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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30 (수)

임지윤 작가 에세이

색으로 짐작할 수 있는 생두의 나이


겨울, 시린 바람이 사람의 온기를 찾아 불어오듯 외투 속으로 파고든다.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지하철로 향한다. 북적이지 않는 따뜻한 지하철 안, 봄처럼 밝은 모자, 고운 색의 목도리, 두꺼운 외투, 부츠로 무장한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이 출발하자 겨울바람, 앙상한 마른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흔들리듯 할머니 한 분이 휘청하신다.

 

반대쪽 문에 몸을 기대 서있던 비슷한 연배의 여성분이 “할머니, 여기 기대 서셔.”라고 말하며 할머니를 잡아 본인이 서있던 자리를 양보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잠시 기대 서계시다 이내 다시 처음 있던 곳으로 걸어가 꼿꼿하게 서신다. 생기가 넘치는 한 여름의 나무처럼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듯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잠시 머물며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짧은 인연이었을지라도, 오늘은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지하철 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얼굴에서 나이와 상관없는 각자만의 생기가 느껴진다.

 

생두는 보관되는 기간에 따라 향미가 생기있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고, 점점 사라지는 시기가 있지만 사람은 그러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생두는 그린빈(Green bean)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갓 수확한 신선한 생두가 푸른빛이 도는 녹색을 띠기 때문이다.

 

그린빈(Green bean)

로스팅이 되지 않은 상태의 생두를 그린빈이라 한다. 대부분의 생두는 녹색이나 옅은 청록색을 띠지만 품종이나 가공 방식에 따라 색상이 다를 수 있다. 로스팅이 되지 않은 생두는 풋향이 난다. 적절한 환경에서 보관되어야 생두의 품질과 향미를 오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보관되는 장소의 온도와 습도 관리가 중요하다. 적절한 온도는 18~20°C, 습도는 60% 이하의 건조한 환경에서 보관되어야 곰팡이나 잡내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공기 노출을 최소화해야 품질의 변화를 줄일 수 있어 밀폐된 상태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전 세계 커피 거래의 대부분은 생두 상태로 이루어지며 산지에서 수입된 생두가 현지에서 로스팅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생두는 수확 후 보관되는 기간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다.

 

1년이 되지 않은 가장 최근에 수확이 된 생두뉴 크롭(New Crop)이라 한다.

뉴 크롭은 수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분 함유량이 높고, 푸른빛이 도는 청록색을 띠며 신선하고 풍부한 향미가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선호되는 생두이다.

 

수확 후 1년이 지난 생두는 패스트 크롭(Past Crop)으로 부르며 뉴 크롭에 비해 수분 함유량과 향미가 감소한다. 색은 옅은 녹색을 띠고 보관 중 산미가 감소하고 단맛이 증가해 부드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수확 후 2년이 경과한 올드 크롭(Old Crop)은 갈색을 띠고, 뉴 크롭과 패스트 크롭에 비해 수분 함유량이 적고 향미가 약하다. 보관이 잘 된 올드 크롭은 특유의 독특한 풍미를 갖기도 하지만 적절한 환경에서 보관되지 않을 경우 퀴퀴한 냄새와 산패의 맛이 결점으로 나타난다.

 

생두는 보관되는 장소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좋은 향미가 오래 간직되기도 하고, 에이징 되면서 맛이 안정적으로 되기도 하며, 전혀 다른 좋지 않은 향미로 변질되기도 한다. 농부가 커피를 잘 재배해 가공을 해도 보관되는 곳의 환경이 적합하지 않으면 품질이 좋은 생두의 향도 퀴퀴한 곰팡이 같은 향으로 바뀌면서 맛도 나빠진다.


사람의 성격과 성향도 이러하지 않을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전적인 요인이 아무리 좋아도 후천적 요인이라 할 수 있는 가정환경, 사회에서 접하는 환경에 따라 성격과 성향이 달라지니 말이다.

 

지하철에서 마주한 할머니의 생기가 도는 얼굴을 보며 그녀가 머무는 공간, 가족과 친구들의 온도가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비록 얼굴은 기억하지 못할 짧은 인연이었겠지만, 그녀의 모습은 잔잔했던 내 마음에 작은 파동을 하나 일으켜주었다.

 

시린 겨울바람이 사람의 온기를 찾아 외투 속으로 파고들어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지하철로 향했듯, 자신이 놓여있는 환경 안에서 스스로의 향미를 잃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시리고 아픈 마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흔들리는 지하철처럼 마음에 일렁이고 있었다.

 

좋지 않은 환경에 보관되어 향미를 잃고 퀴퀴해지고 곰팡이가 생기는 생두처럼 되지 않도록,

자신의 향미를 간직하며 세월의 에이징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또 나에게 다가올 그 누군가에게 줄 여유의 공간을 마음에 품고 지하철에서 내린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