과’에 갇힌 것 같다.

 

서민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부자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달리지 않으면 어느 날 파산을 당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도 멈출 수가 없다. 스프링복의 달리기와 흡사하다. 낭떠러지로 떨어져야 끝이 난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은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재화는 모두가 살기에 넉넉한 데도 이웃을 경쟁자나 포식자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걸음을 늦출 수 있을 텐데도 행여 뒤처지면 죽을세라 무작정 달린다. 학자들은 스프링복의 문제는 자신을 향한 ‘왜’라는 질문의 부재라고 했다. 발밑에 풀이 넉넉한데 왜 달려야 하는가? 우리는 스프링복이 아니다. 질주를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남들이 뛴다고 나도 무작정 뛰어야 하는가?’ ‘더불어 살 수는 없을까’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