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커피대신 보리차를 마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음료가 진열되어 있는 쇼케이스로 다가가 1+1 행사 중인 보리차를 꺼내 들고는 계산대에 있는 점원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2000원입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딸랑” 소리와 함께 나는 편의점을 나선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처음 하는 일중 하나는 편의점에 들러 습관처럼 보리차를 마시는 일이다. 간혹, 달달한 무언가가 끌릴 때면 포장된 바나나를 사서 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보통의 하루가 시작된다. 편의점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 너무나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의 한 장면이다. 며칠 전,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 한 마리가 길거리에 늘어진 모습을 보았다. ‘좋은 곳으로 가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잠시지만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잔잔한 아침에 찾아온 불편한 장면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는데, 보통의 하루에 상처가 생긴 기분이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5에‘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키워드가 있다. 과거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였다면, 아보하는
단순함이 필요할 때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삶의 모습이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어느 날 평소 존경하는 어느 작가님이 보내주신 문자를 몇 번이고 음미하며 읽는다. 그 이유는 “단순”, “쓸데없는 일”이라는 글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며칠 전 일이 문득 생각나서다. 그날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며 끈질기게 머물러있던 여름이 거센 비와 함께 물러가고, 가을이 재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산을 찾은 날이기도 하다. 아직 단풍이 물들 때는 아닌지 초록 나뭇잎들이 햇살을 잘게 부수며 빛나고, 스치는 바람의 서늘함에 가을이 배어있다. 산속으로 접어들자 툭툭 소리를 내며 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진다. 밤송이는 이맘때 산을 찾는 이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산길을 걷던 우리 일행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밤과 알이 그대로 들어있는 밤송이를 발견하고 환호한다. 처음은 산행 중에 만나는 소소한 재미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떨어진 밤송이는 많아지고 크기도 제법 굵었다. 사람 마음이란 그런 것인지 양과 질이 좋
가을을 채우는 높이 ‘오늘은 어떤 커피를 마실까?’ 출근길, 잠시 고민해 본다. 커피 생각을 하며 버스 안에서 바라본 초록색 가로수의 잎에 아직도 여름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틀렸음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스치며 흐르는 시원한 공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눈에 담기고, 피부로 느껴지는 자연은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출근길 고민은 코스타리카 아끼아레스 지역 1,200m에서 재배된 커피를 마시며 끝이 난다. 체리와 같은 산미, 캐러멜의 단맛이 입안으로 퍼지는 사이, 내일의 휴일을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반복되는 수업과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개천절, 모처럼의 휴일에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생각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파란 하늘에 찰나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챙겨 신고 청계산의 가을 속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산에 도착하고 나에게 가장 먼저 한 말. “힘들다고 중간에 내려오지 말고 정상까지 꼭 올라가자!”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다부진 결심을 하니 산에 오르는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진다. 의욕만큼이나 빨라진 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발바닥에 닿는 땅의
양보는 패배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나 동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은 ‘저 사람이 OOO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에서 ‘히토노 후리 미테 와가 후리 나오세(人の振り見て我が振り直せ)'라는 속담이 있다. 남(히토)의 행동(후리)를 보고 내 행동(와가 후리)을 고쳐라(나오세), 즉,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반성해야 하는 부분은 고쳐라,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시 자신을 반성하라는 뜻이다. 타인을 변화시키기보다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위험하지 않다고 명저 《인간관계론》안에서 데일 카네기도 말한다. 자신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해 자신을 개선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은 우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미국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도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에서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
빗속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용기 “지금은 나갈 수 없을 것 같은데..” “비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있어.” “택시를 부를까?” 건물을 나서려는데, 학생들이 입구에서 서성인다. 교육 중이라 몰랐는데, 점심까지는 괜찮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섭게 쏟아지는 비로 학생들은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비바람이 잦아들기만을 바랬다. 나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 지금 저 문을 열고 나갔다가는 어떤 상태가 될지 눈앞에 그려졌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그래도 내가 먼저 나서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한발 나섰지만, 장대비에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3단 우산을 핑계 대며 다시금 뒤로 물러섰다. “두두두두두두..............”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여전했고, 시간은 10여 분이 흘렀다. 몇몇 학생들이 더 이상 늦으면 안 되는 약속이 있는지, 바지를 걷어붙이고 빗길로 걸어갔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학생은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감싸고 맨몸으로 빗속에 몸을 던졌다. 빗속의 모습들이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 학생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빗줄기가 잦아들자, 나 역시 용기 내어 우산을 펼쳤다. 차가
말이 가지는 힘 얼마 전, 지인에게 선물 받은 장미 몇 송이를 유리병에 꽂아 식탁 위에 올려둔 날. 늦은 저녁, 학원을 다녀온 아이가 발견하고는 환한 얼굴로 말한다. "엄마, 꽃도 잠을 잔대. 신기하지?" "와 정말? 잠도 잔대? 엄마는 사랑해, 미워해 말하면 알아듣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러자 아이가 장미 가까이 다가가, "사랑해. 사랑해"라고 속삭이더니 나를 보며 웃는다. "식물 역시 사람처럼 높은 의식은 아니지만, 의식이 있대. 그래서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더라. 사랑과 관심을 받은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러니까 식물에도 사람에게도 좋은 말을 많이 해주자.”라고 말을 하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식물은 적대적인 생각 같은 구체적인 위험에도 반응하지만 좋은 감정에도 무심하지 않다. <중략> 날이 갈수록 욕설을 들은 식물은 눈에 띄게 시들어갔고, 반면에 칭찬을 들은 식물은 크기와 건강미가 열 배로 돋보였다. - 식물의 은밀한 감정, 디디에르 반 코웰레르 어디 식물뿐이겠는가? 사람은 식물보다 훨씬 섬세하고 민감한 감정까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나
매일 닦아내는 것들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말로 가득했던 강의실은 얼음이 떨어지는 제빙기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강의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듯, 수강생들이 사용한 저울을 테이블 아래에 내려놓으며 마감 청소를 시작한다. 에스프레소 머신 청소는 잘 되어있는지, 사용했던 기물은 제자리에 잘 놓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에스프레소머신 위에 접혀 있는 린넨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옮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린넨을 집어 든다. 멈추어진 발걸음과 함께 마감 청소를 잠시 멈추고, 누가 놓고 간 것인지 수업시간 수강생들이 앉았던 자리를 떠올린다. 바리스타 수업을 들으면 가장 먼저 준비하게 되는 린넨과 행주. 수업시간, 가방에서 린넨과 행주를 꺼내는 수강생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대부분 처음엔 비닐봉지에 넣어 가방 안에 조심스레 가져오지만, 수업 회차가 진행되면 린넨과 행주를 가져오는 모습은 각기 달라진다. 가방에 돌돌 만 린넨과 행주를 꺼내는 수강생, 호주머니에 꾸깃꾸깃 넣어 가져오는 수강생, 수업 후 빨지 않은 채 커피 얼룩과 물기가 그대로인 상태로 가져오는 수강생, 깨끗하게 빨아 비닐봉지에 넣어 오는 수강생. 수강생들에게는 시험을 준비
충전과 감사의 시간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 넓게 펼쳐진 그 끝에 둥글고 커다란 달이 걸려있다. “세상에. 저렇게 큰 달이! 슈퍼 문이네.” 수많은 사람이 달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추석(秋夕). 가을 달빛이 좋은 밤이라고 하던데, 유난히도 밝고 큰 달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뜻이 가슴으로 와닿는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선선한 가을날의 추석을 맞이하진 못했지만, 하늘을 가득 채운 달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넉넉해지는 듯하다. 두 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보름달. 무엇을 빌어도 이루어지게 해줄 것 같은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과거 조상들이 풍성하게 차오른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가을의 수확에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추석 명절이 되면, 부모님의 고향을 찾고, 성묘를 갔었다. 그리고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을 견디며, 명절 연휴를 보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번거롭게 여겨지는 형식들은 줄이고 간소하게 명절을 보내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추석의 의미는 그대로인 듯하다. 가족과 함께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등 추석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소중한 시간이다
가장 소중한 선물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에어컨인 것 같다고 했을 때, ”뭐 그렇게까지.”라며 흘려들었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여름이다. 이 끔찍한 더위에 에어컨에서 쏟아지는 냉기는 가뭄에 단비처럼 반갑지만, 쉬지 않고 윙윙대는 소리는 늘 귀에 거슬린다. 어느 날 에어컨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다. 시끄럽고 귀찮은 것이란 마음을 내려놓고 소리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러자 그때부터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나름의 리듬이 느껴지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때는 마음으로만 듣지 말고 몸 전체로 들으십시오. <중략> 그러면 생각으로부터 주의력이 돌려져서 마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정으로 들을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문득, "나는 과연 어떻게 듣고 있지? 집중해서 듣고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듣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함께 모여 낭독 독서를 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나는, 그날도 다
국가대표는 누구일까? 커피를 접하기 전에는 커피의 세계에도 대회가 있고, 국가 대표가 있고, 월드 챔피언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올림픽에서 종목마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나와 메달을 위한 치열한 경기를 하듯, 커피에도 그런 대회가 매년 있다. KBrC(브루어스 컵), KCIGS(커피 인 굿 스피릿), KCRC(커피로스팅 챔피언십), KCTC(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KLAC(라떼아트), KNBC(바리스타) 가 그러한 대회이다. 각 국가에서 열리는 이러한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면 국가대표 자격으로 월드 챔피언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KBrC :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 중 브루잉을 통해 추출하는 대회 KCIGS : 커피와 스피릿(알콜)이 만나는 커피 칵테일 대회 KCRC : 로스터기로 최고 품질의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기술을 볼 수 있는 대회 KCTC : 서로 다른 커피를 빠른 시간 안에 기술적으로 골라내는 대회 KLAC : 라떼아트를 통해 커피의 예술적인 표현을 강조하고 이를 알리는 대회 KNBC :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열정과 연결성을 찾아 에스프레소, 우유 음료, 창작 메뉴를 제공하는 대회로 바리스타의 프레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