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국제학교 신설, 이대로 괜찮은가?

  • 등록 2026.03.04 20: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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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현재 한국의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s)는 이제 낯선 교육 실험이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영어교육도시, 송도국제도시, 그리고 수도권 곳곳에 자리한 국제학교들은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빠르게 확산되어 왔다. 특히 제주에 위치한 네 곳의 국제학교는 최근 충원률 71.7%(한때 90%를 웃돌았음)에 이르며 여전히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비 부담, 지역사회와의 단절, 교육 양극화 심화라는 그림자 또한 분명하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은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국제학교 설립을 추진해 왔다. 실제로 제주 영어교육도시는 한때 해외 유학 수요를 국내로 돌려 외화 유출을 줄였고, 교육을 이유로 한 ‘교육 이주’ 현상을 만들어 지역 상권을 살렸다. 여기엔 내국인 100%의 입학 조건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높은 학비는 여전히 큰 장벽이다.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은 일부 계층에게만 허락된 특권이고, 이는 국제학교가 지역 공동체 속 ‘섬’처럼 고립되는 결과를 낳는다.

 

국제학교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닫힌 글로벌’이 아니라 ‘열린 글로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 상생형 장학 모델을 제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지역 인재 장학금으로 환원하고, 지역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비 국제과정(Bridge Program)을 운영한다면 교육 기회의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싱가포르의 일부 국제학교들이 지역 공립학교와 공동 프로젝트 수업을 운영해 상호 학습 효과를 높인 사례는 좋은 참고 사항이라 할 것이다.

 

둘째, 공교육과의 연계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국제학교의 강점은 토론식 수업,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다문화 환경이다. 이를 지역 교사 연수, 공동 커리큘럼 개발, 방학 중 캠프 개방 등으로 확장한다면 국제학교는 ‘특권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육 혁신 허브’가 될 수 있다. 핀란드가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학교 간 벽을 낮춘 것처럼, 국제학교도 담장을 낮춰야 한다.

 

셋째, 학비 구조의 다층화가 요구된다. 전액 외국 교육과정만을 고집하기보다 국내 대학 진학 트랙, 해외 대학 진학 트랙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온라인 국제공동수업을 병행해 비용을 낮추는 방식도 가능하다. 최근 세계 유수 대학들이 온라인 공동학위 과정을 확대하는 흐름을 참고할 만하다.

 

넷째, 지역 정체성과 글로벌 시민성을 결합한 교육 철학을 세워야 한다. 제주에 위치한 학교라면 제주의 생태·해양·문화유산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정규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송도에 있다면 바이오·IT 산업단지와 연계한 현장 연구를 강화할 수 있다. 국제학교 학생들이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제 변화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지역사회는 국제학교를 ‘우리 학교’로 인식하게 될 수 있다.

국제학교는 단지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가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이 공존하며,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어야 한다. 만약 국제학교가 지역의 아이들과 꿈을 나누고, 공교육과 손을 맞잡고, 학비의 장벽을 낮추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이다.

 

국제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교육을 받는 ‘외국교육기관’이다. 2006년 정부가 해외 유학 수요를 국내로 흡수하기 위해 내국인 입학 제한을 없앤 제주를 제외하면 ‘경제자유구역 지위를 얻은 곳에서만 국제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국제학교 설립 움직임이 시작되고 줄줄이 설립을 꿈꾸고 있다. 부산, 인천 영종, 경기 평택, 충남 태안, 전북 새만금, 충북 오송, 강원, 경북 포항, 울산, 경남 차원 등이 현재 외국 학교를 물색 중이거나 혁약을 체결하고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 교육은 건물을 세운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굳건한 철학을 세우고, 문을 열고,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국제학교가 명실공히 지역과 함께 숨 쉬는 ‘열린 배움의 공동체’로 거듭날 때, 우리는 비로소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23년 기준 국내 미인가 국제학교가 130곳에 달하고, 재학생도 약 2만 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관리의 허술함을 틈타 우후죽순 격으로 줄을 잇는 것은 국제학교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교육 내실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자자체의 보여주기식 연출이 아닌 수요의 지속성을 검증하고 주거·의료·문화 등 생활 인프라,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촘촘하게 고려해 추진하는 세밀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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