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훈의 열정교육 - “창문이 흔들려요”가 모두의 기쁨이 되다.

  • 등록 2026.02.13 10: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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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에 한 번 전교 어린이 임원회의에 꼭 참석한다.
임원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아무리 바빠도 그 자리에 앉는다.

 

회의의 앞부분, 맨 처음 10분은 내가 일부러 비워 둔 시간이다.
그 10분 동안은 전교어린이 임원들의 이야기에 완전 집중한다.

 

어른들이 너희들의 이야기에 정말 관심이 많다는 느낌이
어린이들에게 꼭 전해지길 바라면서.

 

아이들이 말하는 불편과 제안은 늘 ‘작아 보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학교는 그 작은 말에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가능한 일은 가능한 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확답한다.

 

“좋다, 그렇게 하자.”

 

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애매하게 넘기지 않는다.

 

“이건 시간이 좀 걸린다. 언제까지 기다려 달라.”

 

아이들은 기다리는 것보다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혼자 결정하는 시간이 아니다.
교감 선생님이 답할 일은 교감 선생님이,
실장님이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실장님이
즉시 확인해 준다.
그 자리에서 직접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학교에서 가장 좋은 행정은 멀리 돌아가지 않고

얼굴을 보고 답하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6학년 한 어린이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선생님, 창문 흔들리는 소리가 신경 쓰여요.”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창문’이라는 단어의 사소함과
‘신경 쓰인다’는 말의 진지함이 함께 놓여 있었다.
불평도 아니고, 투정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민원이라기보다 관찰 보고서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래? 가보자.”

 

1층 복도로 내려가 보니 단창이
바람에 흔들리며 찰칵, 찰칵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용한 학교에서는 꽤 크게 들렸다.

 


아이의 말이 맞았다.
이것은 창문 수리차원이 아니라 1층 복도 단창을
이중창으로 모두 교체하는 창호공사를
진행할 사안이었다.

 

“이건 좀 큰 돈이 필요하니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때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 어른이 내 말을 그냥 넘기지 않는구나’ 하는 얼굴.
아이들은 이런 순간에 학교를 신뢰하게 된다.


아이의 말 한마디를 진심으로 듣는 순간, 학교는 이미 변하고 있다.

 

그 어린이의 말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학교 발전위원장과 학부모 대표들,
교감·실장·교목, 그리고 교장인 나까지.

 

“이건 한 아이의 불편이 아니라 학교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
”라며 뜻을 모았다.

 

예산확보를 위해 학교임원들과 학부모 대표단이
지혜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6개월 후 구청장님과의 면담이 성사되었다.

 

구청장님을 뵈러 가는 날,
우리는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화선지에 붓펜으로 정성껏 쓴 자작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단창 민원을 제기했던 그 어린이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바로 살피라.” (잠언 4장 25절)

 

내가 가는 길에 
어떤 언어가 쓰여 있는가

 

진심이 아니면
입을 열지 말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되 끝까지 섬기라.

 

완전한 섬김으로
하나 되는 그 날을 위해
작은 언어에도 귀를 기울이라.

 

감사함으로 기적을 이끌고
결코 강제되지 않는
불꽃 같은 영혼으로 달려가라.

 

- 자작시 중에서 -

 

시낭송이 끝나자,
구청장님의 표정이 환해지더니 한마디 하신다.

 

“사람을 왜 이렇게 무장해제시키십니까?”

 

그리고 주무관님들을 쳐다보시더니
호탕하게 말씀하신다.

 

“해달라는 거 다 해주세요.”

 

회의실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그 웃음은 가벼운 웃음이 아니었다.
아이의 이야기가
어른들의 마음에 닿았다는 신호였다.

 

구청장님은 그 자리에서

 

“어린이가 창문 흔들리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고 했다는 말이 참 인상 깊다”며 지원을 약속하셨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문이 도착했다.

 

“5천만 원을 지원하니 단창을 이중창으로 창호 공사를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이 소식을 전교 어린이 임원 회의에서 먼저 나누고,
이어 아이들 앞에서 전했다.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준 창문 소리 기억하죠?
그 이야기에 어른들이 함께 움직였고, 이제 창문을 이중창으로 교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터져 나온 박수와 환호성
어린이들이 보내준 박수와 한호성은
공사비 때문이 아니었다.
‘내 말이 학교를 움직였다’는 감사에서 나온 박수였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

 

어린이들의 의견은 참 소중하다.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어른들은 큰 결과를 얻는다.

 

어린이의 “신경 쓰여요”라는 말 한마디가
학교의 창문을 바꾸고, 학교의 문화를 바꾸었다.

 

 

어린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학교.
의견을 듣고, 움직이고,
함께 웃는 어른들이 있는 학교.

 

우리는 오늘도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내일은 또 이런 말이 들릴지도 모른다.

 

“선생님, 의자가 삐걱거려요.”
“선생님, 시소가 불안해요.”

 

그때도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가보자.”

 

창문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더 잘 들리게 할 생각이다.

 

“리더십은 결정의 속도가 아니라
현장으로 향하는 진심어린 발걸음이다.”

 

“들었으면 움직여야 한다.”

 


 

 

칼럼니스트 박대훈

 

• 現 태강삼육초등학교 교장
•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 광운대학교 대학원 석사(초등영어교육)
• 전국삼육초연합회 회장
• 한국사립초연합회·서울사립초연합회 부회장
• 서울시·충청북도 수업연구 발표대회 1등급
• 충북 단재연수원 1급 정교사 연수 특강 강사
• 학교법인 삼육학원 전국 예비교사·중고등부·어린이교사 수양회 초청 강의 다수 출강
• ‘어린이 수업 집중법’ ‘부부행복세미나’‘섬기는 교육행정’강의 다수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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