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허무는 '남녀공학', 생존을 넘어 미래 교육의 길로 나아가길!

  • 등록 2026.04.11 15: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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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아일보의 보도(2026.4.7.)는 우리 교육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6년 전통의 여고도, 92년 된 남중도 못 피해간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기사의 충격에서 연유한다. 이는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를 피하지 못하는 소식이다. 작년 에만 무려 전국적으로 32개교가 성별의 벽을 허물었다. 이를 두고 교육계에서는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고사(枯死) 방지책’이라거나, 고교학점제 아래서 내신 등급 확보를 위한 ‘학생 수 늘리기’라는 실용적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남녀공학 전환을 단순한 ‘인구학적 생존 전략’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교육적 함의가 크다. 이제 우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관성에서 벗어나, 남녀공학이 미래 세대에게 제공할 ‘교육적 효능감’과 ‘민주 시민 육성’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즉, 80~90년 전통의 명예보다 소중한 ‘공존의 학습권’과 ‘민주 시민의 요람’에 대한 교육적 사명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흐름은 ​남학생은 남학교를 선호하고, 동문회는 모교의 정체성이 훼손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교실 안의 모습은 달라져야 한다. 작년에 이어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 2026년 현재,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권리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단성(單性) 학교의 적은 학생 수로는 심화 선택 과목을 개설하기조차 버겁다는 것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사례: ‘물리학Ⅱ’와 ‘세계사’의 부활>: 학생 수가 적어 폐강 위기에 몰렸던 소수 선택 과목들이 남녀공학 전환 후 적정 인원을 확보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증가가 아니다. 남녀가 서로 다른 시각으로 문학을 논하고,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며 얻는 인지적 욕구는 단성 학교가 결코 제공할 수 없는 다양성의 혜택이다. 교육의 효능감은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의 사고 과정을 목격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는 지식을 전수하는 곳인 동시에, 민주 시민의 요람이자 사회의 축소판이다. 곧 민주 시민으로서의 삶을 훈련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 또한 남녀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사회성이 발달하는 청소년기에 성별로 칸막이를 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공학으로의 전환은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 관리와 협업의 기술을 위해 긍정적이다. 남녀공학 교실은 그 자체로 작은 사회다.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축제를 기획하며 남녀 학생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는 훗날 직장과 가정에서 발휘할 ‘공존의 지성’을 기르는 가장 획기적인 실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집중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의 자연스러운 체득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억지로 주입하는 성평등 교육보다 강력한 것은 일상 속의 만남이다. 서로를 경쟁자나 환상 속의 타자가 아닌,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동료로 인식할 때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민주 시민의 핵심 덕목인 ‘배려’와 ‘나눔’ 그리고 ‘섬김’은 분리된 공간이 아닌, 섞인 공간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에서 보면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공학 전환 학교에 최대 3억 원을 지원하며 시설 개선에 나서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원은 예산의 규모보다 ‘전환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 있어야 한다. ​동문회와 일부 주민이 반대하는 ‘전통의 훼손’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한다. “진정한 전통은 학교 건물의 성별이라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얼마나 건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살아있는 혁신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90년 전 설립자가 가졌던 교육의 초심은 아이들이 시대의 역군으로 성장하는 것이었지, 특정 성별만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남녀공학 전환이 단순한 합병에 그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첫째, ​양성 평등적 커리큘럼의 재설계다. 교과 과정 전반에서 특정 성별에 치우치지 않는 사례를 발굴하고, 남녀 학생이 골고루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팀 기반 프로젝트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교사의 성인지 지도 역량 강화다. 단성 학교에 오래 근무했던 교사들이 공학 환경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연수와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공동체 대화 모델 구축이다. 반대하는 동문과 주민들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미래 교육의 설계자’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이제 남녀공학 전환이 지역 사회의 문화적 거점으로서 학교를 어떻게 재탄생시키는지 비전을 공유해야 할 적기라고 판단된다.

 

서두에서 밝힌 ​86년, 92년이라는 전통과 세월의 무게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무게가 아이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녀공학 전환은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가 우리에게 던진 ‘교육 본연의 가치 회복’이라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제 학교는 남과 여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시민들이 만나 서로를 섬기고 나누는 광장이 되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지원금보다 더 큰 가치는, 이 전환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나와 다른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사실이다.

 

해당 학교 ​동문의 자부심은 후배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유연한 지성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의미가 완성될 것이다. 2026년 현재, 전국 중고등학교 교정의 담장이 허물어진 그 자리에 미래 민주 시민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획기적인 미래 교육의 출발점이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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