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것을 부고(訃告)라고 한다. 올해는 이상 기후 때문인지 유독 부고가 많이 온다. 매번 부고를 접하는 순간 고인과 함께하던 지낸 날들과 고인에 대한 수식어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지로만 남게 된다.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1888년 노벨의 형이 죽었다. 그러자 한 신문사에서 이를 노벨 자신의 사망으로 오인해 사망 기사를 냈고 노벨은 자신의 부고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살아있는 자신을 죽었다고 오보(誤報)를 해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고안해 낸 사람’ 심지어는 ‘죽음의 상인(商人)’이라고 지칭한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 재산 3,100만 크로네(단순 환산으로 약 50억원,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700억 원의 가치)를 노벨상 제정을 위해 내 놓았다. 그 돈을 이용해 전 해에 인류를 위해 가장 뛰어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노벨상은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 되었고 물리학상, 생리학·의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등 인류를 위해 뛰어난 기여를 한 사람들이 그 상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오늘 아무도 노벨이라는 사람을 죽음의 상인이라고 기억하지 않는다.
몇 해 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갔을 때 노벨상을 발표하던 한림원과 시청사를 방문하여 노벨상 제정자인 노벨의 일대기를 보았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소개해 놓은 곳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 한 분도 평화상 수상자로 그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 다시 가보면 우리나라의 문학가가 한 사람 더 추가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죽었을 때 좋든 싫든 우리의 지인들은 우리의 사망 소식을 놓고 거기에 수식을 붙일 것이다. 그리고 그 수식어는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사람들은 고인을 기억할 때 생전에 재산을 얼마나 모았느냐 어떠한 지위에 올랐느냐보다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어떠한 기여를 하였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은 고작 몇 십 년에 불과하지만 역사는 그보다 훨씬 유구(悠久)하고 영화(榮華)는 잠간이지만 치욕스런 이름은 자손대대에게 물려진다. 잘 못 산 인생은 자신은 죽으면 끝이 나지만 이를 물려받은 후손은 ‘윤동주의 참회록’을 되 뇌이며 살아야 한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새벽이나 날이 서늘해질 무렵 밖에 나가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운동들을 참 많이 한다. 뛰기도 하며 부지런히 걷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팔을 휘두르며 걷는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이다. 유튜브에는 각종 건강 비결과 건강 식단이 소개되고 홈쇼핑엔 각종 건강 보조식품 광고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오래 살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다. 죽는 것 보다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어느 사형수에 대한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그는 사형을 당하기 위에 단두대에 오르다가 발이 계단에 걸려 휘청했다. 이때 자신도 모르게 “아이쿠! 하마터면 죽을 번했네!” 하고 외마디를 질렀다. 이윽고 집행관이 담배를 내밀며 마지막으로 담배나 한 대 피우라고 하자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며 거절했다. 그리고 5분도 안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들이다. 단명한 사람도 있고 장수한 사람도 있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다. 그러므로 얼마나 오래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가가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치자.
어떤 유태인 랍비는 해마다 두 장씩 자신의 부고장을 작성해 본다고 한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전해질 법한 내용으로 하나는 전해졌으면 하는 내용으로 작성을 해 본다는 것이다. 기억되고 싶은 이미지대로 살기 위한 것이다. 본받음직한 일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