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유연하게 돌아오는 삶 “아우.. 머리야...” 지끈거리는 한쪽 두통과 어깨 결림. 왼쪽으로 잘 기울어지지 않는 뻐근한 목 상태를 원망하며, 피로하다고 중얼거린다. 최근 들어, 다시 시작된 왼쪽 귀에서 들리는 딸깍거림은 현재 나의 상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난히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아직 시들지 않은 강아지풀이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저 가느다란 기둥을 가지고 꺾이지 않고 흔들리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유연하게 흔들리고 싶은데.’ 강아지풀을 보며, 불현듯 든 생각은 부러움이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상황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없는 요즘. 부러지지 말고, 흔들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강아지풀이 가냘프게 보이기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유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에, 꺾이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져도 다시 돌아오는 힘. 우리는 그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상태를 되찾는 것을 말하는 회복탄력성은 나에게. 그리고 여러 다양한 모양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필요한 개념인 것 같다. 최근
‘한계’라는 배부른 소리 “저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 한마디에 깜짝 놀라 잠깐이지만 당황한다. 언젠가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위한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던 적이 있다.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내 차례가 되자 다른 사람들처럼 이름을 시작으로 소개를 하며 한 말이다. 말을 던져놓고 바로 후회가 몰려온다. 왜 필요도 없는 말을 했을까? 어이가 없기도 했고 워낙 말을 잘하는 사람들 틈에 있으려니 기가 죽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맞을까?”라는 깊은 질문 속에 빠지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정말 나는 듣는 것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한 말에 동의를 못 하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디서든 내 의견을 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진심이었으리라.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담소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있는 곳에서의 말하기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혹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던 중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걸까? 어떤 경험이 있었기에 시작도 전에 못 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습관화 노하우를 활용하자 우리는 왜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갑자기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에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낀다. 즉, 기분이 좋다는 감정이 행복감을 만든다. 또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자유도 느낀다. 이런 해방감, 즉, 이론적인 판단이 아니라 여러 제약을 생각하지 않는 몰입 상태가 그곳에 있다. 따라서 더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면 기분 좋게 보내는 시간과 몰입 시간을 보다 많이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을 만들 수 있을까? 행복을 느낀다는 감각적인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뇌는 행복감을 감지하면 세로토닌, 옥시토신과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먼저 결정할 때도 이런 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좋은 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고, 먼저 자신이 행복하다고 결정만 하면 된다.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행복에 관한 대표적인 근대 철학자 세 명중 한 명인 알랭(Alain)은 행복에는 반드시 행동이 동반된다고
누구나에게 쉽지 않은 첫걸음 “드르릉” 차의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는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천천히 떼며, 주차장을 몇 바퀴 돌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좀처럼 늘지 않는 운전실력은 내가 겁이 많아서인지,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차 산지가 언제인데. 아직 혼자서 운전이 힘들면 어떡해?”하며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운전실력은 1년이 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작 시동을 거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이니 말이다. 아직도 운전석에 앉는 것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나도 괜찮게 운전을 하는 날이 올까.’하는 생각과 함께 주차장을 나오다 불현듯, 빈센트 반 고흐의 첫걸음(first step)이 떠올랐다. 아기의 첫 발짝을 떼는 순간의 광경을 그린 것으로, 평소 고흐가 보여주었던 화풍과는 사뭇 다르게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진 그림이다. 고흐의 첫걸음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밭을 갈던 아버지는 이제 막 첫걸음을 떼는 자식을 보며,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를 향해 팔을 뻗는다. 아이의 어머니는 혹여나 넘어질까 뒤에서 아이를 잡아주며, 발걸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부축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당신의 몸은 당신과 화해하고 싶어한다 당신의 몸은 당신과 화해하고 싶어한다 “미안해. 내가 너무 몰랐어. 네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있었구나. 무심해서 미안해.” 누구에게 큰 잘못을 한 것일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사과를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이 장면. 사실은 내가 내 몸에 하는 고해성사다. 살면서 처음이다. 왜 몰랐을까? 마음을 알아차리고 돌보는 것만큼 몸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두통을 자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다. 두통을 못 느끼고 살았다는 말보다 그 통증을 무시하고 살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무던히 참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을 하고 필요한 검사를 진행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결과를 듣게 될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마지막에 의사에게 우린 이런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너무 많이 들어 충분히 예상 가능할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모든 문제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스트레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번아웃이라는 말은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여름에 너무 더웠기에 계속 집에서 책 원고, 블로그와 시 등 글만 쓰고 있다가 9월이 되어 일주일 동안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대구에서 열린 수필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집에 돌아와서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힘이 없어졌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길을 걸어갈 마음이 있는지 등 자신의 방향성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평소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전쟁과 기아 같은 생명에 위험을 주는 일이 없는 한, 하루를 만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더 행복해진다. -그런 내가 왜? 며칠 동안 예전처럼 살려고 했지만 못했고, 결국 생산적인 활동을 다 포기해 4~5일 완전한 휴식기간을 보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번아웃 상태가 될 때는 쉬고 싶다고 몸과 마음이 내놓고 있는 신호이다. 그럴 때 정답은 단 하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며칠 동안 평상시처럼 생활하려고 발버둥을 친 이유는 바로 초조감이며, 이 상황이 언제
보통의 하루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커피대신 보리차를 마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음료가 진열되어 있는 쇼케이스로 다가가 1+1 행사 중인 보리차를 꺼내 들고는 계산대에 있는 점원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2000원입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딸랑” 소리와 함께 나는 편의점을 나선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처음 하는 일중 하나는 편의점에 들러 습관처럼 보리차를 마시는 일이다. 간혹, 달달한 무언가가 끌릴 때면 포장된 바나나를 사서 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보통의 하루가 시작된다. 편의점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 너무나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의 한 장면이다. 며칠 전,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 한 마리가 길거리에 늘어진 모습을 보았다. ‘좋은 곳으로 가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잠시지만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잔잔한 아침에 찾아온 불편한 장면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는데, 보통의 하루에 상처가 생긴 기분이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5에‘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키워드가 있다. 과거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였다면, 아보하는
단순함이 필요할 때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삶의 모습이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어느 날 평소 존경하는 어느 작가님이 보내주신 문자를 몇 번이고 음미하며 읽는다. 그 이유는 “단순”, “쓸데없는 일”이라는 글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며칠 전 일이 문득 생각나서다. 그날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며 끈질기게 머물러있던 여름이 거센 비와 함께 물러가고, 가을이 재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산을 찾은 날이기도 하다. 아직 단풍이 물들 때는 아닌지 초록 나뭇잎들이 햇살을 잘게 부수며 빛나고, 스치는 바람의 서늘함에 가을이 배어있다. 산속으로 접어들자 툭툭 소리를 내며 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진다. 밤송이는 이맘때 산을 찾는 이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산길을 걷던 우리 일행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밤과 알이 그대로 들어있는 밤송이를 발견하고 환호한다. 처음은 산행 중에 만나는 소소한 재미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떨어진 밤송이는 많아지고 크기도 제법 굵었다. 사람 마음이란 그런 것인지 양과 질이 좋
가을을 채우는 높이 ‘오늘은 어떤 커피를 마실까?’ 출근길, 잠시 고민해 본다. 커피 생각을 하며 버스 안에서 바라본 초록색 가로수의 잎에 아직도 여름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틀렸음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스치며 흐르는 시원한 공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눈에 담기고, 피부로 느껴지는 자연은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출근길 고민은 코스타리카 아끼아레스 지역 1,200m에서 재배된 커피를 마시며 끝이 난다. 체리와 같은 산미, 캐러멜의 단맛이 입안으로 퍼지는 사이, 내일의 휴일을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반복되는 수업과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개천절, 모처럼의 휴일에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생각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파란 하늘에 찰나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챙겨 신고 청계산의 가을 속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산에 도착하고 나에게 가장 먼저 한 말. “힘들다고 중간에 내려오지 말고 정상까지 꼭 올라가자!”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다부진 결심을 하니 산에 오르는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진다. 의욕만큼이나 빨라진 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발바닥에 닿는 땅의
양보는 패배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나 동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은 ‘저 사람이 OOO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에서 ‘히토노 후리 미테 와가 후리 나오세(人の振り見て我が振り直せ)'라는 속담이 있다. 남(히토)의 행동(후리)를 보고 내 행동(와가 후리)을 고쳐라(나오세), 즉,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반성해야 하는 부분은 고쳐라,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시 자신을 반성하라는 뜻이다. 타인을 변화시키기보다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위험하지 않다고 명저 《인간관계론》안에서 데일 카네기도 말한다. 자신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해 자신을 개선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은 우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미국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도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에서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