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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8 (화)

임지윤 작가 에세이

최고의 선물, 우롱차와 커피 그 사이


커피를 하면서 나는 나름의 지론이 있다. 한 달이란 기간이 있다면, 일주일 정도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기간을 두어 혀에 닿는 음식과 음료의 자극을 줄이려 노력한다.

 

햇빛이 방 안 깊숙이 들어오는 휴일 오후, 책상 위 노트북을 펼치고 습관처럼 원두 봉투로 향하던 손이 멈춘다. 며칠 전 지인에게 받은 차로 눈길이 향한다. 알록달록 고운 티백들 사이에서 우롱차 티백을 하나 집어 든다. 눈으로 읽힌 단어를 소리로 바꾸어 본다. “우롱티.” 장난을 치듯 티백을 보며 “우롱? 뭘 우롱 허니?”하고 말하며 뒷면을 살핀다. 90°C의 물에 2분간 우리라는 추출 가이드가 적혀 있다.

 

차를 우리려 드립포트에 물을 받는다.

투명하게 드립포트 안을 채워가는 물을 보니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그래서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툼이 없으며, 담기는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는 물.

 

 

오늘은 그러한 물과 같은 우롱차 한 잔을 우리려 한다.

 

우롱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갖는 차이다. 부분 발효(Partial Fermentation) 혹은 부분 산화(Partial Oxidation)라고 불리는 이 과정에 따라 우롱차는 녹차처럼 가볍기도 하고, 홍차처럼 깊고 무거워지기도 한다. 우롱차의 향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발효 정도다. 이러한 우롱차의 부분 발효 과정은 커피의 가공방식 중 허니 프로세싱(Honey Processing)을 떠올리게 한다.

 

허니 프로세싱(Honey Processing)은 커피 체리의 점액질(Mucilage)의 일부를 남긴 채 건조하는 가공 방식을 말한다. 원래 브라질에서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이라 불리며 사용되었던 가공 방식이었지만, 코스타리카에서 점액질의 잔여량을 달리하는 허니 프로세싱의 형태로 발전이 되었다. 점액질의 양에 따라 허니 프로세싱은 세분화된다.

 

점액질의 양이 10~20% 남겨진 화이트 허니(White Honey), 20~40%는 옐로우 허니(Yellow Honey), 40~60%인 레드 허니(Red Honey), 60~80%는 블랙 허니(Black Honey)로 나누어진다.

점액질의 잔여량에 따라 커피의 향미도 달라진다. 점액질이 거의 제거된 화이트 허니는 깔끔하고 가벼운 바디감과 밝은 산미를 지닌다. 옐로우 허니는 단맛과 산미의 균형이 잘 맞고, 레드 허니는 숙성된 과일의 향미와 풍부한 바디감을 지닌다. 점액질이 많은 블랙 허니는 단맛이 강하고 묵직한 바디가 특징이다.

 

우롱차가 녹차와 홍차의 중간 단계에서 발효 정도에 따라 향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허니 프로세싱도 점액질의 양에 따라 다양한 향미를 갖게 된다. 점액질이 거의 제거된 화이트 허니는 워시드 가공된 커피와 비슷한 깔끔한 향미, 점액질이 많이 남은 블랙 허니는 내추럴 가공 커피와 유사한 풍성한 향미를 띤다.

2010년대에 들어 허니 프로세싱은 점액질의 양에 따라 더욱 세분화되고, COE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브라질, 에티오피아 등 여러 커피 생산국에서도 허니 프로세싱을 적용하여 더욱 다양한 향미의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커피의 가공방식 중 허니 프로세싱과 닮아있는 우롱차를 마시며 커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차의 향미를 음미한다. 커피와 차는 참으로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공 과정에서의 세심한 조절, 발효에 따른 향미의 변화,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미묘한 밸런스까지. 커피든 차든, 발효가 잘 되고, 가공 과정에 정성이 깃들어야 좋은 향미를 가질 수 있다는 본질 말이다.

 

그러한 정성이 깃든 향미가 서서히 컵 안에 퍼진다.

차가 우러나며 서서히 퍼지는 느낌은 어쩌면 자신을 낮추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주는 편안함 자체인지 모른다. 은은한 우롱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을 집중해 본다.

 

높은 곳을 지향하되 낮은 곳에 머물 줄 아는 힘,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상황과 환경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화될 수 있는 유연한 삶, 타인을 돕되 내세우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삶의 자세.

 

사람도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도가(道家)의 철학을 담고 있는 최고의 선(善)인 물,

우롱차의 은은한 향미를 품은 물 한 잔을 나에게 선물해 본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