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을 만나러 전남 장흥을 다녀왔다. 지인의 안내로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을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쌀쌀한 날씨임에도 한참을 밖에서 기다린 후에야 가까스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식사 중, 손님이 넘쳐나는 걸 보니 유명한 식당인가 보다고 했더니 대답하기를 지금은 손님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기보다 더 붐비던 식당이 근처에 있단다. 그래서 왜 손님이 줄었는지 혹 주인이 바뀌었는지 물으니 주인이 바뀌지는 않았는데 너무 불친절한 것이 원인이란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주인이 처음부터 불친절했다면 애초부터 손님이 넘쳐나지 않았을 텐데 필시 장사가 잘 되니 주인의 태도가 바뀌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편 내가 아는 식당 생각도 났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식당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주인이 나이도 들고 건강이 여의치 않아 운영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자 한 사람이 재빨리 인수를 했다. 그러나 손님이 서서히 줄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식당은 주인이 또 바뀌었다. 실패한 연유를 주인만 모르고 다른 이들은 알고 있다. 이전 주인은 새벽시장을 가서 최고의 식자재를 구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그날의 음식은 절대로 다음 날 다시 나오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새 주인은 검소하다 못해 인색한 사람이라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식자재도 약간 저렴한 것을 사용했고 변질이 안 되었다하여 남은 음식이 다음 날 다시 나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때로는 원산지도 속였다. 손님들은 하나 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어떤 식당은 아버지가 성공적으로 키운 것을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몇 해 못가 폐업을 했다. 평소 아버지가 가격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을 준다는 데 불만이었던 아들은 식당을 물려받자마자 가격을 올리고 양을 줄였다. 그것이 더욱 많은 돈을 벌게 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민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다. 따라서 마음을 바꾸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다.
식당의 경우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음식 솜씨가 첫째로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청결이나 친절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고 정직, 그러니까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한자성어는 양의 머리를 밖에 내걸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성을 뜻하는 말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과 동의어로서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만드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망하게 만드는 행위를 경계하는 데 쓰이는 말이다.
신뢰는 개인이나 회사나 교회나 학교 등 모든 단체의 생명이다. 눈앞에 있는 약간의 이익을 얻는다 해도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교사가 신뢰를 잃으면 학생들은 교사가 무슨 말을 해도 의심부터 할 것이고 반대로 실력은 조금 부족한 듯해도 믿음을 주는 교사는 존경을 받는다. 지휘관이 신뢰를 잃으면 제대로 전쟁을 치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직자가 신뢰를 잃게 되면 아무리 근엄하고 거룩한 표정과 목소리로 호소를 한다 해도 신자들은 위선으로밖에 느끼지를 않을 것이고 의사가 신뢰를 잃으면 환자의 병은 잘 낫지 않는다. 정작 교사나 성직자나 신뢰를 잃게 되는 원인은 수업이나 설교가 신통치 않아서가 아니라 일구이언을 한다든지 언행이 불일치 할 때이다. 이런 것은 무지나 태만에서 온다.
내가 아는 어떤 학교는 학생들의 흡연율이 타 학교에 비해 믿을 수 없으리만치 낮다. 관내의 생활지도 회의 때마다 모두들 놀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학교는 전 교직원 중 음주 및 흡연자가 하나도 없음을 알고 그제서야 수긍을 했다. ‘평범한 교사는 말하고 우수한 교사는 가르치고 훌륭한 교사는 감동을 주며 최고의 교사는 모본을 보인다.’고 한다. 어떠한 이론이나 학설을 가르치는 것보다 ‘나를 본받으라.’할 수 있다면 최상의 교육이 아니겠는가? ‘의사가 실수를 하면 한 번에 한 명씩 죽이지만 교사나 목사는 한 번에 수백 수천 명을 죽인다.’는 말이 웃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신뢰는 꾸민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한결같은 마음가짐과 생활에서 나온다. 오늘날의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는지 마음이 아프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