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결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기억이 그렇다. 남들은 유년이 그립다느니 다시 돌아가고 싶다느니 하지만 내가 유년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은 4학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담임 선생님이 결코 원하는 반장이 아니었다. 3학년 까지는 저학년이라 담임 선생님이 직접 임명을 하셨지만 4학년부터는 소위 고학년이라 하여 학급 회의에서 직선제로 뽑았다. 우리 반에는 선생님께서 내심 점찍어 놓으신 아이가 있었는데 눈치 없는 친구들이 나를 반장으로 선출을 했고 더구나 나는 지극히 내성적인 데다가 통솔력도 부족한 아이였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은 도회지에 있는 큰 학교에서 오셨다. 선생님은 정년을 앞둔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이었는데 수업도 주로 앉아서 하셨다. 그리고 전에 근무하시던 학교를 늘 그리워하셨다. 우리학교는 시골에 있고 규모도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야무지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엄마는 시골에서 볼 수 없는 멋쟁이였다. 파란 바탕에 하얀 땡땡이가 있는 원피스에 화사한 파라솔을 쓰고 종종 선생님께 인사를 왔다. 일 년 내내 머리에 수건을 쓰고 농사일이 바빠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않는 우리 엄마와는 비교도 안 되었다. 선생님은 내심 그 친구가 반장이 되기를 바라셨는데 눈치 없는 아이들이 나를 반장으로 뽑아 버렸고 그때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침자습 통제 미숙으로 꾸지람을 듣기 시작하여 청소 불량으로 혼나며 막을 내리 기까지 하루 일과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시간은 체육시간으로, 그 중에서도 줄지어 운동장을 행진 하는 이른 바 제식훈련이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행렬을 보며 선생님은 모든 책임을 앞장 선 반장의 바르지 못한 걸음 탓으로 돌리셨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고 발밑을 똑바로 보며 바로 걸으려 해도 어느새 줄은 꾸불거리게 되고 선생님의 불호령은 나를 기죽게 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똑바로 걸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고 야단과 함께 때리기만 하셨다. 때로는 따귀를 때로는 대나무 막대기로 때리셨다. 한 번은 쪼개진 대나무에 의해 귀가 찢어지기도 했다.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드디어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거들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4학년 어린애가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겠다는 가당치 않은 말에 한참동안 담배만 피우시더니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쟁기질을 배우던 당신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소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가게 되면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밭이랑이 엉망이 되곤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소를 보지 말고 건너편 밭둑의 돌멩이든 풀포기든 목표를 정하고 그리로 소를 몰아가라고 하셨고 정말 이랑이 점점 바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씀을 깨달은 나는 행진할 때 되도록 발밑을 보지 않고 고개를 들어 운동장 건너편의 포플러나무에 시선을 고정시킨 다음 똑바로 걸으려 애를 썼다. 국졸에 농사꾼인 아버지 덕분에 드디어 힘들었던 4학년을 무사히 통과했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개를 들고 목표를 향해 걷는 것이었다. 훗날 알게 된 것이지만 사람이 발밑을 보며 똑바로 걸으려 해도 오른 발과 왼발의 힘이 다르기 때문에 똑바로 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자기장과 중력 때문이라고도 했다.
아무튼 이때의 경험은 인생을 사는 데도 많은 유익이 되었다. 인생을 똑바로 살려고 해도 삶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자신의 포플러가 필요하다. 그것이 종교가 됐든 가족이 됐든 철학이나 신념이 됐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 함께 흔들리거나 부침(浮沈)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히 12:2, 3)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