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의 건강한 행복

  • 등록 2025.08.28 07: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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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내일이 된 헌혈


금요일 아침, 헌혈의 집의 문이 열린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문진실과 채혈실을 오가는 중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 숙인 모습이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그녀를 만났을까?’ 기억을 떠 올리며 생각을 하던 중 그녀도 고개를 들어 나의 눈과 마주쳤다 “어머!” 놀라운 짧은 외침과 함께 웃으며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우리 가족이 자주 이용하는 동네 병원 의사이다. 내가 이사 와서부터 다니던 단골 병원이니 알고 지낸 세월이 10년이 훌쩍 넘어간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듣게 된 슬픈 소식에 난 멍하니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녀에게도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을 아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의 침묵이 흐르는 사이, 그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한다.

 

“그나마 1주일 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골수가 잘 생착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그런데 요즘 더 큰 걱정이 있어요. 혈소판 수혈을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수혈을 제때 못 받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헌혈을 부탁하고 있답니다. 저도 비록 혈소판 헌혈은 못 하지만 전혈이라도 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왔어요.”

 

혈소판은 우리 몸에 상처가 나거나 혈관이 손상될 때 응고와 지혈에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골수 이식 후, 환자는 면역 억제 상태에 있고, 새로운 골수가 자리 잡을 때까지 혈소판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므로 일정 기간 혈소판 수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치명적 출혈로 생명까지 위험하기 때문이다.

 

혈소판 헌혈인 경우 임신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헌혈을 할 수 없다. 이유는 임신력이 있는 여성에서 수혈 관련 급성 폐손상(Transfusion-Related Acute Lung Injury, TRALI)을 일으킬 수 있는 HLA항체(anti-Human Leukocyte Antigen)를 보유할 확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채혈을 제한하고 있다. 수혈 관련 급성 폐손상(TRALI)은 수혈 후 6시간 이내에 갑작스런 호흡부전과 폐부종을 일으켜 심하면 사망까지 할 수 있는 중증 수혈 부작용이다.

 

그녀의 다소 긴장된 듯 한 모습, 불편한 점은 없을지 몰라 세심히 살피던 중, 우리의 눈은 또 다시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괜찮다며 미소로 답을 건넨다.

 

“전혀 불편한 거 없어요.”

 

피가 채워지고 있는 전혈백(Whole Blood Bag)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에는 헌혈의 중요성을 잘 몰랐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헌혈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죠. 사랑하는 가족이 아픈 후에야 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이제야 필요성도, 헌혈하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도 느끼게 되네요. 오늘 헌혈을 처음 하는 저로서는 부끄럽네요”

 

아직 더운 여름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주말에 어디 갈까? 고민하고 있다면, 간곡히 요청을 드려본다. 가까운 헌혈센터로 잠시 발길을 돌려 보는 건 어떨지. 잠깐의 따끔거림이 병상에서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건강함을, 또 잠시 내어 준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삶을 선물하는 고마운 일이 될 테니 말이다.

 

헌혈을 마친 뒤,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나에게 그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남는다.

 

“좋은 곳에서 일하시네요. 다시 헌혈을 할 수 있는 8주가 지나면, 다시 올게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잠시 벗어나 환하게 웃으며 나가시는 뒷모습에 혈액원의 한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정영희 작가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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