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즉,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이루려 함인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갖은 애를 쓴다. 얼마 전 강원도 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되었을 때 불길이 얼마나 거셌던지 보물 제 479호 범종도 녹아버렸고 이를 복원하는 과정 중에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이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바람에 세인(世人)의 지탄을 받았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어디를 가든지 열녀문(烈女門)이나 송덕비(頌德碑) 공적비(功績碑) 같은 비석들이 있고 아무개 국회의원이 아무개 군수가 무엇을 지었다느니 길을 냈다느니 하는 치적 자랑이 있다. 그래도 그건 봐줄만 한데 이름난 유적지나 관광지에도 볼썽사나운 낙서들이 있다. 이는 단지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나라 망신도 시킨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고 인류의 공통된 욕망이다. 핀란드의 헬싱키 마켓광장에 가면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동상이 있다. 커이젤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제법 위엄 있게 광장을 굽어보고 있다. 오랫동안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중 알렉산드르 2세가 핀란드의 자치령을 인정해 주었다는 공로로 이 동상을 세웠다는데 역사야 어떻든 그는 머리와 어깨에 비둘기 똥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금강산의 옥류동 계곡에 이름을 새겨놓았던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묵객들도 그들의 영화와 함께 물 따라 흘러가 버렸듯이 알렉산드르 2세도 새똥에 묻혀 있다.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일은 덧없는 일이다.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는 그 유명한 ‘피에타’라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를 무릎에 뉘어 놓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관람객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지만 <피에타>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서기 전 ‘산타 페트로닐라 소 성당에서 처음으로 공개 되었었다. 그때만 해도 미켈란젤로가 유명해지기 전이었고 또 서명이 없어서 사람들은 당시 로마에서 유명한 밀라노 출신의 조각가 ’일 고보 (Il Gòbbo)’ 의 작품일 거라고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밤에 몰래 성당으로 가서 성모의 가슴부분을 사선으로 두른 띠에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조각하다. (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이라는 서명을 새겼다. 그러나 밤에 몰래 급하게 작업하느라 “ANGELVS”를 'AGLVS'라고 잘못 새겼다가 'G' 안쪽에 'E'를 작게 새겼고 ‘N’은 아예 빠뜨리는 실수를 했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에 서명을 남긴 후 성당을 빠져나오면서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방금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후회했다.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신 하느님은 당신의 작품 어디에도 당신의 서명을 넣지 않았는데 ! ’ 자신은 그리 크지 않는 조각 하나에 서명을 하겠다고 밤중에 이러는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 다시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넣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내가 근무하던 경기도의 소도시에는 오랫동안 두 사람이 번갈아 시장을 했다. 새로운 시장이 당선 되면 전임자가 설치해 놓은 모든 것들 간판이든 벽화든 어떤 구조물도 전부 철거하고 새로운 구호를 새긴다. 또 새로운 사람이 당선되면 이전 것을 전부 복원한다. 다음 사람은 다시 복원을 하고 다음에는 다시 복원을 한다. 도시의 발전 보다는 자신의 흔적 남기기에 열심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예산이 국민들의 세금이 탕진이 되었을까! 과거 우리의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유학파가 교육부 수장이 되면 영국식 교육을 도입하고 독일 유학파가 그 자리에 앉으면 독일식을 도입하니 정작 우리 아이들은 실험대상이 되곤 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하면 누가 이어받더라도 시행착오 없이 중단 없는 전진을 해야 한다. 그것이 어찌 교육 분야에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자기가 한 일은 자신의 서명과 같아서 훌륭하게 한 만큼 이름도 빛난다. 모름지기 지도자들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이름을 남기려 애쓰지 말고 본분에 힘써야 할 일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