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속 시대, 우리는 버턴 하나로 원하는 상품이 다음날 새벽 문 앞에 도착하고, 짧은 영상(Shorts)조차 지루해 몇 초 만에 스크롤을 넘겨버리는 일이 당연해졌다. ‘기다림’ 이라는 낱말은 잊혀져가고 있다. 메신저의 숫자 ‘1’이 즉시 사라지지 않으면 조바심을 느끼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약간의 마찰이나 시차조차 견디지 못한다. 반면 게임 안에서 모든 것은 플레이어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내가 원할 때 시작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접속을 종료하거나 리셋(Reset)하면 그만이다. 최근 급부상한 ‘AI 친구’나 ‘AI 연인’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AI는 나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서운한 말을 하지도 않고, 나의 기분과 입맛에 맞춰 철저히 통제된 대화를 제공한다. 타인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맞춰가는 번거로움 없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완벽한 대상’ 만을 소비하려는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러한 즉각적인 반응과 만족에 익숙해져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견뎌내는 감각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는 기다림의 부재와 함께 또 다른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말한다. “길들인다는
칠레의 거장 루이스 세풀 베다는 동물의 시각으로 인간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생쥐의 친구가 된 고양이』 는 전혀 다른 종의 동물인데도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작가는 이 책들을 통해 자기와 다른 존재를 향한 조건 없는 연대의 중요함과 인간 문명의 탐욕에 대한 경종을 이야기 한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또한 달팽이가 만나는 다른 종들 사이에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와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도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손자의 ‘달팽이는 왜 느리게 움직이는가?’ 란 질문에 답해주는 형식으로 느림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른들을 성찰하게 한다. 평화로운 카라콜(달팽이) 공동체에 살던 한 달팽이는 집단의 구습에 정면으로 균열을 내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 느릴까?" 그리고 "왜 나에게는 이름이 없을까?" 동료 달팽이들은 이 터무니없는 질문을 묵살하거나 불편해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 관습에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질문자는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반항아'로 낙인찍힌다. 이것은 인간 세계의 풍자이다. 아이들은 질문이
올해로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이했다. 국권을 되찾은 날이자, 국가라는 울타리가 개인의 존엄과 삶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각도로 되새기게 되는 시점이다. 한 가정 내에서도 부모의 사고나 사업 실패, 이혼 등이 자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절대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하물며 국가적 위기와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개인이 누리는 평온한 일상은 더없이 쉽게 바스러진다. 광복절에 떠올리는 뜨거운 투쟁과 치열한 독립운동의 기록 뒤편에는, 국가의 위기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고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투사들의 눈물겨운 역경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희생 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로부터 80여 년이나 떨어져 있는 후세대에게 어떻게 역사교육의 무게를 체감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쓰였으나 놀랍도록 같은 울림을 주는 두 편의 자전적 소설을 떠올려본다. 1939년 영국의 조지 오웰이 발표한 『숨 쉬러 나가다』 와 1946년 독일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작가 이미륵이 발표한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두 작품은 모두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하며, 평온하던 개인
차를 타고 가다가 신호등 정지 신호로 잠시 멈출 때, 줄지어 선 가로수에 시선이 멈춘다. 매연과 먼지를 두껍게 뒤집어 쓴 나무들을 보면 마음이 씁쓸하다.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굽어버린 몸통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나무, 건물 외벽을 피하느라 기묘하게 비틀려 있기도 하고 아스팔트에 매인 뿌리가 답답한 듯 툭 튀어나와 있기도 하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숲도 산도 아니고 어쩌다 저 곳에 자라게 되었는지 측은하기도 하다. 또 발길 닿는 대로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하는 인간으로 사는 삶에 감사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한 자리에서 무심한 듯 수동적으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이기에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존과 성장을 위해 처절하고 치열한 노력을 하는 전략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빛이 필요한 나무는 자신을 방해하는 주변의 나무들을 피해 우듬지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 속에 있다. 나무의 가장 높이 자라나 중심 줄기를 이루는 꼭대기 가지인 '우듬지'는 나무의 생존을 결정하기도 하고 배려를 하기도 한다. 우듬지는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서 햇빛을 독점하지 않고 아랫가지들에게 햇살이 골고루 도달할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익숙하게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다. 믿었던 부하 직원의 배신에 분노한 사장이 책상 위 서류와 물건을 바닥으로 쓸어버리는 모습, 연인과의 다툼 끝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휴대폰이나 물건을 벽에 내던지는 청년의 모습이다. 화면 속 인물들이 격렬하게 물건을 던지는 모습은 현실적이긴 하지만 더 ‘극적 연출’ 된 모습으로 감정 표현 전달에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적인 장면들이 시청자,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감정 표출의 당연한 방식으로 은연중에 학습되고 있다. 그들은 왜 물건을 던질까? 분노라는 거대한 감정이 몰려왔을 때,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속에 쌓인 에너지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순식간에 터뜨려 버리는 것이 감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라 착각한다. 그렇다면 화는 무조건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참는 것이 미덕’이라 배우지만, 참기만 하는 화는 마음에 깊은 병을 남긴다. 『참을 만큼 참다가 사소한 일에 터지는 이유』(인현진 저)에서는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고 참기만 할 때, 결국 사소한 자극 하나에도 참아왔던 분노가 마그마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오거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내면
며칠 전 <AI·디지털 활용 연구·선도학교 네트워킹 데이> 행사에 출장을 다녀왔다. 참석한 교사들의 다양한 도구 활용과 수업 사례 공유, 분과별 협의회에서 모아지는 화두는 학생들에게 AI 활용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와 AI 활용 윤리였다. 요즘 자주 AI 사용 과다, 과의존으로 인한 피해 보도 기사도 나오고 있다. TV에서 본 한 사례 주인공은 극심한 고독 속에서 AI와 대화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처음에 남편은 오히려 본인이 못해 주는 것을 AI가 대신해 주어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일상의 모든 것을 AI와 의논하고 결정하고 중독되어 현실의 삶을 잃어버린 실태는 참담했다. 또 다른 사례자는 주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리는 사업을 AI에게 의뢰했다가, "확신을 가져라", “멋진 용기와 도전을 응원한다.” 는 AI의 달콤한 지지에 눈이 멀어 맹목적으로 질주했다. 결국 파산 직전이 되어서야 객관적인 질문을 던졌고, "본 사업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냉혹한 답변을 받았다. 망연자실하면서 그는 그제서야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충격적인 장면들은 기술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내안의 굴절렌즈 오래 전의 일이다. 머리 염색과 커트를 하러 나섰는데 늘 다니던 미용실이 문을 닫아 그 날이 아니면 시간 내기가 어려워 부근의 다른 미용실에 갔다. 사실 미용실을 바꾼다는 것은 아무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는 것과는 다른 신중함이 필요한 일이다. 미용실 이름을 보나 작달막한 키, 보라색 치마에 연두 형광색 티를 받쳐입고 껌을 씹으며 고객의 머리를 만지는 원장의 모습을 보니 마치 1970년대로 온 듯 했다. 그리고 머리를 맡길 만한 신뢰가 가지 않았다. 보조 미용사들에게 아무렇게나 야단치는 한 거친 말투도 건방져 보였다. 그런데 그 미용실은 명절처럼 북적대고 커트 손님들도 40분에서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다들 다시 오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거기다가 다른 미용실에서는 내 나이에는 일반적인 염색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원장은 알아서 해주겠다더니 진짜 멋지게 염색해 주었다. 좌우 언벨런스의 짧은 헤어스타일도 대만족이었다. 그래서 온 가족에게 추천하여 모두 그 미용실 단골이 되었다. 내게 그 원장은 미용 기술은 탁월하지만 잘난 체하고 함부로 남을 무시하고 괴팍하고 특이한 사람으로 각인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용실에 다녀온 남편이 들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