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물, 우롱차와 커피 그 사이 커피를 하면서 나는 나름의 지론이 있다. 한 달이란 기간이 있다면, 일주일 정도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기간을 두어 혀에 닿는 음식과 음료의 자극을 줄이려 노력한다. 햇빛이 방 안 깊숙이 들어오는 휴일 오후, 책상 위 노트북을 펼치고 습관처럼 원두 봉투로 향하던 손이 멈춘다. 며칠 전 지인에게 받은 차로 눈길이 향한다. 알록달록 고운 티백들 사이에서 우롱차 티백을 하나 집어 든다. 눈으로 읽힌 단어를 소리로 바꾸어 본다. “우롱티.” 장난을 치듯 티백을 보며 “우롱? 뭘 우롱 허니?”하고 말하며 뒷면을 살핀다. 90°C의 물에 2분간 우리라는 추출 가이드가 적혀 있다. 차를 우리려 드립포트에 물을 받는다. 투명하게 드립포트 안을 채워가는 물을 보니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그래서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툼이 없으며, 담기는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는 물. 오늘은 그러한 물과 같은 우롱차 한 잔을 우리려 한다. 우롱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갖는 차이다. 부분 발효(
에스프레소를 닮은 말 3월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는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에 머무른듯하다. 두꺼운 겨울 외투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고개를 푹 숙여 옷깃 속에 얼굴을 파묻고 걷는다. 호주머니 속 핸드폰이 짧게 진동한다.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문장 속 마침표와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오늘은 꼭 택시타고 출근해요. 몸 안 좋을 때 무리하지 말고 추운데 따뜻하게 가요.”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 열과 기침에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지던 주말 아침 출근길. 아프다는 말에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걱정하던 분, 택시비와 함께 온기를 전해주는 듯한 따스한 말에 코끝은 찡해진다. 그리고 눈물이 뚝 떨어진다. 그의 말은 그가 평소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와 닮아 있다. 적당한 압력과 시간으로 부드러운 크레마층 아래 가둬둔 은은한 향기와 깊은 단맛이 있는 따뜻한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에서만 볼 수 있는 크레마(Crema)층은 이산화탄소(CO₂), 지방, 단백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갈색의 거품층이다. 생두가 로스팅되면 원두 안에 이산화탄소가 생기게 되고, 원두 안에 있던 이산화탄소가
버킷 리스트 삶은 경험해 본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나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최근 본 영상에서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버킷리스트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우리 저녁엔 치킨 시켜 먹을까?”하는 약속을 하고 출근했던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그날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삶은 살아가야 한다는 사연자의 말은 마음 한편에 큰 울림을 주었다. 보통 버킷 리스트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 꼭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영상 속 이야기의 울림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삶의 태도로 이어졌다. 그리움이 가득한 삶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는 메세지는 이미 버킷 리스트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루하루 삶이 꿈이고 순간순간 숨 쉬는 일이 기적이고 내가 누구를 그리워하고 누군가 나를 생각함이 이미 버킷 리스트 그것인데 어찌 또 버킷 리스트가 있을까요? ‘버킷 리스트’ 나태주 시인의 시로 쓴 버킷 리스트의 내용 중에서 특히, ‘하루하루 삶이 꿈’이라는 구절이
웃기게 살고 싶어! 아주 오래전, 누군가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때 나는 망설임 없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난 웃기게 살고 싶어요.” ‘웃기게’란 말이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 다른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싶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삶을 대하는 내 태도가 너무 진지하고 무겁지 않게, 어쩌면 희극처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의미였을까?. 그때는 막연히 ‘웃기게 살고 싶다.’라는 한 문장이 나의 머리에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웃으며 살고 싶다고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웃으며’가 아니라 난 웃기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그럼 웃음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그 후로 다시 누군가와 그런 얘기를 해 본 적도 없었지만, 가끔 나는 ‘웃기게 살고 싶다.’라는 그 말을 생각한다. 동사 ‘웃기다’는 ‘누군가를 웃게 만들다’라는 뜻도 있지만, ‘한심하고 기가 막히게 보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웃기고 싶었던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었다. 또한, 누군가에겐 자칫 어설퍼 보이고 부족해 보여 답답하게 느껴질 테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삶이 엉성해서 더 좋았다. 여기저기 빈 구석이 많은
커피를 닮은 뱅쇼 차가운 겨울바람이 잠잠해지자 독감은 아닐지라도 감기에 걸리는 수강생들이 늘었다. 커피의 향미를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 수업, “콜록, 콜록” 기침을 하는 수강생들이 코가 막혀 향이 느껴지지 않고, 어떤 맛인지 알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후각과 미각을 이용해 커피를 해석해야 하는 수업에서 코가 막혀 향과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그 답답함이 어떠할지 헤아려진다. 느껴진 향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목소리 대신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 오늘은 커피보다 따뜻한 뱅쇼 한 잔을 건네주고 싶은 날이다. 뱅쇼(Vin Chaud)는 프랑스어로 ‘따뜻한 와인’이라는 의미가 있는 음료이다. 중세 유럽 귀족들이 와인에 정향, 계피와 같은 향신료를 넣어 겨울에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음료였다. 이러한 음료가 프랑스에서 레드와인에 오렌지, 레몬과 같은 과일들, 계피, 정향 같은 향신료, 설탕이나 꿀을 넣어 끓이는 방식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의 뱅쇼가 되었다. 레드와인은 혈액순환을 돕고, 계피와 정향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겨울철 감기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의 재료가 되는 포도는 커피에서도 자주 쓰이는 플래이버 노트(flavor note
낯선 곳에서 만난 새로움 ‘계단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 30개가 넘는 계단을 모두 올랐다고 안도할 즈음, 다시 시작된 계단을 보며, 숨이 턱 막힌다. 계단 옆을 보니, 모노레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 같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어서인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차가운 날씨에도 땀에 젖은 옷을 뒤적거리며 올라탔다. ‘역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배려를 하고 있었군.’하는 마음과 함께, 모노레일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아찔한 감정을 느끼며 최종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 펼쳐진 광경을 보며 새삼 놀랐다. 그곳은 수많은 집이 켜켜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발아래에 펼쳐진 도시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파란 하늘과 바다가 펼쳐진 부산 중구는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생명 같았다. 이곳의 풍경은 단순히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중구는 계단이 많은 도시이다. 지리적으로 그러한 모습이 되었겠지만,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이었으리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지역의 주민들도 많았지만 관광을 온 외국
번쩍하는 순간 그런 날이 있다.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 잊고 있었던 노래의 멜로디, 그도 아니면 예전에 읽었던 책의 제목이, 시간을 거슬러 홀린 듯이 떠오르는 그런 날. 며칠 전 성석제의 소설집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2003년)이 그랬다. 번개가 치듯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맞아. 나한테 그 책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퍼뜩 지나간 것이다. 오랜 세월 책꽂이를 지키고 있었건만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지다 내 손에 다시 들려지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소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시종일관 미소와 깔깔거리는 웃음을 준비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작가가 그 당시 세태를 풍자한 글들을 읽다 보면 답답함을 느끼기보다 한바탕 웃게 되고, 한심해야 하는데 깔깔거리게 된다. 책에 실린 단편 <누가 염소의 목에 방울을 달았는가>에서는 불법 사냥을 천연덕스럽게 비꼬는데, 알량한 인간 심리에 쿡쿡 웃음이 터지면서도 글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시베리아에서 곰 잡던 시절>은 또 어떤가? 한때 곰의 쓸개가 몸에 좋다며 해외에서 불법으로 들여온다는 뉴스가 한창 오르내리던 게 기억난다. 국가적 망신이니 뭐니
지금. 넘어서는 힘 냉기가 흐르는 차 안에 앉아 시동을 건다. 시동이 걸리는 순간, ‘오늘도 무사하길.’ 하는 마음을 빌어보며, 운전대에 손을 올린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할 수 있지만, 아직도 운전대를 잡는 것이 낯설다. 내가 느낀 운전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을 넘어서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아주 고도의 기술 같았다. 신호등, 보행자를 살펴야 했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나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차들에 놀라며, ‘운전을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은 처음인데’ 빗길을 달리는 동안, 정말 여러 번 마음속으로 빌었던 것 같다. ‘브레이크를 잘 밟는 것이 중요할 거야.’ 여러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이토록, 무엇인가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넘어서는 힘이 필요할까?” 지금 나에게 운전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삶의 여러 상황에서 마주하는 도전과도 같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불편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파요 “강사님! 라이트 로스팅이 된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플 수도 있다는데 정말이에요?” 퇴직을 앞두고 커피 공부를 시작한 그녀, 그와의 첫 만남은 커피가 아닌 카페레시피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녀 앞에서 수업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던 첫 기억,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걱정을 서서히 불식시키고 있었다. 배우는 것을 즐기고,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누며,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커피와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 카톡으로 물어 오는 그녀의 질문에 TV로 향했던 나의 시선을 옮겨 질문을 다시 읽어본다. 라떼를 마시고 배가 아팠다는 경험은 수강생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었지만, 라이트 로스팅 된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플 수 있는지 묻는 건 처음이다. ‘라이트 로스팅된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프다?’ ‘로스팅으로 생성되는 화학 성분들과 복통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나에게 속으로 질문해본다. 라떼를 마시면 배가 아픈 이유는 우유에 있는 유당과 관련이 있다. 사람에 따라 락타아제라는 효소가 부족할 경우, 제대로 분해가 되지 않은 유당이 대장에서 발
공간을 채우는 에스프레소 한 잔 비어있는 강의실에 들어간다. 에스프레소 머신 워머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빈 잔에 눈이 머문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강의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하얀 잔. 워머 위, 컵을 바라본다. 매끄러운 도자기 감촉과 함께 텅 비어있는 컵 안이 눈에 들어온다. 빈 잔을 보니 설 연휴 마지막 날의 아침이 떠오른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눈을 뜨고, 마주한 시공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었다.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 이어폰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며칠 전부터 내린 눈 위로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인다. 허전해 보이던 눈길이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채워지고, 그 발자국 위로 내 발자국을 더한다.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빠른 음악에 맞춰 걷다 문득, 나무 아래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이 시야에 들어온다. 발걸음을 나무로 옮긴 후, 웅크리고 앉아 눈을 자세히 바라본다. 멀리에서 보면 공간 없이 꽉 찬듯했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듬성듬성 눈 사이 공간투성이다. 크기도 조금씩 다르다. 작은 눈들이 쌓여있는 입도를 보니 꼭 에스프레소용 원두가루를 바라보는 듯하다. 원두가루 입도(Particle Size Distri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