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결점두 “맛있는 밥 한 끼 같이 먹자!” 말을 꺼낸 지인. 가족 행사 때문에, 사정이 생겨, 출장이란 이유로... 이상하리만큼 한 친구는 나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면 다른 일이 생겨 취소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1년 동안 미루어지던 약속을 다시 잡은 친구. 이번에는 지켜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속을 확인하려 보낸 톡, 돌아온 친구의 답장은 급한 일정으로 다음 주로 미룰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답장으로 순간 마음속에서 화가 일었다. 이쯤 되면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이렇게 매번 취소하는 것은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불쾌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맛있는 밥 먹자.”라고 답장을 보냈었지만, 이번만큼은 화가 난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친구의 미안하다는 사과에도 말뿐이었던 약속에 서서히 무너지던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니 그 사과는 의미 없는 말로 들렸다. 친구와 톡을 주고받은 후, 좋지 않은 마음을 감추고 강의장으로 향했다. 로스팅 수업 첫날,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로스팅을 맛있게 잘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생각하지 않은 질문에 강의실 안은 잠시 정적이 흐
결정 하나로 더 행복하게 살자 시간이 있으면 하자, 자투리 시간이 있을 때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결국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 이렇게 관심사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내가 있는 반면, 관심이 있어도 실천하지 못했던 나를 보며 자존심이 떨어진다. 케임브리지 대학 바바라 사하키안(Barbara Sahakian)교수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최대 약 3만 5천 번의 결정을 한다고 한다. 말 한마디 하지않은 단계에서 이미 수많은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한다. 또한 몸을 계속 움직이면 피곤한듯, 결정을 계속 내리면 뇌가 피로해져 점점 결정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이 현상이 바로 '결정 피로'이다. 결정 피로에 대해서는 심리학자 조너선 레바브(Levav)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이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판사들의 가석방 심사 결과를 분석한 연구가 유명하다. 가석방 심사는 범죄자가 충분히 죄를 뉘우쳤다고 생각하면 형기를 꽉 채우지 않고도 사회로 돌아가게 해주는 제도이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선정한 판사 4명의 심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체력이 온전한 이른 오전에는 가석방 비율이
몸이 전하는 메시지 두 발에서 시작하여 발목을 지나 무릎, 허리, 머리로. 시선을 옮기며 긴장을 풀어본다. 그리고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후” 하고 내뱉는다. 며칠 동안 목과 어깨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모니터만 바라보는 일을 오랜 시간 지속해서인지 최근에는 부쩍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이럴 때는 몸을 한번은 들여다보면 좋다. 건강검진 등 몸을 체크하는 방법 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가끔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잠들기 전이나 아침, 몸을 살피는 작업을 한다. 발끝에서 머리로, 그리고 머리에서 발끝으로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살펴보는 이 과정을 통하여 몸이 하는 말을 듣기도 하고, 몸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두 눈을 감고, 몸을 살펴보는 것. 그것을 흔히 바디스캔이라 한다. 바디스캔(Body scan)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으로 마음 챙김 명상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그 방법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잠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바닥이나 침대에 몸을 펴고 누워 의도적으로 몸 전체의 감각을 살펴본다. 엄지발가락을 중심으로 발끝을 살피고, 머리까지 몸을 스캔하듯이 관찰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피부의 감각,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정말 잘 걷는다.” 라는 말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는 내 등 뒤에서 들린다. 눈앞에 출발 지점에서 10km를 걸어왔다는 이정표가 보일 때쯤, 산길을 앞서서 묵묵히 가고 있는 나를 보고 지인이 하는 말이다. 지인과 집에서 가까운 산을 찾았다. 산 중턱까지 완만하게 둘레길로 연결되어 있지만, 급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길은 구간 구간 어김없이 나타나 숨을 헐떡이게 하고, 몇 시간째 걷고 있는 우리에겐 평지 또한 만만하지 않다. 산을 다 내려가기 위해 이 길을 끝까지 간다면 둘레길 한 바퀴, 14.5km를 걷는 셈이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다. 보통 7km를 걷는 나는 큰 욕심 없이 오늘도 딱 그 정도만 예상했지만, 지인은 한 바퀴를 돌아보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운다. “그래, 그렇게 해 보고 싶다면 해 보자.” 한낮의 태양은 불타는 듯이 뜨거웠지만, 다행히 산길은 우거진 나무의 초록 잎들이 햇살을 다 받아내며 그늘까지 만들어준다. 처음엔 지인과 나란히 걷는다. 그러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만나 헐떡이고 다시 평지를 걷고 내리막을 수월하게 통과하기도 한다.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에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짙어가는 나뭇잎을 보며 행
특별한 벌칙 고민이 생겼다. 시험을 앞두고 반복적인 실수가 나오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실수가 줄어들까?’ 곰곰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바리스타 스킬 기초 수업 중 내뱉는 독백이다. 머신 앞에서 그라인더와의 고군분투 끝에 우렁차게 “끝났습니다.”를 외친 수강생의 말을 믿고 끝냈는지 확인하러 수강생에게 걸어간다. 청소할 항목들이 모두 완료가 되었는지 체크를 시작한 순간, 끝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니 그러려니 할 법도 하지만 내 고민은 시작된다. “끝났습니다”라는 멘트는 분쇄도를 조절해 에스프레소가 정상추출이 되도록 맞추었음은 물론, 추출 후 빠짐없이 해야 하는 청소까지 끝냈다는 의미, 하지만 청소 항목에서 한두 가지가 빠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적으로 빠뜨리는 청소가 나온다. 추출 후 포터필터 안의 원두찌꺼기를 버리지 않아 그대로 있거나, 비워져있어야 할 그라인더 도징챔버 안에 여전히 원두가루가 있기도 하다. 드립트레이 위의 물기와 에스프레소 자국을 닦지 않는 실수, 깨끗해야 할 탬퍼베이스와 탬핑매트, 저울에 원두가루, 에스프레소가 묻어 있는 실수도 비일비재하게 나온다. 에스프레소 머신과 기물의 명칭
검은 커피, 검붉은 마음 외상을 입은 동물과 깊게 베인 마음의 상처가 있는 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오롯이 아픈 상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치유의 시간과 장소가 아닐지 모르겠다. 동물도, 사람도 아픔을 숨기고 외부에 자신의 약함을 들키지 않은 채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장소. “동굴” 밝고 따뜻한 빛으로 가득한 곳이 아닌 한 줄기 빛조차 느낄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 그것은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닌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반응하며 회복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함이 아닐까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의 마음과 자세로 5월부터 준비했던 브루잉 대회 예선전. 첫 도전이었고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출퇴근 전후로 팔과 어깨가 아프도록 드립포트를 들고 치열하게 연습했던 지난 석 달의 시간. 예선 시연 15분 전, 테이스팅을 하며 기물을 준비하는 시간에 추출한 커피의 맛이 연습할 때와 달랐다. 바디감이 밋밋하고 쓴맛이 느껴지는 커피에 난감했다. 급하게 추출 조건을 바꾸느라 기물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커피 맛을 수정하는데 쓰다 보니 경기 시간이 부족해졌다. 선수로 처음 참여해 본 경기에 시연 후 눌러야 하는 타이머도 누르지 않는 실
커피와 약속 “사람은 약속을 지킬 때 강해진다” -마하트라 간디- 약속을 지키는 이와 지키지 않는 이와의 간극(間隙), 과연 기억력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문제일까?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게 고마운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고, 자신의 말에 담긴 진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 때문이 아닐까? “커피 공부를 하면서 커피에게 한 약속이 있다.” 사람도 아닌 음료를 보면서 약속을 지켜가는 건 어쩌면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왜 커피를 하지?” 올봄, 나에게 조용히 건네 본 질문이다. 커피를 마시면 잠 못 이루던 나, 하루 몇 잔의 커피를 마시며 향미를 공부했던 시간 사이로, 큐그레이더(Q-Grader,국제 아라비카 감별사)를 준비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커피의 향미는 나에겐 커피가 전해주는 이야기로 들렸다. 혀와 코로 들어야 하는 커피의 이야기. 그것은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작은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향미로 속삭이며 다가온 커피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고 약속했다. 커핑(Cupping) 커피의 향미 특성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컵 테스트(Cup Test)라고도 한다. 커핑을 통해 전문적으로 커피
막아설 수 없는 것 “이제 여름도 다 끝났어.” 라고 아이에게 말한다. 치과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러자 아이는 “아냐. 지금 얼마나 더운데.” 라고 반기를 든다. 사실 햇살을 피해 걷고 있어도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의 반응처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며 펄쩍 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새벽 공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새벽의 찬 기운을 기대하며 베란다 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 대신 끈적이고 후끈한 열기의 급습을 매번 받으며 얼른 닫고는 했다. 밤이 되어도 한낮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기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매일 쌓이기만 하는 도시살이에 지쳐갈 때쯤이면 계절은 살금살금 변화를 예고한다. 푹푹 찌는 듯한 여름도, 말복(末伏)이 지나면서 새벽이면 선선한 바람이 기가 막히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래전 어느 여름의 작은 깨달음 덕분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과일도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던 시절, 여름엔 수박을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 나만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말복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수박은 속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얼음이 가득 담긴 자몽에이드 한 잔을 마시며, 큰 창 너머 파란 바다를 바라본다.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바다와 하늘 덕분인지, 방금 목 넘김을 한 얼음 때문인지 더운 열기가 사라지는 듯하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파란 풍경에서 잠시의 여유를 찾는다. 그 사이 물길을 가르며 제트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커피숍 아래 선착장으로 들어선다. 여러 번 제트스키에 올라타본 듯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은 미흡한 실력에 코칭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으며, 바다 위에 떠있는 제트스키를 다루며 각자의 방식으로 즐긴다. 그 광경을 바라보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시원하겠다... 재미있나 보네. 왜 나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을까.’ 물을 좋아하지만, 물을 무서워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이어서인지, 용기가 없어서였는지, 삶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카테고리의 장면을 마주하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물이 무서워 수영을 배우는 것을 주저했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배우지 못했다. 이제는 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 바다든 계곡이든 발만 담그는 정도에서
실력이 없다고 느꼈다면 오히려 기뻐하라 1년 반 전부터 알토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 어제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연습하다 보면 예전보다 실력이 떨어졌다고 느낄 때가 있어. 하지만 그건 귀가 예민해서 그렇지. 나도 예전에 실력이 떨어졌다고 느낄 때마다 우울했는데, 지금은 이게 실력이 향상된 결과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어. " 다른 배움도 마찬가지다. 나는 외국어 학습을 좋아하는데 예전보다 못하거나 실력이 정체된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실력이 향상되거나 향상 직전의 신호이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학습 시간과 그 효과는 항상 비례하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프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정비례로 올라가다가 어느 정도 가면 정체되는 기간이 나타난다.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정비례로 향상되지만, 처음처럼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시 정체기를 거쳐 실력이 상승된다. 그러니 정체되었거나 이전보다 실력이 떨어줬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었다, 혹은 조금 더 계속하면 향상될 신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가 가장 힘들다. 연습을 해도 편화가 전혀 없다고 느낄 때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