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내내 비가와도 뛰어본 적이 없고 체육 시간에도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몽상(夢想)으로 일관하던 나는 군 입대를 했고 훈련을 마친 후에는 강원도의 철책까지 올라가 경계근무를 했다. 북녘 땅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첩첩 산중에 밤이면 사위가 고요하고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고참병들의 허풍까지 더해져 무척이나 무서웠다. 그 중에서도 철책선 안에 불타고 남은 나무 그루터기들은 사람처럼 느껴져서 머리털이 쭈뼛했고 자세히 응시하고 있으면 정말로 나를 향해 기어오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다. 낮에 보고 그것이 그루터기임을 알았지만 한 번 각인된 두려움은 밤만 되면 어김없이 나를 괴롭혔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첫 인상에 의한 선입견에 때문에 또는 한 번의 에피소드에 의해서 심겨진 우리의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거기에다 자신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전해들은 이야기나 풍문에 의해서도 이미지는 각인되고 그것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C. 융은 우리가 ‘집단무의식’이라고 부르는 ‘원형 (Archetype 原型)’을 이야기했고 이것은 유전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긍정적인 인식 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에 더 민감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시인 김용택의 시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진 소설이다. 마을에 같이 살던 곱단이와 만득이는 서로 풋풋한 사랑을 이어갔으나, 만득이가 징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고 곱단이는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산다는 어느 중년 남성과 강제로 결혼해서 마을을 뜨게 된다. 만득이는 해방 후 돌아와서 고향 마을의 순애라는 다른 처녀와 결혼해서 살게 된다. 그러나 순애는 남편 만득이의 마음속에 곱단이가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평생을 불행하게 살다가 죽는다. 그녀는 만득이와는 상관없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곱단이와 연관 지으며 혼자서 불행을 가꾼다.
진(晉)나라의 악광이 하남(河南) 태수로 재임할 때의 일이다. 악광에게는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악광에게 자주 놀러와 술자리를 같이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한동안 발걸음이 뜸해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악광은 몸소 친구에게 찾아가 보니 얼굴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요사이 어째서 놀러오지 않나?”라고 물으니 친구가 답했다. “전에 자네와 술을 마실 때 내 잔 속에 뱀이 보이지 않겠나(杯中蛇影). 그렇지만 자네가 무안해할지 몰라 할 수 없이 그냥 마신 이후 몸이 별로 좋지 않네.”
친구는 지난 날 악광의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술잔 속에 뱀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무안해 할까봐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돌아왔으나 그 역겨운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 일로 인하여 병이 생기고 몸이 수척해 졌다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악광은 지난번 술을 마신 그곳으로 다시 가보았다. 그 방의 벽에는 활이 걸려 있었다. 비로소 악광은 친구가 이야기한 뱀의 정체를 알았다. 친구의 술잔에 활이 비치었고 그것이 뱀과 흡사하게 보였던 것이었다. 악광은 친구를 다시 초대해 예전과 같은 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술을 따른 다음 “무엇이 보이지 않나”라고 물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뱀이 보이네.” 친구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그러자 악광이 웃으면서 “자네 술잔 속에 비친 뱀은 저 벽에 걸린 활의 그림자네”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활을 쳐다보는 순간 친구의 마음의 병은 씻은 듯 나았다. 중국 진(晉)나라의 기록을 담은 역사서 《진서(晉書)》 악광전에 나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존재하지도 않는 뱀 그림자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낸 적도 있고 다치지도 않은 상처를 피가 나도록 긁기도 한다. 단지 벽에 걸린 활인 것을 뱀이 될 때까지 머릿속에서 먹이를 준다. 보다 나았을 삶을 스스로 그늘 속에 가둔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