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하루를 마치며 학원에서 늦게 퇴근하는 신랑과 집에서 맥주 한잔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특별한 화두가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인생의 동지로서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이 소중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그 좋던 시간들도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드문드문 이루어진다. 신랑은 내 눈과 마주치면 “한잔할까?”라는 이야기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듯하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서 부산스러운 내 모습, 매일 앉아 있어 살이 쪘다고 투정하는 말, 갱년기라 핑계 대며 여기저기 아프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그 좋아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꿀꺽 삼키고만 있다.
맥주가 좋은 이유는 차가움이 바로 입안으로 적셔지기 전에, 마중물처럼 포근히 거품이 먼저 감싸주기 때문이다. 다른 술들에게는 그러한 포근함이 없다. 우리 인생도 거품 위에 존재한다. 사람마다의 거품 정도는 다르다. 맥주를 마실 때 얼마나 흔들었느냐에 따라, 잔에 따를 때 기울기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거품 정도가 다르듯 인생도 얼마나 굴곡이 있었냐에 따라, 그 길을 어떻게 생각하고 걸어왔느냐에 따라 인생의 거품 역시 다를 것이다.
포근한 거품은 따뜻함을 무기로,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을 알면서도 움직이게 하는 마법이 있다. 포근한 거품 뒤에 다가올 차가운 알싸함을 알면서도 맥주를 마신다. 아직 보이지 않아 행복할 것만 같은 미래의 꿈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가지만 금세 생각지 못한 차디찬 현실과 마주치게 되는 인생도, 그런 벽이 있다는 걸 알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내 인생에는 거품이 얼마나 있는 걸까?
모두 다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는 거품.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을 모두 대단하다고 말해주리라 생각하는 거품.
엄마로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본받을 거라 기대하는 거품.
오늘의 고생이 곧 우리 가족들에게 큰 보상으로 돌아오리라 꿈꾸는 거품.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나 영원하리라는 거품.
이러한 많은 거품들은 삶을 살며 조용히 내 안에 쌓여오고 있었다.
거품에 파묻혀 있느라 현실을,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보지 않고 내달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포근함을 무장한 거품이지만 그 거품만 바라보며 취해있다가는 현실의 벽 앞에서 거품과 함께 내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생에 거품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거품 덕분에 다른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도전이라도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적절한 것이 가장 좋다. 인생의 거품도, 맥주의 거품도 적당히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상의 기분을 선사해 줄 수 있다.
포근함이 좋아 거품을 더 많이 만들겠다고 자신을 정신 없이 흔들어 대며 아등바등하지 말자. 거품이 많을수록 꺼짐도 빨라진다. 거품 뒤 상황에 실망하여 거품조차 만들지 않겠다고 발뒤꿈치를 들어 살금살금 걸어가지도 말자. 거품이 너무 없으면 작은 것도 시도할 용기조차 갖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중간되기! 하지만 거품이 산 위에 포근히 걸쳐진 구름처럼 잔 위에 넘치지 않고 올려져 있을 때 최상의 맥주 맛을, 최고의 인생 맛을 볼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우리는 알지 않는가? 그러니 맥주 바리스타인 자신을 믿어보자! 오늘의 거품을 멋지게 만들어 내보자!
나 역시 이 멋진 맥주를 그간 말하지 못하고, 고맙게 참아주었던 신랑에게 시원하게 한 잔 권해보려 한다.
“우리 오늘 한잔할까?”
◆ 약력
· 공투맘의 북랜드 온라인 커뮤니티 대표
· 행복학교 자문위원
· 작가
· 온라인 리더 전문 교육 강사
· 2025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