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눈을 뜨고 있는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나는 날들이 있다.반면, 분명히 무언가를 했는데도 무엇을 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날도 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불과 몇 시간 전인데도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지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즐거웠거나 의미 있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대체로 몸과 마음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 함께 있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내일의 일을 걱정하거나, 지나간 일을 되짚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현재를 경험하지는 못한다. 삶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보인다. 어두운 밤에 등불을 켜지 않으면 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어렵듯,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마음이 들리고, 세상이 보인다. 하지만 늘 하던 일들에는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익숙해진 것들은 우리를 자동조종 모드로 이끌기 때문이다. 오늘 출근길에 보았던 풍경들이 기억나는가?지나온 길의 나무의 색과 모양은 어땠는가? 분명히 눈을 뜨고 걸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 않다면, 어쩌면 우리가 보
3일간의 명상 집중수행 기간을 마쳤다. 바쁜 일정들 사이에 미리 시간을 맞추어 놓아 3일의 묵언 및 명상 집중수행에 참여할 수 있었다. 참여한 명상 과정도 의미 있었지만 이번 수행에서 가장 뜻깊게 얻은 것은 과정 중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수행의 기간과는 상관없이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몸으로 3일간 자리에 함께한 이들 덕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 안에는 가치가 스며 들어있다. 많은 고뇌와 번뇌 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가치에 전념하다 보면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방향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 이러한 가치를 배울 때가 많다.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주객이 전도될 때가 많다. 일이 먼저가 되고, 목표가 우위가 되며, 사랑을 잊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때때로 우리는 잊고 산다. 그럴 때 다시 사람을 바라본다. 사람 안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 가치에 전념하고, 다시 한걸음 자신의 방향을 잊지 않고 걸어가는 이들을 그저 바라본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돌보려는 마음, 연민 어린 마음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힘, 어떠한 인연법에 따라 이 자리에 함께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비슷한 가치를 배낭에 메고 있었기 때문에 스쳐가는 삶의 여행길에서 만날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낄까? 대한민국의 하루는 바삐 돌아간다. 새벽 기상, 운동, 영어 공부, 자기 계발, ‘갓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SNS에는 하루를 빈틈없이 채우며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분명 갓생은 멋지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성장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갓생에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걍생'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냥'과 '인생'의 합성어인 걍생은 거창한 목표나 완벽한 계획에 얽매이기보다, 있는 그대로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Doing mode와 Being mode를 떠올리게 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Doing mode와 Being mode이다. Doing mode는 목표를 달성하고 현재와 이상적인 상태 사이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성취와 성장에 가치를 두는 요즘의 '갓생'과 닮아 있다. 반면 Being mode는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며 삶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결과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이 불변할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TV 속 광고만 보아도 그렇다. 마치 이걸 마시면 지금의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더 많은 소유가 변치 않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내가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모든 것도 흘러가고, 지나간다. 변치 않는 하나의 진리는 세상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물은 흘러야 한다. 물이 흐르지 않고 한곳에 고여있으면 썩는다. 생각과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삶을 살다 보면 마주하기 힘든 생각과 감정들을 겪는다. 그러나 삶의 어려움을 겪는 순간들은 이러한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가 아니라 내면의 생각과 감정들을 억누르고 회피하느라 고군분투할 때 찾아온다. 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을 때 더 강하게 압도되었던 경험이 있는가?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이다. 억제하고 회피할수록 당장의 불안은 낮아지지만, 결국 떠올리고 싶지 않은 대상이 강해지는데 먹이를 주게 된다. 회피나 통제는 우리의 마음을 그 자리에 고여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놓치게 되는 삶의 소중한 순간들은 점차 회색빛이 되어간
바쁜 일정에 몸살이 났고, 눈을 떠보니 예상보다 늦어진 출근 시간을 알아차렸다. 아이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준비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지하철을 놓치고 말았다. 하나를 놓치면 다음 차를 꽤 기다려야 하기에 평소 같으면 다음 차를 기다리는 그 시간에 자책하던 터였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찌하겠는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자책의 시간을 수용의 시간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수용하고,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힘을 써보기로 했다. 그 순간 자책으로 빠져있었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 근처에 좋아하는 빵집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는 아침에는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나에게 몇 분 늦은 아침 시간이 갓 만든 샌드위치가 나오는 시간이 아닌가. 그 덕에 맛있는 샌드위치를 사서 차를 기다릴 수 있었고 목이 말라 지나가는 길에 산 커피가 하루의 활기를 더해주었다. 잘 먹고 여유가 생긴 탓일까? 내려서는 학교까지 달려 늦지 않고 도착했다. 잘 먹고 땀이 날 정도로 달리기를 해서 그런지 몸살 기운도 한결 나아져 있었다. 모두 살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너무 힘이 들어갔을 때 일이
우리는 몸이라는 육신을 입고 산다. 눈은 외부를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만 집중하며 살아가기 쉽다. 보이는 것들에 매 순간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마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가 많다. 문제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을 모를 때 우리는 마음에 뒤통수를 맞는다는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야.’ ‘나는 부족해’ ‘나는 망했어.’ 우리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 생각을 자기 자신이라 믿는다. 그것도 굳게 믿는다. 보이지 않고 내 안에서 들리는 것들이니 관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은 대상이 되기 쉽지만,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들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리기 쉽다.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생각은 끈끈이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고 좀처럼 거리가 생기지 않는다. 특히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더더욱 생각과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연습을 해야 한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생각과 감정들도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삼고 들여다보는 연습을 말이다.
다큐 3일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72시간 동안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다큐 프로그램인데 각자의 삶에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실천하는 분들을 본다. 매일 같은 노선의 지하철을 운행하며 승객들에게 따뜻한 응원과 위로의 말로 많은 이에게 힘을 주는 기관사부터 평생 시장의 한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물건과 추억을 파는 상인 등 각 분야에서 소중히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을 통해 일상을 소중히 대하고 삶을 마주하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스물 네 시간의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그 양이 동일하다고 하루의 질이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들을 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생각과 비교에 사로잡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매 순간 빠르게 흘러가고 비교와 조급함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소중한 일상을 놓치며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생각 속에서 허우적 대다가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살다 보면 노년에 내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공허해질 수 있다.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데 1년을, 10년을 제대로 사는