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국가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국가는 단연 프랑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일찍이 인류 문명사에 인권에 대해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역사적 인권 관련 사건과 그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이 그를 충분히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인간의 자유를 최선두에서 지켜나가는 프랑스에서 최근 이해하기 어려운 교육적 사건이 의외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꿈꾸는 미래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절실하게 사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충분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전면 금지’라는 말은 권위주의적 통제의 상징처럼 들리곤 했다. 대한민국의 국가 인권위원회마저 학교에서의 과도한 규제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프랑스는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유치원·초·중·고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을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교육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적 선언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시간을 되돌려주기 위한 선택이란 것이다.
프랑스 교육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은 하루 평균 150회 이상 휴대폰을 확인했고, 교실에서의 산만함은 학습격차의 주요 원인으로 떠올랐다. 어느 중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던 풍경이 사라지고, 복도와 교실 구석마다 허리를 굽힌 채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는 ‘침묵의 휴식 시간’이 일상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모습은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 장면 앞에서 묻는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규제 없는 자유인가, 아니면 배움이 자랄 수 있는 규제되는 환경인가?”
규제 이후, 프랑스의 여러 학교에서는 흥미로운 변화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교사들은 “수업 집중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보고했고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다시금 운동장을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가 돌아왔다고 한다.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교실 밖 작은 화단에 나무 이름을 적어놓는 학생들이 생겼고, 중학교에서는 친구와 함께 간단한 카드놀이를 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결국 인간관계와 경험이 회복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다시 고민하게 된다, 결국 교육이란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정의에 귀착된다. 스마트폰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현대 문명의 소중한 도구이며, 제대로 된 디지털 리터러시는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아직 삶을 조절할 자기 통제력과 우선순위 판단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한한 휴대폰에의 접속을 허용할 때 생긴다. 교육 현장이 더 이상 학습의 장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극과 게임의 장소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프랑스는 이런 점에서 과감했다.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환경만큼은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선택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오하려 ‘교육적 배려’라는 생각으로 전환된다. 가장 깊은 배움은 스크린 속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경험과 경험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예컨대, 아이들이 공을 차며 함께 웃을 때, 친구의 표정을 읽어가며 갈등을 해결할 때, 교실 창문 너머 계절의 변화를 깨달을 때, 얻는 배움은 어떤 앱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말한다. “아이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게 할 때, 그 손은 다시 세상을 만질 수 있게 된다.” 교육이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그 순간들이다. 망설임 없이 언급하는 인권의 대표적 상징국가인 프랑스마저 이제는 교육 현장에서 휴대폰 사용의 전면 규제를 국가적으로 시행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의미심장한 교육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필자도 한때는 국가인권위처럼 학교에서의 휴대폰 규제에 부정적인 사고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라는 본질로 다시금 돌아가게 되었다. 문명의 도구로 인해 인간관계가 오히려 소원(疎遠)해지고 심지어 파괴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도 이에 대한 국가의 입장을 숙의할 때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묻고자 한다. “AI 3대 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에서 프랑스가 그랬다고 친구 따라서 강남 가자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낸다”는 깊은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교육의 본질과 교육자의 역할에도 주목해야 함을 어찌할 것인가?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